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디만치 왔어?"
“으디만치 왔어?”
“할머니 여기 우체국인데요. 서울 김영님 씨가 누구 되세요? 따님이라고요! 따님께서 신발을 선물로 보내셨네요. 그러니까 이따 오후 2시쯤 댁으로 배달해드릴게요. 혹시 밖에 나가실 일 있으세요? 그럼 그때쯤에는 어디 나가시지 마시고 집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아시겠지요?”하고 전화를 끊은 다음 오늘 배달할 우편물을 정리하여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을 향하여 우체국 문을 나섰는데 요즘 들어 엄청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시골마을로 향하는 도로가의
가로수들은 나뭇잎 하나 걸치지 않은 더욱 앙상한 가지를 늘어뜨리고 지나가는 겨울바람과 맞서 싸우는 듯 “위~~윙!”휘파람 소리를 내고 있는데 마을입구 양지쪽에 서있는 조그만 매실나무 가지에는 어느새 봄이 왔음을 우리에게 알리는 듯 조그만 꽃눈이 하나 둘 솟아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차가운 겨울이 아무리 오래 우리 곁에 머물고 싶어도 이미 찾아오는 봄을 결코 막아내지 못하는가 보구나!”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였다.
“즐거운 오후 되십시오! 류상진입니다.” “아제! 지금 으디만치 왔어?” “여보세요? 누구에게 전화하셨어요?” “우체부 아제 아니여? 지금 우체부 아제한테 전화 걸었는디!” “그러세요! 누구신데요?” “나~아! 여그 은항이여! 은항!(전남 보성 회천면 서당리 은행마을)” “아~아! 할머니세요? 그런데 왜 전화하셨어요?” “아니~이! 우리 딸이 보낸 내 신발 갖고 온다 그래서 으디만치 왔는지 궁금해서 해 봤어!” “여기는 천포리 묵산 마을인데 할머니 마을까지 가려면 아직도 1시간 30분은 더 걸릴 것 같은데 어떡하지요?
무슨 바쁜 일 있으세요!?” “아니~이! 바쁜 일은 업는디 그냥 궁금해서 걸어봤어! 그랑께 천천히 와!”하며 전화는 끊겼다. “할머니께서 왜 전화를 하셨지? 바쁜 일이 있어 전화를 하신 것일까? 그렇다면 서둘러야겠는 걸!”생각하며 부지런히 이집 저집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는데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또 다시 휴대전화 벨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네~에! 즐거운 오후 되십시오! 류상진입니다.” “아제! 여그 은항이여! 그란디 우리 집 올라문 아직 멀었어?”
“할머니 제가 지금 원서당 마을에 와 있거든요. 앞으로 20분 정도만 기다리시면 되는데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나요?” “아니~이! 급한 일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으디를 잔 나갔다 올라 그란디 아제 온 것 보고 갈라고 암만 지달려도 안와서 해봤어!” “그러셨어요?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되는데!” “아니~이! 그냥 으디만치 왔는지 궁금해서 해 봤응께! 천천히 와!”하며 전화는 끊겼다. “할머니께서 딸이 보내 준 새 신발을 신고 어디가려고 하시는 것일까?
마을에 놀러 가면 새 신발이 필요 없는데! 그러면 보성 읍내(邑內) 나가려고 그러실까? 참! 잠시 후면 읍내 나가는 버스가 있는데 그 버스 타려면 지금 마을 앞 버스정류장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럼 안 되겠는걸!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신발을 먼저 전해드리고 다른 곳 우편물을 배달해야겠다!”하며 얼른 할머니 댁으로 달려가 대문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있는데 “아제! 도장 여�어!”하며 할머니께서 활짝 웃는 얼굴로 대문을 열고 나오셨는데“도장은 없어도 되요!”하며 할머니를 바라보니 나들이 옷차림이 아니었다.
“어디 나가신다고 하시더니 나들이할 차림이 아니네요!” “내가 은제 나들이한다고 그랬어? 그냥 마을회관에 놀러갔다 온다 그랬제!” “그랬어요? 저는 어디 나가신다고 해서 새 신발 신고 보성 읍내 나가실 줄 알고 버스타고 가시라고 부지런히 달려왔거든요!” “아니여! 버스는 안 타고 회관에 갔다 올라고 그래!” “그러면 그냥 놀러 가시지 할머니가 안 계셔도 소포는 집에 넣어두면 되는데!” “그래도 아제가 우리 딸 선물 갖고 온다 그란디 집을 비우문 쓰간디 고생한 사람 얼굴이라도 보고 가야제!”
*전남 보성 회천면 객산리 고개에서 바라 본 안개에 쌓인 전남 고흥군 득량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