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지 못한 소리
듣지 못한 소리
2000.09.28
하늘거리며 흔들리는 억새 잎을 보면서 가을이 왔음을 실감합니다.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을 바라보며 가을이 왔음을 실감합니다. 온갖 농기계의 움직임과 들판의 농부들을 바라보며 가을이 왔음을 실감합니다. 그리고 흐뭇한 농부들의 미소를 바라보며 가을이 왔음을 실감합니다. "할머니! 소포가 왔는데 도장을 한번 찍어주실래요?"
대문 앞에 앉아서 토란 대 껍질을 벗기는 할머니에게 도장을 한번 찍어주시라는 말씀을 드리자 "응 약이 왔는 갑구만! 약 임자는 지금 안에 있어! 안에 들어가서 도장 찍어주라고 해!" 그래서 마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문일석 씨! 문일석 씨!" 하고 큰소리로 불러보았으나 대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밖으로 나와
"할머니 안에 사람이 안 계시는 모양이네요" 하였더니 "이상하다! 금방 안으로 들어갔는디~이! 내가 불러보까?" 하시더니 "청룡 댁! 청룡 댁!" 하고 할머니께서 다시 큰소리로 부르시는 겁니다. 그러자 안에서 50대의 아주머니하시는 말씀 "소리를 안 들었어요!" 하시는 게 아닙니까! “아니 무슨 소리를 못 들었어요?" 하고 묻자
“아저씨! 소리를 안 들었어요!" 하십니다. "예~에! 그러셨어요! 소포가 왔으니까 도장을 좀 가지고 나오십시오!" 하였더니 부스스한 얼굴로 도장을 가지고 나오시는 아주머니 얼굴이 무엇이 아주 못마땅하다는 얼굴을 하고 계시는 겁니다. "아주머니! 화나셨어요?" 하고 묻자 "아니요! 아저씨 소리를 못 들었어요!" 하시는 겁니다.
늦게 대답을 해서 미안하다는 말씀인지 아니면 주무시는데 방해를 해서 기분이 나쁘다는 이야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안녕히 계셔요!" 하는 저의 말에도 "예! 조심하씨요! 잉 고생하셨소!" 하시는 말씀이 어째 기분 좋게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소포를 배달 할 때 수취인이 낮잠을 자는지 아닌지 알아보고 배달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