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좋은 추억?
안 좋은 추억?
10월의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날씨는 매일 조금씩 더 차가워지는 듯 거리의 가로수들은 어제 보다 더욱 붉은 색으로 바뀌면서 몇 장의 낙엽을 떨어뜨리고 있는데 추수가 모두 끝난 들녘의 논에는 농부들이 트랙터를 이용하여 겨우내 가축들의 먹이로 사용할 볏짚 묶는 작업이 한창이고 볕이 잘 드는 따뜻한 양지쪽에서는 아직도 따뜻한 남쪽 나라로 떠나지 못한 꼬리가 붉어 질대로 붉어진 고추잠자리 몇 마리가 지나가는 가을바람을 붙잡고 지난여름 아름다웠던 이야기를 조용히 속삭이고 있었다.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러 가는 길. 내가 전남 보성 회천면 봉강리 봉서동 윗마을 배달을 마치고 갔던 길을 되돌아 천천히 내려오고 있을 때 마을 어르신 한분이 "어이! 혹시 우리 집에 혹시 좋은 소식 업든가?" 하고 나를 부르셨다. "좋은 소식이요? 오늘 어르신 댁에는 우편물이 아무것도 없던데 누가 좋은 소식 보냈다고 연락 했던가요?" "아니~이! 그런 것은 아니고 그냥 한번 물어봤네! 그란디 자네 이리 잔 와 보소!" "무엇 때문에 그러세요?"
"다른 것이 아니고 홍시가 잘 익어서 아주 맛있단 말이시 한 개 자시고 가라고!" "홍시는 다음에 주세요. 오늘은 굉장히 바쁘네요." "아무리 바뻐도 그렇체! 홍시 한 개 묵고 갈 시간도 없단 말이여? 그라지 말고 이리와 봐! 옛말에 '권한 장사 밑 안 간다!' 고 했는디 내가 자네 손해 볼 일 시킬라고 그라것는가? 어서 이리 오란 말이시!" 하시는 말씀에 "홍시가 얼마나 맛이 있어 그러세요?" 하고 잠시 오토바이를 세워놓고 마당으로 들어갔더니 할머니와 함께 붉은 빛을 띠고 있는
굵은 감을 큰 바구니에 담아놓고 곶감을 만들기 위하여 깎고 있는 중이었다. "여그 홍시가 많이 있응께 자네 자시고 싶은 만큼 자셔! 내가 돈은 절대 안 받을랑께! 돈 꺽정은 하지 말고! 알았제?" 하며 조그만 바구니에 담긴 홍시를 내놓으셔서 어른의 주먹 보다 더 큰 잘 익은 홍시 하나를 베어 물면서 "어르신! 그런데 곶감은 왜 그렇게 많이 만들고 계세요?" "곶감이 많기는 뭐가 많아! 이 정도는 만들어 놔야 조상님 제사 때도 쓰고 또 우리 손지들 오문 묵으라고 주기도 하제! 그란디 요새 애기들은 곶감을 별로 안 좋아하데!"
"요즘은 곶감보다 더 맛있는 먹을거리가 많은데 누가 곶감 먹으려고 하겠어요? 저의 어린 시절에는 어쩌다 어른들 모르게 곶감 한 개 훔쳐 먹으면 왜 그렇게 맛이 있었던지 그런데 지금은 옛날 같은 맛이 나지 않더라고요!" "곶감도 갖다 주면서 '먹어라!'고 하문 맛이 업어! 주인 몰래 그냥 슬쩍해서 묵어야 맛이 있는 것이제! 안 그런가? 내가 젊었을 때만 해도 가을이문 썩지 말라고 감을 시루에 안쳐서 높은 나무 가지 위에 올려놓거든 그래갖고 시제 때 쓰고 그랬는디
요새는 그런 것이 필요가 없이 되야 부렇어! 그것이 다 세상이 살기 좋아진 탓이것제 잉!" 하더니 홍시를 먹고 일어서려는 나를 보고 "이 사람아! 홍시 한 개 묵고 가문 서운해서 쓴단가? 어서 몇 개 더 들소! 잉!" 하신다. "어르신! 저는 홍시는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이 사람 좀 보소! 세상에 홍시 싫어하는 사람이 으디가 있어? 그라지 말고 몇 개 더 묵으랑께 그래쌓네!" "사실은 홍시에 대해 안 좋은 추억이 있거든요." "이~잉? 안 좋은 추억이 있어? 뭔 그런 추억이 다 있단가?"
"한 20년 전이던가요? 그해 가을에 점심도 먹지 못하고 편지 배달을 하는데 보성 쾌상리 두방마을에 갔더니 마을 아주머니께서 빨갛게 잘 익은 홍시를 주시면서 '먹으라!' 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어른 주먹만큼 큰 홍시를 여섯 갠가 일곱 갠가를 먹었는데 대변(大便)이 나오지 않아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그 뒤부터 누가 홍시를 권하면 겁부터 먼저 나더라고요." "자네 말이 맞기는 맞네. 설사할 때 홍시를 묵으문 금방 그치는 것을 보문 홍시도 많이 묵으문 안 좋은 모양이여!"
저의 어린시절 주인 모르게 훔쳐 먹었던 곶감은 왜 그렇게 맛이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