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이야기

"내일 돌아가시게요?"

큰가방 2010. 4. 3. 20:43

 

"내일 돌아가시게요?"

 

그제와 어제 쉬지 않고 계속 비를 뿌리던 시커먼 먹구름이 물러가고 밝은 태양이 얼굴을 내밀더니 따사로운 봄기운을 온 누리에 골고루 뿌려주었는지 오늘을 기다렸다는 듯 앞산에 진달래가 활짝 피어 온 산을 붉게 물들이고 시골집 울타리 사이로 피어난 노란 개나리는 바람결에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며 지나가는 길손에게 환하게 웃으며 미소 짓는데 하릴없는 시골집 하얀 개(犬)는 무엇에 심술이 났는지 지나가는 나를 보고 금방이라도 물어 뜯을 듯 더욱 거칠게 몸부림을 치며 큰소리로 "멍! 멍!" 짖어대고 있었다.

 

오늘도 시골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러 가는 길. 내가 전남 보성 회천면 벽교리 신리마을 맨 윗집 마당에 빨간 오토바이를 세우고 적재함에서 박스에 담겨있는 제법 크고 묵직한 어린이 보행기를 꺼내 마루에 올려놓으면서 "할머니! 어디계세요?" 하고 큰소리로 불렀으나 대답이 없었다. "할머니께서 들에 일하러 나가셨나? 왜 대답이 없지? 그런데 집에 어린애가 있었나? 노인 혼자 살고 있는데 무슨 보행기가 필요할까?" 하며 집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할머니는 보이지 않아

 

택배는 마루에 놓아두고 막 대문을 나오려는데 허겁지겁 달려오신 할머니께서 밝게 웃으며 "뭣을 갖고 왔어?"하고 물으셨다. "밭에서 일하다 달려오는 길이세요?" "요새 날마다 비가오드니 오늘은 해가 뜬께 참말로 좋네! 그래서 밭을 잔 매고 있는디 아제가 우리 집으로 들어가데! 그래서 와 봤제!" "그러셨어요! 서울에서 김미숙 씨가 보행기를 보내셨네요. 그런데 할머니 댁에 어린애가 있나요?" "우리 집에 뭔 애기가 있으껏이여! 나 밀고 댕기라고 우리 딸이 사서 보냈는 갑구만!

 

아이고! 썩을 것이 그런 짓거리 잔 하지 마라고 몇 번을 말했는디 또 했구만 또 했어!" 하고 갑자기 화난 표정을 지으시며 마구 역정이시다. "할머니 지금 저에게 하는 말씀이세요? 아니면 따님에게 하는 말씀이세요?" "그라문 내가 우리 딸한테 하제, 아제한테 그런 말을 하것어? 우리 딸 말고 여그 다른 사람 누가 있어?" "그런데 보행기를 사서 보낸 딸에게 왜 그렇게 역정을 내세요?" "엊그저께가 내 생일날인디 우리 딸이 와서 보드만 '엄마! 보행기 필요하문 내가 한나 사서 보내까?'

 

그래서 '아니! 냅둬라!' 그랬는디 기연히 사서 보냈단께! 내가 인자 살문 을마나 살 것이여? 그란디 무단히 돈을 들여 이런 것을 사서 보내! 금메~에!" "그러면 할머니 내일 돌아가시게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낼은 안 죽제~에!" "그러면 모레 돌아가시려고요?" 하였더니 "암만 그란다고 낼 모래 죽을 사람이 으디가 있어?" 하며 이번에는 내가 아주 얄밉다는 표정이시다. "그런데 따님이 보행기 사서 보냈다고 화를 내시면 되겠어요?" 하였더니 토방 한쪽에 세워져있는

 

아주 낡은 보행기를 가르치며 "아직 저것도 새것이라 좋은디 뭣하로 돈을 들여 이것을 또 사냔 말이여!" "저 보행기가 새것이라고요? 제가 보기에 금방 고장이 날 것 같은데 새것이라는 말씀이세요?" 하였더니 "새것은 아니라도 아직은 밀고 댕기문 괜찮해! 허리도 안 아프고 옛날에 지팽이 짚고 댕길 때는 우째 그라고 힘도 많이 들고 허리가 그라고 아펐는지 인자는 보행기에 쬐깐한 보따리도 실코 밀고 댕기문 아조 편하드랑께!" "그런데 따님에게 화를 내면 되겠어요? 그리고 나중에 딸이 알면 얼마나 서운하겠어요?"

 

"우리 딸이 있으문 화도 못내제! 그저 미안하고 그랑께 무담시 내가 한번 해 본 소리여!" "할머니! 이제부터 헌 보행기는 아깝더라도 버리시고 따님이 보내준 새 보행기를 사용하세요! 방금 말씀하신대로 살면 얼마나 사시겠어요? 그러니까 항상 옷도 좋은 옷 입으시고 보행기도 새것으로 밀고 다니시면 할머니도 좋고 마을사람 보기에도 얼마나 좋아요!" 하고 대문을 나오면서 "왜? 옛날 어른들은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까? 그냥 딸에게 '보행기 보내줘서 고맙다!'하면 될 텐데!

 

"아제 집에 쪽파 있어? 읍으문 내가 한 주먹 주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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