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칼의 용도
부엌칼의 용도
오늘도 해안을 끼고 길게 뻗어있는 해안도로를 따라 우편물을 배달하러 언제나 저와 함께하는 빨간 오토바이와 천천히 달리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퍼져 나오는 상큼한 바다 내음이 물씬 풍기는 해변의 들판은 언제나 평화로워 보입니다. 그러나 그 들판에는 오늘도 많은 아낙네들이 모여 쪽파를 수확하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한쪽에서는 경운기에 실려 있는 쪽파를 대형트럭으로 옮겨 싣기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쪽파를 싣고 도시의 공판장을 향하여 출발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합니다.
오늘 도시를 향하여 출발하는 쪽파는 어느 가정으로 팔려나가 김장김치의 양념이 되기도 하고 또 맛있는 반찬으로 변하여 식탁에 오르게 될 것입니다. 오늘도 쪽파를 수확하는 즐거움을 가득담은 농부들의 행복한 미소를 바라보며 저는 저도 모르게 덩달아 행복해 짐을 느끼며 도착한 곳은 전남 보성 회천면 서당리 연동마을입니다. 연동 마을의 세 번째 아담한 양옥집 앞에서 우체국을 출발할 때부터 저의 오토바이에 실려 있던 라면 박스를 절반으로 쪼개 만든 소포 한 개를 가지고 양옥집 현관문을 노크합니다. 그리고 주인을 불러봅니다.
“계십니까? 계세요?” 그러자 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예~에! 저 여기 있어요! 어머! 아저씨! 오셨어요?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이구~우! 소포가 빨리도 왔네~에! 어제 보낸다고 전화가 왔던데!” 하며 젊은 아주머니께서 저를 반기십니다. “요즘은 우편물이 빨리 오거든요! 그런데 이 소포는 착불 소포라 소포요금을 사모님께서 주셔야겠네요!” 하였더니 “알고 있어요! 어제 동생에게 전화가 왔었어요! 아저씨! 잠시만 기다려주세요!”하면서 얼른 주방 쪽으로 들어가더니
즐거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무엇인가를 달그락거리며 찾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는 “이상하다~아! 분명히 여기다 뒀는데 이게 어디 갔지~이!”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래서 저 혼자 생각하기를“돈을 미처 찾지 못하셨나? 그럼 내일 주셔도 되는데!”하는 마음으로“사모님! 무엇을 그리 찾고 계세요? 혹시 돈을 찾지 못하셨으면 돈은 내일 주세요! 그리고 여기에 사인을 한번 해주세요!”하였더니 “아니에요! 아저씨! 돈이 아니구요! 지금 다른 것을 찾고 있어요!”하고 대답을 하더니
“에라 모르겠다! 이걸 그냥 써야겠다!”하며 오른손에 들고 나온 것은 부엌에서 쓰는 커다란 부엌칼입니다. “아니! 사모님! 소포 착불 요금을 달라고 했는데 갑자기 웬 부엌칼을 가지고 나오십니까?”하고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더니 “호~홋~홋~호”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아저씨! 그게 아니구요! 소포를 풀어보려고 과도를 찾는데 이상하게 과도를 어디다 뒀는지 찾지를 못하겠어요! 그래서 부엌칼을 대신 가지고 나왔어요!”하며 연신 싱글벙글 웃더니 “어디보자! 우리 애기가 어떻게 나왔나 한번 볼까?”
하며 매우 기대가 섞인 눈빛으로 소포의 끈과 테이프를 칼로 조심스럽게 자르고 접혀진 라면 박스를 풀어보니 속에 또 하나의 작은 박스가 들어있습니다. “아이구! 단단히도 싸서 보냈네!” 하더니 다시 박스를 풀자 그 속에서 또 하나의 작은 박스가 나오고 있습니다. “아니! 사모님 소포 속에 뭐를 넣었기에 그렇게 단단히 포장을 했답니까? 혹시 무슨 귀중한 물건이라도 보냈을까요?” 하는 저의 물음에 젊은 아주머니께서는 연신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아니에요! 아저씨! 그게 아니구요!
저의 친정 집 조카가 엊그제 돌을 지냈어요! 그래서 돌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더니 이렇게 단단히도 포장을 했네요!” 하면서 다시 박스를 풀자 그 안에서 다시 비닐로 포장된 가정에서 쓰는 큰 접시 크기의 동그란 시계하나가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비닐을 벗겨내자 시계 바늘 왼쪽에 마치 천사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아기의 사진이 인쇄되어 있는 겁니다. “아이구~우! 이뻐라! 예쁘게도 나왔네~에! 아저씨! 그렇지요? 정말 예쁘지요?”하면서 젊은 아주머니께서 시계를 저에게 보여줍니다.
“예! 정말 예쁘네요! 참! 요즘은 정말 기술이 좋네요! 시계에 사진을 인쇄하다니 그런데 조카 사진인가 보지요?”하는 저의 물음에 “예! 제 친정집 조카에요! 엊그제 낳은 것 같았는데 벌써 이렇게 컷다니 세월 저~엉말 빠르다~아!”하시며 마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표정입니다.“이제 조카 사진이 예쁜 시계로 왔으니 보기가 싫어도 하루에 몇 번씩은 보셔야 되겠네요! 정말 좋으시겠습니다!”하고 빙그레 웃었더니 “정말 그래야 할까 봐요! 고맙습니다! 아저씨!”하는 젊은 아주머니의 전송을 받으며 현관문을 나섭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행복은 아기의 웃음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오늘 천사처럼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 아기도 언제나 천사 같은 마음씨로 예쁘게 자라났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