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 내리던 날
소나기 내리던 날
"오늘 호남지방은 대체로 맑겠으나 곳에 따라 강풍을 동반한 소나기가 내리는 곳도 있겠으니 대비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는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있었으나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하여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을 향하여 달려 갈 때는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가 계속되고 있었고 마을로 길게 이어진 도로 옆 밭에서는 많은 아낙네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얼마 남지 않은 봄 감자 캐내기에 여념이 없어 보이는데 길 건너 수확이 모두 끝나 모를 심기위하여
로터리를 치려고 물을 대고 있는 보리논에서 모이 찾던 비둘기 한 쌍이 오토바이 소리에 놀랐는지 갑자기 '후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다. 내가 전남 보성 회천면 전일리를 지나 봉강리 신근마을로 접어들었을 때부터 어디선가 나타나기 시작한 시커먼 먹구름이 하늘에 가득하더니 봉서동마을 우편물 배달이 끝나고 모원마을을 향하여 천천히 달려가고 있을 때 갑자기 '우루루! 쿵 쾅!' 하는 천둥소리와 함께 강한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아이고! 큰일 났다! 들판에서 소나기를 만났으니 어떻게 하지? 오늘 일기예보에 소나기가 내린다고는 하였지만 이렇게 갑자기 쏟아질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 했는데!" 하며 부리나케 빨간 오토바이를 달려 모원마을 앞 정자(亭子)처마 밑으로 들어서자 마을 어르신 세분이 정자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다 "편지 배달하다 갑자기 소내기가 쏟아지문 영 성가시것네! 비는 마니 안 맞었는가?" 하며 걱정스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많이 맞지는 않았어요?" "그라문 다행이고!" 하더니
옆의 어르신께 "자네는 올해 감자 해 갖고 돈 좀 벌었는가?" "첨에는 감자 한 박스에 3만원씩이나 하드만 쪼깐 있다가 떨어져분께 돈도 별로 안되드만! 지금은 2만 원 뿐이 안한다고 그라데!" "그래도 작년에 비하문 좋은 편이제!" "내가 듣기에 감자가격이 좋다본께 강원도에서 아직 덜 여문 감자를 캐내분다고 그라드만 그 말이 참말이까?" "설마 그라기야 하것어? 원래 일찍 나온 감자는 가격이 좋다가 많이 나오고 그라문 가격이 떨어지는 것이제!" 하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보시더니 "거시기 비가 이라고 많이 오고 있는디 으추고 할란가? 우리 집에 비옷 있는디 갖다 주까?" 하고 물으셨다. "아직은 괜찮습니다. 소나기니까 금방 그치겠지요!" "이 사람아! 소나기도 비는 빈디 금방 그치것는가? 자네가 바쁠 것 같응께 하는 말이여!" "저도 소나기 내리는 덕분에 조금 쉴 수 있으니 좋지 않습니까?" 하였더니 빙긋이 웃던 어르신 "하긴 자네도 쪼깐 쉴 때도 있어야제! 쉬도 못하고 편지배달만 하문 심들어서 안 되제!" 하더니 화제를 돌려 "그란디 감자 캐낸 밭에 뭣 심을란가?"
"금메! 인자 고추심기는 너무 늦었고 로타리 쳐서 콩이나 심을라고 그란디 자네는 우추고 할란가?" "나~아? 나는 그냥 묵혀 놀라고 그라네! 밭에 감자 캐고 나서 고추 심고 고추 따내고 나문 쪽파심고 계속 연작을 했드니 땅이 심(힘)이 업어서 안 되것드만!" 하는 사이에도 소나기는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었다. "어야! 자네 이라고 있어도 괜찬한가? 우리 집에 비옷 있응께 갖다준당께! 그란가?" "어르신! 괜찮다니까요! 제가 여기 온지 아직 10분도 되지 않았으니까 걱정하지마세요!
제가 정말 바쁘다면 이렇게 앉아있겠어요? 진작 비옷을 빌려입든 어떻게 했겠지요!" "하긴 자네 말이 맞네! 그 바람에 쪼깐 쉴때도 있어야제!" 하는데 정자 건너에 살고 계시는 어르신께서 우산을 받쳐들고 오시더니 하얀 수건 같은 것을 나에게 내밀었다. "어르신! 이게 무엇인가요?" "일회용 비옷인디 자네가 필요할 것 같아 갖고 왔어!" "일회용 비옷이요? 그런데 이제 비가 거의 그쳐가고 있는데요!" 하였더니 "그래도 사람은 항시 준비가 필요한 것이시! 알았제?" 하는 사이 어느새 비는 그치고 하늘에는 밝은 햇살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