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젊어서 잘해야지!

큰가방 2008. 1. 6. 21:44
 

젊어서 잘해야지!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에 행복이 가득 담긴 우편물을 배달하는 길. 동짓달 하루해는 짧기만 하여 내가 전남 보성 회천면 군농리 화당 마을에 들어서며 시계를 보았더니 오후 5시가 넘어서고 있었고 어느덧 하루해는 서산마루에 걸려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 붉은 석양의 노을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화당 마을이 종점(終點)이니 다행스럽게 오늘은 해 지기 전 우편물 배달을 모두 끝낼 수 있겠구나! 겨울철은 낮 시간이 1시간 만 더 길어도 정말 좋겠는데!”하며


마을의 네 번째 집 등기우편물 한 통을 배달하려고 빨간 오토바이를 세우고 있는데 갑자기 대문이“텅!”하고 열리더니“아제! 우리 집  돈 왔제?”하며 할머니께서 활짝 웃는 얼굴로 나오셨다. “아이쿠! 깜짝이야! 갑자기 문을 그렇게 세게 여시면 어떻게 해요? 하마터면 대문에 머리 찧을 뻔했어요. 할머니~이!” “우메! 그랬어? 미안해서 으짜까? 나는 암도 없는지 알고 열었제~에!” “그런데 돈이 올 줄 어떻게 아셨어요?” “우리 딸이 엊저녁에 전화했습디다. 그랑께 알제~에!”


“그런데 어르신 주민등록번호를 환증서에 적어야하는데 혹시 알고계세요?” “아이고~오! 내가 그것을 우추고 알것어? 이리 들어와!”하며 집안으로 들어가신 할머니“애기 아부지! 막내가 보낸 돈 왔다 그라요. 그랑께 얼렁 주민등록증 갖고 나오씨요!”하셨는데 방안에서는 아무 기척이 없었다. “애기 아부지! 뭣하고 있소? 얼렁 주민등록증 갖고 나오랑께! 우체부 아제가 지금 지달리고 섰구만!” “아! 쪼금 기달려 봐! 지금 찾고 있응께!” “그것을 으따 둬불고 뭣을 할 때마다 찾고 그라요?”


“이상하네? 내가 지갑 속에 넣었을 껏인디 으디로 가부렇으까?” “어르신 꼭 주민등록증이 아니라도 상관없어요. 경로증이나 의료보험카드가 있어도 되거든요. 혹시 주민등록번호 알고 계시면 그냥 불러주셔도 괜찮고요.” “내가 우추고 외우고 있것는가? 쪼그만 지달려 보소!”하시더니 경로우대증을 가지고 나오셨다. “여기 현금 20만원이거든요. 한번 세어보세요!” “와따~아! 첨 보것네! 오직 잘 시어서 갖고 왔것어? 시어보나 마나 잘 맞것제!” “그런데 따님이 용돈 보내셨나요?”


“그것이 아니고 요새 지름값이 너무 비싼께 이 돈으로 연탄사라고 우리 막내딸이 보냈어!” “그럼 연탄아궁이를 사용하는 방은 있나요?” “우리 집 방이 전부 네 갠디 세 개는 기름보일라고 한 개는 연탄 방이여!” “그럼 잘하셨네요. 이 돈으로 연탄 들여놓으시면 금년 겨울은 아무 걱정 없으시겠네요.” “그란디 아제! 우리 둘째딸이 택배를 부친다고 했는디 낼이나 올란가 몰르것네?” “오늘 보냈다고 하던가요?” “몰라! 오늘 부쳤응께 전화했것제!” “무엇을 보낸다고 했는데요?”


“즈그 아부지 생일이라고 빵 보낸다고 그라드만!” “따님이 모두 몇 분이세요?” “딸? 전부 셋이여!” “그럼 아드님은요?” “아들? 아들은 한나 뿐이여! 그란디 옛날에는 뭣할라고 딸을 셋이나 낳든가 몰르것어!” “무슨 말씀이세요? 따님이 세분이니까 이렇게 연탄값도 보내드리고 맛있는 빵도 보낸다고 하는데 저는 딸이 없으니 이런 선물 받기도 힘들겠네요!”했는데 갑자기“그란디 옛날에 내가 딸 셋 낳고 난께 아들 못 낳는다고 을마나 시집살이 한지 알아? 아이고!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지긋지긋하단께!”하며


영감님께 눈을 흘기셨다. “아니? 할머니! 왜? 잘나가다 불똥이 어르신께 튀나요?” “뭔 불똥이 영감 한테 튀여? 그냥 그렇다는 말이제!”하면서도 여전히 영감님께 눈을 흘기시는데 할머니 눈치를 살피던 영감님, 살며시 일어서더니 “날씨도 춥고 그란디 고생했네!”하고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셨다. “젊은 시절 아들 못 낳는다고 얼마나 할머니를 구박하셨기에 이제는 저렇게 눈치를 살피실까? 나도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집사람에게 잘해야겠다!”


 

 

*주암호에 안개가 피어오르는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