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보청기
고장 난 보청기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러가는 길. 4월의 하순으로 접어들어 날씨는 더욱 따사롭고 밝고 고은 햇살이 온 누리에 부드럽게 퍼지면서 지난 1월 차가운 날씨 속에 손을‘호~호’불어가며 파종하였던 봄 감자는 어느새 싹이 푸르고 튼튼하게 자라나 오가는 길손에게 활짝 웃으며 반가운 인사를 하고 있는데 어디서 날아왔는지 이름모를 작은 새 두 마리가 감자밭 사이를 이리저리 기웃거려 보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늘 높이 솟아올라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내가 전남 보성 회천면 봉강리 봉서동 마을길을 천천히 달려 윗마을로 향하여 가고 있는데 마을 중간쯤에 있는 할머니 댁 대문이 활짝 열려있어 ‘오늘은 무슨 일로 대문을 열어놓으셨지?’하고 빨간 오토바이를 잠시 멈추고“할머니! 무엇하고 계세요?”하였더니 평상위에 파란 쑥을 수북이 베어다놓고 다듬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활짝 웃으며 “안 그래도 아저씨를 지달리고 있었는디 우추고 알고 찾아왔어?”하신다. “무슨 일로 저를 기다리고 계셨는데요?”
“아니~이! 다른 것이 아니고 엊저녁에 갑자기 내 보청기가 고장이 나 부러서 아무 말소리도 안 들리네! 그래서 보청기 만든 회사에 전화를 했드니 그것을 다시 보내주라고 그란디 우추고 할지 몰라서 아저씨한테 잔 보내주라 할라고!” “그러면 보청기 회사 주소는 알고 계세요?” “주소는 잘 모르고 이것 보여주문 아저씨가 다 알아서 보내줄 것이라고 그러데!”하며 보청기 회사 명함을 내 놓으셨다. “제가 잘 알아서 보내드릴게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명함은 가지고 갖다 내일 다시 가지고 오면 되겠지요?”
“그란디 보청기를 뭣으로 싸서 보내야 쓰꺼인디 뭣으로 싸까? 그냥 이 종이로 싸서 보내문 되까?”하더니 벽에 걸려있는 커다란 달력 한 장을 ‘쭈~욱’찢어내고 테이프를 내 놓으셨다. “보청기는 기계이기 때문에 종이에 싸서 그냥 보내면 더 큰 고장 날수도 있으니까 제가 우체국에 가지고 가서 공기가 들어있는 비닐로 싸서 조그만 박스에 담아 보낼 테니까 그런 것은 걱정하지 마세요!” “오~오! 그래~에! 그라문 돈은 을마를 줘야 되야?” “택배는 기본요금이 4천원이거든요.”
“그라문 만 원주께 갖고 가서 소포 보내고 남은 것으로 술 한 잔 자셔! 알았제?” “할머니 그러지 마시고 오천 원짜리 있으니 그걸 주세요!” “아이고! 그라문 쓰간디 그냥 만 원짜리 갖고 가랑께! 혹시 돈이 모지라문 안된께!”하시며 만 원짜리를 쥐어주셨다. “그러면 내일 잔돈하고 영수증 갖다드릴게요! 안녕히 계세요!”하고 대문을 나오는 순간 “아저씨! 그란디 명함은 주고 가야제!”하신다. “명함은 소포 보낼 주소가 있어야 하니까 제가 가지고 갖다 내일 영수증과 같이 가져다드릴게요.”
“인자본께 그란다고 했제! 잉! 알았어!” “그럼 안녕히 계세요!”하고 막 돌아섰는데 “아저씨! 그라문 인자 이 종이는 필요 없는가?”하며 벽에서 찢어낸 달력을 가르치신다. “보청기는 박스에 담아서 보내니까 그 종이는 이제 필요 없어요!” “그래~에! 그란디 무단히 종이를 찢어냈네 그냥 놔두껏인디 알았어!” “그럼 안녕히 계세요!”하고 막 대문을 나오는 순간 “아저씨! 그란디 그것 보낸다고 보청기 회사에 전화는 안 해도 된가? 전화를 해주고 그것을 보내야 쓰꺼인디!”
“전화는 이미 할머니께서 하셨다면서요. 그런데 또 전화를 하게요?” “참! 아까 내가 전화했제! 늙으문 정신이 없다드만 참말로 내가 그라네! 으째 이라고 정신이 업는가 몰르것네! 잉! 알았어!” “그럼 안녕히 계세요!”하고 막 빨간 오토바이에 오르려는 순간 “아저씨! 그란디 영수증은 안 주고 간가?”하신다. “영수증과 잔돈은 내일 가져다 드린다고 했잖아요! 제가 그렇게 못 미더우세요?”하였더니 빙긋이 웃으며“아니~이! 그란 것이 아니고 내일 꼭 갖고 오라고!”
*할머니의 고장 난 보청기인데 이제는 수리가 끝나 잘 사용하고 계신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