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친정집 주소

큰가방 2007. 4. 21. 19:48
 

친정집 주소


“아제한테 부탁할 것이 있는디!”언제나 그랬듯이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행복이 가득 담긴 우편물을 싣고 전남 보성 회천면 봉강리 신근마을 우편물을 배달하면서 마을의 가운데  쯤에 있는 골목길을 막 지나려는데 허겁지겁 달려 나온 80살 가까운 할머니께서 나를 보자마자 대뜸하신 말이다. “할머니! 무엇을 부탁하려고 그렇게 급히 달려 나오셨어요? 부탁할 일이 있으면 집에서 저를 부르셔도 되는데!” “아이고! 바쁜 양반 집에 가만히 앉아 부르문 쓰간디!”


“그런데 무엇을 부탁하려고 그러세요?” “내가 뭣을 한개 부쳐야 쓰것는디 주소를 모른단께!” “받는 사람 주소를 모른다는 말씀이지요? 무엇을 보내려고 그러시는데요?” “여가 가만있어봐 잉! 내가 금방 갖고 나올랑께!” “제가 집에 들어가서 보면 안 되나요?” “그래도 되기는 된디 바쁜 양반 이리가라! 저리가라! 하기 미안해서 그라제~에!” “그럼 저와 같이 할머니 댁에 가보게요!”하며 할머니의 뒤를 따라 집으로 들어가는데 “나는 오늘도 아저씨를 못 만날지 알고 걱정을 많이 했네!


그나저나 바쁜 양반 잡어서 미안해서 으짜까?” “뭐가 미안해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저도 할머니 같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어요! 그러니까 너무 미안하게 생각하지 마세요!”하며 할머니 집 방문을 여는 순간 와이샤쓰 상자 두 개를 금박 포장지로 포장한 다음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인 상자 하나가 눈이 뜨였다. “이게 할머니께서 보낸다고 하신 소포인가요?” “내가 싼다고 쌌는디 잘 싸졌는가 모르것네! 그란디 주소를 모른디 으짜까?” “주소를 모르는 우편물은 보낼 수가 없는데 그런데 어디로 보내시려고요?”


“저기 구례로 보낼라고 그란디!” “구례는 누가 살고 있는데요?” “우리 친정 큰오빠가 살았는디 인자는 하늘나라로 가고 우리 큰조카가 살고 있어!” “그러세요! 그러면 친정이 구례군 무슨 면(面)인데요?” “구례군 토지면...” “무슨 리(里)인지는 생각 안 나세요?” “금메 암만 생각해봐도 모르것당께!”하는 할머니의 얼굴은 답답함과 함께 미안하다는 듯한 웃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럼 마을 이름은 어떻게 되는데요?” “마을이름? 가만있자!


마을이름이 갈곳 마을이던가~아? 갈메 마을이든가? 아이고! 생각이 안 나서 모르것네!” “그럼 친정집 전화번호도 모르세요?” “금메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는디 그것도 필요한께 생각이 안 나네!” “그런데 이 상자 안에는 무엇이 들었어요?” “내복(內服)이 두벌 들었어!” “겨울도 다 지나갔는데 이제 내복을 보내시게요?” “진작 보낼라고 했는디 친정 집 주소가 생각이 안 나서 이제나 저제나 주소가 생각날 때까지 지달렸는디 오늘은 안 되것길래 아저씨 만나서 타협을 잔 해볼라고 지나가기를 기달리고 있었제~에!”


“그런데 어떻게 하지요? 주소를 잘 모르면 마을 이름이라도 알아야 우편물을 보낼 수 있는데 그럼 조카 되시는 분 성함은 어떻게 되는데요?” “조카 이름? 우리 조카 이름이 가만있자~아! 신성만이여! 신성만!” “그래도 조카 이름은 알고 계시네요!” “아이고~오! 내가 아무리 멍청하다고 우리 친정 조카 이름까지 잊어 불문 쓰간디!” “할머니! 그러면 혹시 아드님이 전화번호 적어 놓은 책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시겠어요?” “전화번호? 쪼간 기달려봐! 잉!”하며 방으로 들어간


할머니께서 초등학생이 사용하는 공책 한권을 가지고 나오신다. 그래서 할머니께서 건네주신 전화번호 책에서 ‘신성만’이라고 적어진 전화번호를 찾아내어 전화를 걸었는데 아무리 신호가 가도 받지 않는 것이다. “할머니! 조카 되는 분이 전화를 받아야 주소를 알 수 있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데 어떻게 하지요?” “그래~에! 아이고! 그라문 오늘은 틀렸는 갑구만!”하는 할머니의 얼굴은 실망한 빛이 역력하였다.


“할머니! 그러면 제가 이 소포를 우체국으로 갖고 가서 이따 오후 늦게 쯤 전화해서 주소를 확인한 다음 내일쯤 소포를 보내드리면 어떨까요? 오늘은 전화를 하고 나면 소포를 접수할 수가 없거든요!” “우메! 참말로 그래도 되까? 그라고 라도 해주문 나는 고맙제~에!”하는 할머니의 얼굴은 어느새 함박웃음이 활짝 피어나고 있었다.


 

 

 *전남 보성 회천면 영천리 밤고개에 있는 조그만 유채꽃 동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