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내가 안 때렸어요!

큰가방 2005. 1. 7. 22:01
 

내가 안 때렸어요!


“할머니! 할머니 어디계세요? 아무도 안계세요?”보성읍 용문리 주음마을 맨 끝 조그맣고 아담한 집에서 자녀들은 모두 도시로 보내고 홀로 살고 계시는 할머니 댁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가 큰소리로 할머니를 불러보지만 마당 한쪽에 묶여있는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앞발을 세우고 저를 노려보며“워~웡 웡~웡~웡!”하고 짖어 댈 뿐 집에서는 아무 인기척이 없습니다. “이상하다! 어디를 가셨지?”하고 다시 현관 문 유리창을 서너 번 노크를 하였지만 역시 방안에서도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어제의 일입니다. 주음마을 우편물 배달을 하려고 할머니 집 앞을 지나가는 순간 “아제! 우리 아들이 오늘 돈을 쪼깐 부친다고 했는디 이따 우체국에 가문 찾아 질랑가 몰것네?”하셔서 저는 별 생각 없이 “예! 주민등록증하고 도장을 가지고 오시면 찾을 수 있어요! 아드님이 돈 보낸다고 했어요?” “잉! 내가 돈이 쪼깐 필요해서 엊저녁에 아들한테 전화했드만 오늘 보내준다 글드만 그란디 돈이 일찍 필요하다고 했드만 ‘그라문 아침 밥 묵고 그냥 보내께라!’글드랑께 이따가 우체국에 가문 찾을 수 있다고?”


“예~에! 찾을 수 있어요!”하고 할머니와 헤어진 뒤 우편물 배달이 모두 끝나고 우체국에 돌아와 오늘 받아온 공과금 그리고 등기우편물 등을 우체국 창구에 접수 시키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우체국에 오셔서 저를 보고 “아제! 돈을 으서 찾아야 쓸랑가 몰것네!”하시기에 예금 창구로 모시고 가 할머니께 돈이 도착하였는지 알아보았으나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입니다. “할머니! 혹시 아드님이 돈을 통장에 넣는다고 하지 않던가요?” “금메! 그 말은 않고 그냥 돈만 보낸다고 글든디!” “그럼 통장은 안가지고 오셨어요?”


“아까 아제가 도장하고 주민등록증 만 갖고 오문 된다 그래서 그냥 왔제!” “그럼 혹시 아드님 전화번호는 알고 계세요? 아드님께 전화 한번 해보게요!” “금메! 내가 우리 아들 전화번호를 잘 몰것당게!” “그럼 어떻게 하지요? 통장이 있으면 돈이 왔는지 안 왔는지 금방 알 수 있을 텐데! 할머니! 그럼 우선 돈이 필요하시면 제가 조금 빌려 드릴까요?” “아이고! 안되야! 돈 없으문 그냥 말어야제 미안하게 아제한테 빌리고 그라문 되간디!” “할머니 그럼 여기 의자에 잠시 앉아계세요! 제가 따뜻한 커피 한잔 뽑아올게요!”


하고 우체국 공중 실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을 뽑아오는 순간 할머니는 이미 집으로 가셨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참! 할머니도 잠시 기다리다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시지 날씨도 추운데 우체국까지 걸어오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을까?”하고 아까 할머니를 만났을 때 통장과 주민증 도장까지 가지고 나오시라고 했다면 추운 날씨에 헛고생은 안하셨을 것 같은데 하는 아쉬움이 있어 굉장히 미안했는데 오늘 다행히 할머니께 돈이 온 것입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어디를 가셨는지 대답이 없고


마당 한쪽에 묶여있는 커다란 개 한 마리가 자꾸 저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리고 있습니다. “얌마! 나는 반가운 손님이야! 알겠어? 그러니까 짖지 말란 말이야!”하고 커다란 개를 타일러 보았지만 개는 제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이번에는 이리저리 왔다갔다 몸부림을 치면서 마치 저를 잡아먹고 싶다는 듯 으르렁거리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할머니께서 대문을 열고 들어오시며“우메! 내가 아제를 여태까지 기달리다 금방 으디 좀 갔다 왔는디 그새 와서 기달리고 있었는갑네! 추운디 미안해서 으짜까?”


하시며 활짝 웃는 얼굴로 저를 반기십니다. “할머니! 날씨도 추운데 어제 저 때문에 고생하셨지요? 돈이 오늘 왔네요!” “아이고! 뭣이 고생은 고생이다요! 우리 아들이 돈을 늦게 보내 그랬제 아제가 뭔 잘못은 잘못이간디!”하시며 미리 준비한 도장을 내주십니다. “할머니! 추운데 얼른 방에 들어가세요! 저 그만 갈게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며 할머니께서 방으로 들어가시는 것을 보고 대문을 향하여 천천히 나오고 있는데 커다란 개가 이번에는 하얀 이(齒)를 드러내더니 침을 질질 흘리며 마치 저를 잡아먹고 싶다는 듯


길길이 날뛰며 큰소리로 짖어대기 시작합니다. “아니! 나는 반가운 손님이라니까 너 자꾸 이럴 테냐?”하며 얼른 고개를 숙이고 땅바닥에 돌을 집어 사정없이 던지는 시늉을 하였더니 그것을 바라본 개는 갑자기 “캐~엥!”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케~켕! 케~켕!”하고 마치 무슨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비명을 지르고 야단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할머니께서 방문을 열고 나오시더니 “아니! 으째 개를 때리고 그래 싸~아?” “할머니 내가 안 때렸어요! 저 혼자 괜히 깽~깽 거리고 있어요!”


“아니 때리도 안 했는디 으째 저라고 깽깽 거려 싸~아? 혹시 아제가 개를 꼬집어 뜯은 것 아니여?” “아이고! 할머니도 참! 제가 개를 꼬집어 뜯으면 저 큰개가  저에게 덤벼들던가! 물어버리든가 하지 가만히 있겠어요?” “대차 그라고 본께 그라네! 그란디 으째 저라고 개가 깽깽거려 싸까~아?” “할머니에게 먹을 것 좀 달라고 조르는 것 같네요!” “참말로 그라까? 아까 내가 묵을 것을 줬는디! 이상하네!”하십니다. “여러분! 제가 정말 개를 꼬집어 뜯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