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속도 모르고
남의 속도 모르고
2010년이 시작되면서 찾아온 한파(寒波)는 중부지방에 엄청난 양의 눈을 뿌려 많은 피해가 나는 바람에 TV에서는 '눈 폭탄을 맞았다!' 고 표현하였지만 오늘 아침 내가 출근하려고 집을 나설 때는 어젯밤에 내린 눈이 도로에 얼어붙어 조금 미끄럽기는 하였지만 그러나 중부지방에 내린 눈에 비하면 아주 적은 양이어서 그나마 안심이 되었고 우편물을 정리하여 우체국 문을 나설 때는 온통 하늘을 뒤덮고 있던 시커먼 먹구름이 물러가고 밝은 햇살이 비추면서 시골마을로 향하는 도로의 눈은 어느새 다 녹아있었다.
그리고 나는 부지런히 시골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다보니 오늘의 마지막 전남 보성 회천면 군농리 화동마을 입구에 도착하여 시계를 보니 어느새 오후 5시 40분이 되면서 천천히 주위에 어둠이 내려앉고 있는데 골목 첫 집에 등기우편물 1통을 배달하려고 마당으로 들어가 오토바이를 세우는데 하늘에서 가늘게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큰소리로 "어르신! 등기편지 왔네요!" 하였더니 '덜컹!' 방문이 열리면서 "아이고! 날씨도 추운디 징하게 고생해 쌓네! 그란디 뭣이 왔다고?" 하며
영감님이 고개를 내미셨다. "등기 편지가 왔네요!" "그레~에! 그란디 으디서 온 등기 편지란가?" 하고 물으셨다. "홍삼 영농조합에서 보낸 편지네요." "그래! 그라문 뭣인가 자네가 한번 뜯어보소!" 하여 봉투를 개봉하였더니 독촉장과 함께 지로용지가 들어있었다. "어르신! 몇 달 전 홍삼(紅蔘)주문하여 드신 적 있지요? 그 대금 갚으라는 독촉장이 왔네요!" "그래~에! 그란디 그 사람들 참! 나쁜 사람들이여! 그때는 약 먼저 묵어보고 효과가 있으문 돈은 천천히 갚으라고 그라드만
지금 몇 달도 안되야서 돈 갚으라고 야단이여! 그라고 그때 목소리가 젊은 여자 같은디 약 효과가 좋은께 밥맛도 좋아지고 힘도 나고 그랑께 한번만 자셔 보문 금방 효과가 나타난고 야단이드만 무슨 밥맛이 좋아져! 그러면서 돈은 얼렁 갚으라고 자꾸 전화를 하문 되것는가?" 하며 화를 내신다. "그래도 일단 약은 드셨으니 어떻게 하겠어요? 그 사람들은 돈을 받아야 하니 자꾸 전화를 하는 수밖에요." "그라문 자네가 돈 잔 갖고 가서 우체국에 바쳐주소!" 하며
영감님이 돈을 가지러 간 사이 주위는 점점 더 어두워지면서 눈은 함박눈으로 변하여 '펄~펄'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돈이 을마라고 했는가?" "5만 7천 3백 원이네요!" "그래~에! 그라문 우선 5만원 받아보소! 그라고 7천원 갖고 오께!" "어르신! 그러지 마시고 그냥 6만원 주시면 제가 내일 영수증하고 거스름돈 가지고 오면 안 될까요?" "에이! 그라문 자네가 또 심바람을 해야 된께 내가 잔돈 있응께 7천원 갖고 오께!" 하며 방으로 들어가셨는데 그 사이에 눈은 강한 바람을 타고 더욱 거세게 퍼 붓고 있었다.
'아니!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눈은 이렇게 퍼붓고 있는데 오늘 따라 영감님께서 왜 저렇게 잔돈을 챙기시지? 이러면 눈 때문에 우체국에 귀국하기 힘들겠는데!' 하며 중얼거리고 있는데 "금방 7천원이라고 그랬제? 돈이 맞는가 한번 시어보소!" 하며 천 원짜리 세어 내게 건네주시며 "끄터리가 을마라고? 3백 원이라고 그랬는가?" "어르신! 그냥 천 원짜리 주세요! 어차피 영수증을 가져오려면 내일 또 다시 와야 하니까. 그때 잔돈 챙겨 올게요!" 하였더니 밖을 한번 슬쩍 쳐다보신 영감님
"그라문 자네가 성가신께 내가 그냥 3백 원 갖고 오께! 그라고 영수증은 아무 때나 갖고 와!" 하며 또 다시 방으로 들어가셨다. '아니! 갈수록 눈은 더 퍼붓고 있는데다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 우체국에 가려면 정말 힘들겠는데 오늘따라 왜 저렇게 잔돈을 챙기실까? 이러다 눈길에 미끄러져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하라고 저러시지?' 하고 중얼거리고 있는데 잔돈을 가지고 나오신 영감님 "인자 눈이 잔 그쳤는가? 눈길에 어둡고 그랑께 조심해서 천천히 가소 잉!"
차가운 겨울이 계속되고 있는데 바닷가의 갈매기는 무엇을 먹고 살아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