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이름?
부끄러운 이름?
“오늘은 차갑고 강한 바람과 함께 많은 양의 눈이 내릴 것으로 예상되오니 외출하실 분은 두툼한 옷을 준비하시는 것이 좋겠고 설을 맞아 고향을 찾는 분들은 특히 미끄러운 눈길 운전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내가 우편물을 정리하여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가득 싣고 우체국을 출발하였을 때만 해도 하늘에 햇볕이 잔잔하던 날씨가 첫 번째 우편물을 배달하는 전남 보성 회천면 전일리 군학마을을 향하여 해안도로를 따라 달려가면서 무심히 바라본
일림산(日林山) 산봉우리에서부터 강한 바람을 타고 나르는 듯 시커먼 구름이 산 아래쪽 마을을 하나 둘 덮치기 시작하더니 이내 하얀 눈이 사정없이 쏟아 붓고 있었다. “우리민족 고유명절 설날도 이틀밖에 남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추운 날씨는 매일 계속되는지, 제발 설날까지만 이라도 좋은 날씨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며 눈보라를 헤치며 군학마을을 지나 삼장마을에 도착하였을 때 눈은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고 하늘에서는 구름 사이로 가느다란 햇살이 반짝이고 있었다.
내가 삼장마을의 중간쯤에서 소포 한 개를 배달하려고 대문 앞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큰소리로“박복달씨! 소포 왔습니다! 빨리나오세요!”하며 적재함에서 소포를 꺼내고 있는데 50대 후반의 아주머니께서 화가 잔뜩 났다는 표정으로 대문을 열고 나오더니 “아저씨~이! 그렇게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면 어떻게 해요~오? 좋은 이름도 아닌데!”하며 마치 따지듯 말을 하더니 빙그레 웃었다. “그러면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어떻게 불러야 되는데요? 속삭이듯‘박복달씨! 소포 왔습니다~아!’하면 안에서는 들리지도 않을 텐데
그렇게 부를까요?”하였더니 “아이구~우! 우리 친정아버지는 왜? 이름을 복달이라고 지어 내 속을 이렇게 상하게 하는지 몰라!” “아니? 복달이라는 이름이 어째서요?” “아저씨는 복달이라는 이름이 이상하지 않나요?” “뭐가 이상합니까? 한번 들으면 절대 잊어 먹지 않아 좋기만 한데요!” “복달이가 좋기는 뭐가 좋아요! 기왕에 지으려면 예쁜 이름도 많은데 복달이가 뭐야? 복달이가!” “하긴 사모님 어렸을 때는‘복다라! 복다라!’하며 놀림도 많이 당하셨겠네요.
그런데 이제 나이도 있고 그런데 그 나이에 이름이 좋으면 뭐하고 나쁘면 뭐한답니까? 어디 맞선보러 가실 것도 아닌데!” “그래도 누가 이름을 물어보면 얼른 대답하기가 그렇더라고요.” “이름이 복 福자에 통달할 達자 아닌가요? 우리가 발음하기가 그렇지, 복달이라는 이름도 좋은 뜻의 이름인데 옛날에는 어른들이 여자들 이름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 그렇게 지었을 거예요.” “어째서 여자들 이름에 신경을 쓰지 않았을까요? 참! 이상한 일이네!” “옛날 여자들은 아가씨 때는 이름을 사용하다
결혼을 하여 아이를 낳고 나면 대부분 이름을 사용하지 않거든요. 처음에 결혼을 하면‘새댁’으로 불리다 아이를 낳으면 그때부터‘누구 엄마’라 부르고 특히 시골에서는 친정마을 이름을 따서‘서울댁’이니‘부산댁’이니 하는 댁호(宅呼)를 사용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여자들은 직장생활을 하다 결혼을 하면 대부분 직장을 그만두기 때문에 이름이 거의 묻혀버렸는데 세월이 흐르고 세상이 변하면서 이제는 여자들이 직장생활이라든가 사회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요즘에는‘이슬비’ ‘정다운’같은 성(姓)하고 이름하고 잘 어울리는 예쁘고 좋은 이름이 상당히 많더라고요. 사모님 따님도 예쁜 이름이던데요.” “내 이름이 좋지 않아 늘 그것이 한(恨)이 되어 우리 딸들은 일부러 예쁜 이름으로 지었어요.” “사모님! 정 이름이 마음이 들지 않으면 법원에 이름을 바꾼다는 개명(改名)신청을 하시면 좋은 이름으로 바꿀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해 보시지요!” “아이고! 그만 두세요! 이제야 좋은 이름으로 바꾸면 뭐하겠어요. 그냥 이대로 살아야지, 안 그래요? 아저씨!”
일림산 산봉우리 쪽에서 강한 바람을 타고 많은 눈 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강한 바람과 함께 눈이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한번 쏟아지기 시작한 눈은 얼마되지 않아 금방 쌓이기 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