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暴雨) 쏟아지던 날
폭우(暴雨) 쏟아지던 날
“형님! 접니다. 여기는 지금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는데 거기는 어떤가요?” “여기? 여기는 마치 맞을만하게 내리고 있는데!” “그래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비가 계속 쏟아지면 우편물 배달을 못하겠는데 어떻게 하지요?” “그럼 우선 쏟아지는 비는 피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조금 더 기다려 보다 정 우편물 배달이 힘들면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너무 무리하지 말고, 특히 위험한 곳에는 가지 말고,” “예! 잘 알았습니다.”지루하던 장마가 끝나자마자 찾아온
불볕더위에 열대야까지 겹친 무더위 때문에 몸과 마음이 점차 지쳐가고 있는데 어느 날부터 찾아온 시커먼 먹구름이 자꾸 오락가락하면서 계속 비를 뿌리더니 그것도 모자랐는지 오늘은 이른 새벽부터 많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우편물을 정리하여 시골마을을 향하여 출발하기 전 비옷을 입고 장화를 신고 혹시 필요할지 모르는 비닐봉지는 넉넉하게 준비되었는지 빨간 오토바이는 이상 없는지 점검을 한 다음 우체국을 출발하여 전남 보성 회천면 서당리 연동마을에서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을 때 동료직원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같은 회천면(會泉面)이고 직선거리는 채 10km도 되지 않는 서쪽과 동쪽의 날씨가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그나저나 이쪽에도 비가 더 쏟아지기 전 서둘러 우편물 배달을 끝내야겠다.’하며 다음 마을인 객산마을 세 번째 집에 막 도착하여 처마 밑에 빨간 오토바이를 세우자마자 갑자기 등 뒤에서 ‘우! 두! 두! 두!’하는 마치 수천마리의 말 발굽소리가 들리는 것 같더니 어느새 비는 폭우로 변하여 쏟아지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비가 오니까 밭에 나가지 못하셨군요.”
“그렇지 않아도 편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말 수고가 많으시네요, 그런데 비가 엄청 쏟아지는데 어떻게 편지배달을 하시겠어요? 잠시 쉬었다 비 그치고 나면 배달을 하시던지 해야지요! 여보~오! 집배원 아저씨 커피 한잔 끓여드리세요!” “그렇지 않아도 물 끓이고 있어요!” “아저씨 마루에 잠시 앉아계세요!” “그런데 비옷이 젖어있으니까 함부로 마루에 앉지 못하겠더라고요. 흥건하게 젖을 수 있으니까요.” “괜찮아요! 마루가 젖으면 걸레 닦으면 되지요. 어서 앉으세요!”하여 잠시 마루에 앉아
‘참! 사무실에 보고해야 하는데 깜박 잊었다!’하고는“류상진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지금 비가 엄청 쏟아 붓고 있어 전화 드립니다. 지금 같으면 배달하기 곤란한데 그렇다고 배달을 안 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 좀 더 기다려 보다 정 힘들면 포기하겠지만 비가 그치면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제 생각으로 오늘은 귀국(歸局)이 늦을 수 있으니까 그렇게 알고계세요!”하고 전화를 끊은 다음 커피를 한잔 마시고 나니 어느새 비는 이슬비로 변해있어 부지런히 객산리 배달을 마치고 다시 천포리를 향하여 달려가는데
화곡마을에 거의 가까워질 무렵 또 다시 비는 억수같이 쏟아 붓기 시작하였다. “어? 이럴 때는 우선 비를 피해야 하는데 어디로 들어가지?”하며 사방을 두리번거리다 마침 고추를 널어놓은 비닐하우스가 눈이 띠어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들어갔는데 하우스에는 마을의 영감님 세분이 비닐 멍석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다“아이고! 고생해 쌓네! 비가와도 너무 많이 오니까 귀찮지!” “예! 정말 그러네요. 그런데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왜 나와 계세요? 혹시 할머니가 나가라고 쫓아내시던가요?”
“쫓아내기는 누가 쫓아내! 집에 그냥 있으려니까 심심하고 시간도 잘 안가고 답답해서 나왔제!” “이런 날은 호박 부침개에 막걸리 한잔 마시면 정말 좋은데!” “그럼 어르신 심심하시니까 제가 이 앞 가게에서 막걸리 두병 사다드릴까요?” “이 사람아! 비가 이렇게 쏟아지는데 무슨 술을 사러가!” “어차피 제 옷은 모두 젖었고 또 오토바이로 갖다오니까 금방 다녀올 수 있어요!” “놔두소! 지금은 가게에도 막걸리가 없어! 그리고 동동주를 파는데 여기서 만든 동동주가 아니라 맛도 없고 비싸기만 해!”
“그럼 부침개라도 한 장 부쳐 달래서 가져올까요?” “그냥 놔둬 그라고 부침개도 옛날 같이 맛이 없드만!” “왜? 맛이 없어요?” “옛날 식구 많을 때 부침개를 부쳐놓으면 너도나도 서로 먹으려고 달려드니까 맛이 있었는데 지금 두 식구 사는데 무슨 음식이 얼마나 맛있겠는가?” “그래 그 말이 맞어! 으째 요새 음식들은 옛날 같이 맛이 없는지 모르겠어!”하시는 영감님들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쓸쓸함이 배어있었고 억수같이 퍼붓던 비는 어느새 천천히 멈추고 구름 사이로 햇살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시골마을 안길에서 우연히 만난 장수하늘소입니다.
*요즘 시골에서는 붉은 고추 수확이 한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