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더 놀다 가랑께!"

큰가방 2007. 11. 24. 18:02
 

“더 놀다 가랑께!”


오늘도 나는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의 우편물을 배달하다 보니 어느새 전남 보성 회천면 율포리 장목 마을에 도착하여 이집 저집으로 우편물을 배달하다 마을 가운데쯤 살고 계시는 할머니 댁 우편 수취함에 우편물을 넣고 막 돌아서려는데‘덜컹’하고 방문이 열리더니 할머니께서“아제! 우리 집에 뭣이 왔어?”하고 물으셨다. “전화요금 고지서가 나왔네요.” “전화세가 나왔어? 그라문 을마나 나왔는가 잔 봐 주고가~아!”하시는 할머니 말씀에


오토바이를 잠시 세우고 우편 수취함에서 전화요금 고지서를 꺼내“이달 전화요금은 7천 5백 원이 나왔네요.”하였더니 “그랬어? 늙은이 혼자 사는 집에 무슨 전화세가 그렇게 많이 나와? 나는 별로 전화도 쓰지 않는데!”하신다. “전화요금은 기본료가 있기 때문에 조금만 써도 그렇게 나와요.”하는 순간 어두컴컴한 하늘에서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어? 오늘 소나기 내린다는 일기예보도 없었는데 갑자기 무슨 비가 쏟아지고 있지?”하고


얼른 빨간 오토바이는 비가 뿌리지 않는 처마 밑에 세워두고 잠시 할머니 댁 마루에 앉아 비 그치기를 기다리며 차갑게 내리는 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빙그르르 원을 그리며 한잎 두잎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노란은행잎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가을은 이제 우리 곁에서 멀리 떠나가고 말았구나!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차가운 겨울은 더욱 빨리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오겠지! 더군다나 어제 중부지방에서는 발목이 빠질 만큼 많은 눈이 내렸다는데!”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제! 뭔 생각을 그라고 하고 있어? 혹시 비가 많이 와서 집에 못 갈 것 같어 걱정하고 있는 것 아니여?”하고 물으셨다. “아니요! 그냥 별 생각 없이 앉아있어요.” “내가 보기에 비가 오고 있응께 집에 못 갈 것 같어 걱정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디 그래!” “그것이 아니고 별 생각 없이 그냥 앉아 있다니까요! 날이 추우니까 방문을 닫고 계세요! 할머니!” “와따~아! 그래도 밖에 손님이 있는디 문을 닫아불문 쓰간디! 아제! 걱정 할 것 없어!


비가 와서 집에 못가문 내가 방(房)한개 주께 우리 집에서 자고 가!” “예~에? 방을 주신다고요? 무슨 방을 주시려고요?” “우리 집에 빈방이 두개나 있어! 그랑께 걱정하지 말어! 비가 와서 집에 못 가문 내가 방에 불도 때주고 밥이랑 해 주것잉께 걱정하지 말어! 알았제?”하셨다. “할머니 비가 와서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니까요!” “그라문 뭣이 걱정이여? 혹시 배가 고픈가? 가만있어 봐! 잉! 아까 누가 와서 뭣을 놔두고 갔는디 으디 있드라 여가 있구만 아제! 이것 잔 자셔봐!”하며 내민 것은 초코파이였다.


“할머니 초코파이는 어디서 나셨어요? 혹시 가게에서 사 오셨어요?” “다리 아픈 사람이 언제 가게까지 가서 이런 것 사 오것어? 좀 전에 회천파출소에서 순경 두 사람이 왔데!” “경찰관이 두 사람이나 왔어요? 왜요? 할머니 잡아가려고요?” “늙은이를 잡아가서 으따 쓸라고 잡아가? 그것이 아니고 자원봉사자라고 남자 한명 여자 두 명을 데리고 같이 왔드만 그란디 그 사람들이 우리 집 청소를 해 주려고 왔다고 그러드만 집을 한바퀴 빙 둘러보더니 집이 깨끗해서 청소할 것도 없다고


나하고 한참 재미있게 이야기하고 놀다 심심하면 먹으라고 이것을 놔두고 가데!” “할머니 연세가 어떻게 되셨는데요?” “내 나이? 올해 칠십 여덟이여!” “예~에? 그런데도 그렇게 얼굴이 고우세요?” “곱기는 뭣이 고와! 인자는 많이 늙어 부렇제!”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어느새 짙은 먹구름이 물러가고 밝은 햇살이 비추면서 소나기가 천천히 그쳐가고 있었다. “할머니 이제 비가 그치기 시작하네요. 저 바빠서 그만 가 볼게요.”


“아제 쪼그만 기달려 봐! 여그 사탕도 있응께 자시고 가! 아까 그 사람들이 사탕도 놔두고 갔어!” “사탕은 심심하실 때 할머니 잡수세요!” “아이고! 뭣이든지 혼자 묵으문 맛이 없어 그랑께 사탕 한개 더 자시고 놀다 가랑께! 잉! 어서!”하시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다음 마을을 향하여 달려가며 더 함께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지 못한 할머니께 정말 죄송하고 미안한마음이었다.

*이것 자시고 더 놀다 가랑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