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갖고 가!"
“도로 갖고 가!”
4월이 시작되자 봄의 화신(花神)은 여기저기 빨간 노란 하얀 물감을 마구 뿌리고 다녔는지 시골마을의 멀리 보이는 산에는 빨간 진달래꽃이 만발하여 예쁜 꽃단장이 끝나있었고 도로가에 서있는 벚꽃나무의 꽃들은 활짝 피어나더니 함박웃음을 지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하얀 꽃잎 몇 장씩을 나눠주며 인사하는 듯 보이는데 언덕위에 긴 가지를 늘어뜨린 노란 개나리는 한들한들 지나가는 봄바람에 몸을 맡긴 채 날개를 팔랑이며 날아다니는 나비와 꿀벌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오늘도 전남 보성 회천면 서당리 원서당 마을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면서 소포 하나를 배달하려고 마을의 위쪽에 살고 있는 한갑례 할머니 댁 마당으로 들어가 “할머니! 계세요? 할머니~이!”하고 큰소리로 불렀는데 대답이 없었다. 그래서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서 소포를 꺼내어 마루에 내려놓고는“할머니께서 어디를 가셨지?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혹시 저 위쪽 밭에 가셨나?”하는 생각으로 마당을 나와 마을 맨 위쪽에 있는 밭에 대고
“한갑례 할머니! 한갑례 할머니~이!”하고 큰소리로 불렀더니 “누구여? 누가 나를 불러싸~아!”하며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께 소포가 왔는데 그냥 집에 놔두고 갈까요?” “뭐시 왔다고?” “할머니께 소포가 왔다니까요~오!” “소포가 왔다고~오? 누가 나한테 소포를 보냈으까? 소포 보낼 사람이 없는디!”하며 할머니는 이미 굽을 대로 굽어진 허리 때문에 머리가 거의 땅에 닿을 만큼 구부린 자세로 지팡이를 짚고 집을 향하여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다.
“할머니 천천히 오세요! 저 바쁜 사람 아니니까요!” “안 바쁘기는 뭣이 안 바뻐 우체부 아제들은 항상 바쁘드만!” “그렇게 달려오다 넘어져 다치면 어떻게 하려고 달려오세요? 약값도 없는데!” “누가 아제 보고 약값 주라 그랬어? 아이고~오! 늙은께 걸음도 잘 안 걸어지네!”하며 집으로 달려온 할머니는 마루에 털썩 주저앉더니 아직도 가쁜 숨을 헐떡이며 “아제는 늙지 말고 살아 잉! 아이고~오! 늙은께 이라고 어디 잔 걸어 댕길라문 힘들어 죽것네!”
“아니? 그런데 밭에는 뭣 하러 가셨어요? 집에 가만히 계시지 않고요!” “집에 혼자 있을 랑께 심심하고 그래서 밭에 잔 가봤드니 풀들이 말도 못하게 질어갔고(자라나서) 만날 뽑아낼라고 해도 징하게 안 뽑아지네!” “그럼 밭에 또 무엇을 심으시게요?” “뭣을 심든지 심어놔야 가용(家用)도 쓰고 반찬이라도 만들어 묵제~에! 늙은이가 혼자 살고 있어도 쓸 것은 써야 된께 그란디 뭣이 왔다고?” “건강보조식품회사에서 보낸 소포인데 주문하셨어요?” “뭐시라고 건강식품이 보냈다고?”
“혹시 며칠 전에 건강보조식품 판매하는 회사에서 전화 안받으셨어요?” “전화? 받기는 받었제~에! 노인들 한데 좋은 약이 있는디 한번 묵어보라고 그라데 약 값도 아주 싸고 잘 듣는다고” “약 값이 얼마인데요?” “약값? 석 달간 묵을 약인디 하루에 천 원씩 해서 한달에 삼 만원 그래갖고 석 달간 9만원이라고 그라데! 그라고 인삼이 많이 들고 녹용도 들고 그래서 노인들한테는 아주 좋은 약인께 묵어보라고!” “그래서 보내라고 하셨어요?” “아니여! 내가 보내지 마라고 했는디 보냈는 갑구만!”
“왜? 보내지 말라고 하셨어요? 할머니께 좋은 약이면 드셔보시지 그러셨어요?” “내 나이가 낼 모레면 90살이여! 그란디 좋은 약이라고 묵으문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이여! 인자는 아무리 좋은 약을 묵어도 소용이 없는디 그저 조용히 살다가 갈 때가 되문 가야제! 그랑께 그것은 도로 갖고 가!” “알았어요! 할머니! 그럼 이 소포는 다시 돌려보내면 되겠네요?” “미안해서 으짜까?” “미안하기는 뭐가 미안해요! 이것이 저희들이 할 일인데요.” 하며 마루에 내려놓은
소포를 오토바이에 싣고 막 할머니의 마당을 나오려는데 갑자기 “아제! 아제!”하며 할머니께서 부르셨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 “거시기 그 약 보내지 말고 그냥 아제가 자시문 안되까?” “할머니가 드실 약을 제가 먹으면 무엇 하겠어요? 저는 아직 젊고 건강한 편인데요.” “아니 몸에 하다 좋은 약이라고 그랑께 아제가 자시문 좋을 것 같아서 그라제! 약도 젊었을 때 묵어야 잘 듣는 것이여! 나 같이 나이 묵은 노인들은 암만 좋은 약 묵어도 소용없는 것이여!”
*새싹이 돋아나는 녹차밭에서 우연히 만난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녹차 밭을 찾은 뇌성마비 장애우들입니다. (2007년 4월 10일 전남 보성 회천 회령리 대한다업 제2농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