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미납된 재산세

큰가방 2007. 12. 9. 07:09
 

미납된 재산세


“어르신! 어제 저에게 납부해 달라고 주신 재산세 있지요? 그것을 면사무소에서 다시 조회를 해 보았는데 이미 납부하셨다고 하네요. 여기 저에게 주신 재산세 2만 2천원 다시 가져왔거든요. 확인 한번 해 보시겠어요?” “그랬어? 그랑께 내가 재산세를 낸 것 같은디 독촉장이 나와서 이상하다 그랬는디 다행이구만.” 그러니까 어제의 일이었다. 내가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우편물을 가득 싣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배달하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오후4시가 넘어서고 있었고


오늘의 마지막 배달구역인 전남 보성 회천면 영천리 양동마을에 도착하였는데 마을의 가운데 골목길로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공사장에서 시멘트를 실어 나르는 공사차량이 나오는 바람에 깜짝 놀라 한쪽으로 비켜서있는데 할머니 한분께서 빙긋이 웃으며 나를 바라보셨다. “할머니! 골목길에 무슨 공사하나요? 왜 공사차가 왔다 갔다 하나요?” “그것이 아니고 우리 새집 짓고 있어!” “새집을 짓고 계신다고요? 어디에 짓는데요? 할머니 댁 집터가 좁던데 집을 지을만한 땅이 있었어요?”


“그래서 헌집은 헐어불고 아래쪽 밭을 합쳐서 옛날에 살던 집보다 조금 크게 짓고 있어!”하시며 연신 싱글벙글 하신다. “정말 잘하셨네요. 그동안 낡은 집에서 지내느라 고생도 많으셨는데 이제 할머니는 크고 멋진 새집에서 사시겠네요!” “크게 짓도 안하고 조그만 하게 지을 거여!”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바로 앞집에 살고 계시는 영감님께서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심각한 얼굴로 급히 대문을 열고 나오시더니 “어이! 자네 마침 잘 만났네! 내가 자네한테 뭣을 잔 물어봐야 쓰것는디!”하셨다.


“무엇을 물어보시게요?” “다름이 아니고 지난달에 우리 집 재산세를 안 냈다고 독촉장이 나왔더란 말이시. 그런데 그때 내가 자네에게 재산세를 내 달라고 준 것 같은데 혹시 생각 안 나는가?” “재산세요? 재산세라면 이미 9월 달에 마감이 되어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생각이 잘 나질 않는데 어떻게 하지요? 재산세를 저에게 주셨다면 혹시 제가 드린 영수증 보관하고 계신가요?” “영수증? 글쎄 내가 영수증을 어디다 두었는지 아무리 찾아도 없더란 말이시 이일을 어떻게 해야 쓰것는가?”


“그래서 제가 영수증은 잘 보관하시라고 그랬는데 영수증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요? 그런데 재산세 독촉장은 언제 배달되었던가요?” “조금 오래되었어! 그래서 자네 오기만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시!” “그랬어요. 그러면 우선 독촉장을 한번 보여주시겠어요?” “그럼 그러까?”하고 집으로 들어가신 영감님께서 잠시 후“어이! 자네 이리 좀 들어와 보소! 어떤 것이 재산세인지 알 수가 없단 말이시!”하며 나를 불러 마당으로 들어갔는데 영감님께서는 전기, 전화, 건강보험 고지서를 가지고 이리저리 재산세 고지서를 찾고 계셨다.


“어르신 가지고 계신 고지서를 전부 저에게 줘보세요!”하고 재산세 독촉장을 찾았는데 고지서에는 독촉장이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적혀있었다. “어르신! 혹시 세금영수증은 보관하고 계시지 않나요?” “영수증 보관할 필요가 어디 있어! 세금이 나오면 자네들이 다 알아서 잘 바쳐주고 아직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디 영수증을 보관하고 말고 하것는가?” “그래도 혹시 이런 일이 생길까봐 미리 영수증을 보관하라고 하라고 했는데 모두 버리셨다는 말씀이세요?”


“그라문 영수증이 없는디 으째야 쓰것는가?” “그러면 일단 재산세 2만 2천원을 주시겠어요? 제가 면사무소에 가서 다시 알아보고 미납되었다면 할 수 없는 일이고 이미 납부되었으면 내일 다시 가져다 드릴게요.” “그란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내가 자네를 준 것 같더란 말이시!” “그런데 제가 공과금을 거두어 갈 때는 여러 사람이 부탁하니까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거든요. 그리고 저도 아직 한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정말 이상한 일이네요.”


“알았네! 그럼 우선 내가 돈을 줄 테니까 자네가 수고스러워도 다시 한번 알아봐 주소! 바쁜 사람 붙잡아서 미안하시~잉!”하며 재산세 독촉 분을 주셨는데 우편물 배달이 모두 끝나고 면사무소에서 조회를 하였더니 재산세는 지난 9월 28일 이미 납부되어 있었다. “자네가 아직 한번도 실수하는 일이 없었는디 내가 영수증 보관을 안 하는 바람에 괜히 수고를 끼쳐 미안허시!”하시는 영감님의 얼굴에는 흐뭇함과 미안함이 함께 교차하고 있었다.

 

*11월 말 차가운 날씨에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저의 집 방충망에 앉아있었습니다. 더 추워지기전 따뜻한 곳으로 가야 할텐데!

 

*요즘 대통령 선거 기간 때문에 큰가방이 조금 바빠 여러분의 방을 찾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해가 있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