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불러주세요!
이름을 불러주세요!
3월이 시작되자마자 하늘에서 내려오는 밝고 따스한 햇살이 부드럽게 온 대지를 감싸 안더니 포근한 봄바람이 살랑거리며 불어오자 도로가(道路街) 한구석에 숨어있던 말라버린 나뭇잎 한 장이 때를 만난 듯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위로 솟아오르는가 싶더니 어디선가 날개를 팔랑거리며 날아온 하얀 나비 한 마리를 보고는 수줍은 듯 갑자기 땅바닥에 살며시 내려앉더니 조그맣고 아주 작은 하얀 꽃을 피워내는 이름모를 잡초 속으로 숨어버렸다.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우편물을 배달하러 가는 길.
전남 보성 회천면 동율리 해수욕장이 있는 우암 마을에서 택배하나를 배달하려고 박성길 씨 대문 앞에 빨간 오토바이를 세우자 할머니께서 얼른 나오시더니 “아제! 우리 집이 택배 왔어?”하고 물으셨다. “서울에서 강성금 씨가 보냈네요!”하며 라면 박스보다 조금 더 부피가 크고 상당히 무거운 택배하나를 적재함에서 꺼내 마루에 내려놓았더니 할머니께서“서울에서 강성금 이가 보냈어? 누구까? 나는 모르는 사람인디!”하시더니 안방을 향하여 “에! 말이요! 애기 아부지!
서울에서 강성금이가 택배를 보냈다고 그란디 혹시 누가 뭣 보낸다고 들어봤소?”하고 묻자 방문이 열리면서 고개를 내미신 영감님 “뭐시라고? 강성금이라고? 나는 모르는 사람인디 으째 그래?” “강성금이가 택배를 보냈다고 안 그라요!”하셨다. “어르신! 강성금 씨라고 모르는 사람이세요?” “금메! 나는 잘 모르것는디 으짠다고 택배를 보냈으까?” “혹시 자제분이나 친척이 택배 보낸다는 연락 안 했던가요?” “그런 연락은 못 받었는디!” “그래요! 그럼 여기 적어진 번호가 어르신 휴대폰 전화번호가 맞지요?”하며
택배 표면에 적어진 번호를 가르치자 “잉! 이것은 내 번호가 맞는디 으짠다고 이것을 보냈으까?”하며 고개를 갸웃거리셨다. “그러면 이쪽으로 전화를 한번 해 보시겠어요?”하며 발송인 전화번호를 가르치자 “전화 해 볼란께 쪼깐 지달려 보소 잉! 택배가 내껏 아니문 도로 가져가야 된께!”하며 전화를 하시더니 “잉! 누구여? 큰 아그냐? 나다! 그란디 뭣을 보냈냐? 내 보약(補藥)이라고? 아이고! 요새 도시는 불경기라 장사도 잘 안된다고 하드만 뭣할라고 비싼 것을 해서 보냈냐? 잉! 알았다!
그랑께 아침에 일어나서 한개, 저녁에 잠자기 전에 한 개씩 공복(空腹)에 묵으라고? 알았다! 고맙다! 애기들이랑 잘 있지야? 그라문 들어가그라 잉!”하며 전화를 끊었다. “어르신! 누구에게 그렇게 반말을 하세요?”하고 물었더니 괜스레 미안한 얼굴로 변하신 영감님,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우리 큰며느리구만!”하신다. “아니! 그럼 아직 큰며느리 이름도 모르고 계셨단 말씀이세요?” “금메 으짜다 본께 큰며느리 이름도 모르고 살다 오늘 알았네!” “그럼 할머니께서도 이름을 모르고 계셨어요?”
“우리 영감도 이름을 모르고 있는디 나라고 이름 알고 있것어?”하시자 영감님께서“자네도 생각해 보소! 큰며느리가 시집와서 우리 집에 한 며칠 있었는가? 그라고 아들 따라 서울로 가 부렇다가 이따금 한번 씩 명절에나 여름휴가 때 집에 내려와 갖고 한 며칠 있다가 도로 가분디 은제 이름알고 뭣하고 하것는가?”하셨다. “그렇다고 다른 며느리도 아닌 보약을 지어 보낸 큰며느리 이름을 모르고 계시는데 그런 사실을 며느리가 알면 얼마나 서운하겠어요?
그러면 지금까지 며느리 부르실 때 뭐라고 부르셨어요?” “막 시집와서는‘새아가!’하고 부르다 애기 낳고 나서부터는‘누구 엄마야!’하고 부른께 이름이 영 안 외워지더란 말이시!” “그러면 작은 며느리 이름은 알고 계세요?” “작은 며느리는 결혼식 올리기 전부터 자주 왔다 갔다 해싸서 알고 있제~에!” “어르신! 다음부터는 큰며느리 이름을 불러주면 어떻겠어요? 그러면 이름도 잊지 않고 며느리도 좋아할 텐데요.” “참말로 이름 불러도 괜찬하까~아?”
지난 3월 3일 제가 살고있는 전남 보성에 내렸던 봄 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