매일처럼 이글거리며 올 여름 내내 사람들을 숲속으로 계곡으로 바닷가로 내 몰았던 태양은 “더위를 물리치고 모기의 입도 비뚤어진다!” 는 처서(處暑)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곁을 떠나기 싫어하는 여름을 붙잡아 놓으려는 듯 쉬지 않고 뜨거운 열기를 내 뿜어대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행복이 가득담긴 소식을 전하려고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우편물을 가득 싣고 시골마을을 향하여 천천히 달려가는 길 양쪽 논에는 여름 내내 지금까지 뜨거운 햇볕을 받고 자라난 벼들이 어느새 피어나는가 싶더니
이제는 조금씩 누런빛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시골마을 정자나무 그늘에는 오늘도 마을사람들이 모여앉아 조금 있으면 밭에 파종하게 될 쪽파 씨 손질에 여념 없는데 바쁜 시골사람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미 몇 마리가 모여 바락바락 악을 써가며 부지런히 합창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전남 보성 회천면 전일리 군학마을 아침에 우체국에서 소포의 수취인 이름대신 ‘영광 댁’이라고 써진 소포가 도착하여 수취인을 확인하려고 소포 표면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였으나 받지 않은 영광 댁을 찾으려고 마을 사람을 찾았으나
마을에는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 날씨는 무덥지만 시골에는 벌써 고추며 참깨 등 밭작물 수확 때문에 밭으로 나가셨나 보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이리저리 사람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아 “이럴 때는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을 하다 “옳지! 좋은 수가 있다!”하고는 마을의 중간쯤에 빨간 오토바이를 잠시 세워놓고 큰소리로 마을을 향하여 “영광 대~~~엑!”하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대답이 없어 또 다시“영광 대~~엑! 영광 대~~~엑!”하고 서너 번을 계속해서 불렀더니
어디선가 “누구요~오? 누가 나를 불러 싸~아!”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할머니! 접니다! 집배원이에요! 지금 어디서 대답하시는 겁니까?” “아! 여그여! 여그!” “할머니! 손 한번 흔들어 보세요!”하며 얼른 소리 나는 쪽으로 달려갔더니 할머니께서는 마당에 서있는 큰 감나무 뒤에서 손을 흔들며 “여그여! 여그!”하고 대답하고 계셨습니다. “할머니! 손을 흔들려면 토방 위 높은 곳에서 손을 흔드셔야 아래쪽에서 할머니가 보이지 하필 감나무 뒤에서 손을 흔들고 계셨어요?”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빙그레 웃으면서 “엥? 내가 그랬어? 나는 손을 흔들어라 그래서 그냥 흔들고 있었제~에! 그란디 우리 딸이 내 화장품 보낸다고 전화왔드만 벌써 와 부렇어?” “이게 화장품인가요? 그런데 왜? 할머니 이름을 쓰지 않고 댁호(宅呼)를 써서 보냈을까요?” “어른 이름을 함부로 쓰면 안 된다고 댁호를 써서 보낸다고 그러데!” “아니? 왜요?” “나도 몰라! 애기들이 그라문 그런갑다! 그라제!” “그런데 할머니 성함은 어떻게 되시는데요?” “내 이름? 아니 아제는 아직까지 내 이름도 몰르고 있었어?”
“제가 왜? 모르겠어요? 혹시 할머니께서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으셨나 싶어 그러지요!” “내 이름이 가만있자! 말을 하라근께 얼런 생각이 안 나네!” “그것보세요! 그래서 할머니 이름 잊어버리지 마시라고 물어보는 거예요!” “그란디! 으째 이라고(이렇게) 생각이 안 나까?” “할머니 이름 여기 있지 않아요?”하며 할머니 댁 대문 옆에 걸려있는 우편 수취함에 커다란 글씨로 적혀있는 이름을 가르쳤더니 “맞어! 그렇제! 내 이름이 임두례 맞어!”하며 또 다시 할머니께서는 빙그레 웃더니
갑자기 무엇이 생각난 듯 “아제 혹시 밀문지 자셔봤어?”하십니다. “밀문지요? 그게 무엇인데요?” “아니 밀문지도 몰라?” “밀문지? 저는 처음 듣는 이름인 데요! 밀문지가 무엇인데 그러세요?” “그라문 우리 집에서 한개 자셔봐! 내가 지금 밀문지 붙이고 있응께!” “그래요? 그럼 밀문지 맛 좀 보고 갈까요?”하고 할머니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는데 할머니께서는 마루에 앉아 밀가루 부침개를 부치고 계시다 제가 “영광 대~~~엑!”하고 부르는 바람에 얼른 일어서서 대답을 하셨는지
아직까지 프라이팬에서는 기름이 지글거리고 있습니다. “할머니! 이건 밀가루 부침개잖아요?” “요새는 밀가리 부침개라고도 한디 옛날에는 밀문지라고 했어! 이것이 밀로 가루를 내갖고 반죽해서 솥뚜껑에다 부치면서 자꾸 문지르니까 밀문지라고 했든 모양이여!” “할머니 오늘이 무슨 날인가요? 웬 부침개를 만들고 계세요?” “저 아래 정자나무 그늘에서 마을사람들이 품앗이로 쪽파 씨를 다듬고 있는데 오늘 우리 쪽파 씨를 다듬고 있거든 그래서 새참으로 갖다 주려고!”하시며
어느새 부침개 한 장을 프라이팬에서 꺼내시더니 그것을 가위로 예쁘게 자르고 계십니다. “할머니! 뭣 하러 부침개를 가위로 자르시는 거예요? 부침개는 그냥 젓가락으로 찢어서 먹는 것이 더 맛있지 않나요?” “우리 집이 이쁜 양반이 오셨는디 밀문지를 그냥 드리문 쓰것어? 이라고 자시기 편하게 해서 드려야제! 얼른 자시고 적으문 말해 잉!”하시더니 예쁘게 자른 밀문지 한 장을 저에게 내 놓으십니다. 오늘 저는 밀가루 부침개가 아닌 할머니의 정성이 담긴 아주 맛있는 밀문지 한 장을 대접받았습니다.
*멀리서 바라 본 전남 보성 회천면 영천리 봇재의 다원 전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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