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탕수육
할머니의 탕수육
2000.11.07
나는 오늘도 오후 2시가 넘은 시간에 늦은 점심을 먹으러 친구 부부가 운영하는 중화 요리 식당으로 갔다. 요즘 불경기 탓인지는 몰라도 식당 안은 텅 비어 있었고 친구 부인은 혼자서 마늘 껍질을 까고 앉아있었다. 점심을 시켜놓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 그렇게 화려하지도 않게 수수하게 차려입으신 70세가 넘겨 드신 할머니 한 분이 들어오시더니 주인아주머니를 찾으셨다. 그리고는 잠시 친구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나 갈께! 잘 부탁해!" 하시며 밖으로 나가시는 것이었다.
나는 그저 그 할머니와 친구부인과 잘 아는 사이이려니 생각하고 식사를 하고 있는데 친구 부인이 무슨 음식을 열심히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에 그릇에는 탕수육이 담겨있었고 친구부인은 어디론가 배달을 간다며 탕수육을 가지고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친구 부인이 돌아오자 "어디로 배달을 다녀오십니까?" 하였더니 친구 부인은 "이 앞 소방서에요!" 하는 대답이었다. "소방서에서 음식을 시켰어요?" "아니요! 방금 전 그 할머니가 매달 두 번씩 소방대원들 고생하신다고 시켜드리는 거예요!"
"아니! 그 할머니가 무엇을 하는 할머니신데요?" "할머니가 무슨 직업이 있어서가 아니고 옛날에 할아버지께서 전직 경찰관이셨는데 정년하신 후 지금은 작고하셨다고 하데요! 그런데 해마다 경찰의 날에는 경찰관들에게 선물도 하시고 또 불우 이웃돕기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금까지 많은 불우이웃을 도와오셨다고 하더라고요! 잘 사시지도 못하면서 더군다나 자식도 없이 당신도 혼자 지내면서 불우 이웃돕기도 열심히 하시고 아마 저 할머니는 돌아가시면 좋은 곳으로 가실 거예요!"
하는 친구부인의 설명을 듣는 순간 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과연 불우이웃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일을 하였나? 그저 바쁘다는 핑계로 불우이웃을 외면하지는 않았는지! 그저 길거리에서 걸인을 만나 천 원짜리 지폐 한 장 슬며시 던져주고 불우이웃을 도왔다고 자부하지는 않았는지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넉넉하지 않는 살림에도 불우이웃 돕기에 앞장서신다는 그 할머니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