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어뜯은 빨래
쥐어뜯은 빨래
어젯밤 늦게부터 이른 새벽까지 깊은 잠을 설칠 정도의 많은 비가 내린 탓인지 아침까지도 시커먼 먹구름이 가득하던 하늘이 점차 맑게 개이면서 강렬한 폭염이 쏟아져 내리며 불볕더위가 시작되고 있었다. 오늘도 시골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러 달려가는 길. 넓게 펼쳐진 시골 들녘은 어젯밤 내린 비로 푸르름이 더욱 가득한데 시냇물이 흐르는 개천에는 어젯밤 내린 비가 커다란 강물을 이루어 마치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 듯 큰 소리를 지르며 바다를 향하여 빠른 속도로 달려가고 있었다.
내가 전남 보성 회천 회령리 회천서초등학교에 우편물을 배달하고 막 돌아섰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 같아 동쪽 하늘을 쳐다보았더니 언제 날아왔는지도 모르게 시커먼 먹구름과 함께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어? 서쪽 하늘은 햇볕이 쨍쨍한데 언제 비구름이 몰려왔지?”하며 재빨리 학교 통로에 설치되어 있는 캐노피 아래 잠시 비를 피하며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덮개를 씌우고 비옷을 커내 입을까? 하였는데 어느새 빗줄기가 가늘어 지더니 잠시 후 그쳐버렸다.
“참! 여름철 소나기는 빨리도 왔다. 지나가는구나!”하며 전일리 내래마을로 들어섰는데 또다시 하늘에서 빗방울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왜 소나기가 나만 따라다니지?”하며 김영윤씨 마당으로 들어섰는데 영감님과 필리핀에서 시집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새댁이 갑자기 내리는 비에 빨래를 걷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르신! 비가 사람을 정말 귀찮게 하네요!” “그랑께 말이여! 엊저녁에도 많이 왔응께 인자 그만 왔으문 좋것는디
왜 이라고 사람을 성가시게 해 싼가 몰르것네!”하더니 며느리에게 “아가! 쩌그 있는 감자박스 안 있냐 그것도 비 안 맞게 이짝으로 갖다 놔라! 아이고 이노무 쏘나기 땀새 금년에는 아무것도 못하것네!” “그러게 말입니다. 그나저나 저도 비를 피해야겠으니 그만 가 볼게요.”하며 바로 아래쪽 마을 회관 앞으로 왔는데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는 회관 앞 넓은 토방에는 마을 영감님께서 가을에 파종할 잘 마른 쪽파 씨를 손질하다 나를 보고 “우메! 비가 와싼디 고생이 많구만!
어서 이리 들어와 쩌그 의자에 잔 앙거서 쉬었다 가! 자네는 농사 을마나 짓는가?” “저는 농사 안 지어요!” “으째 농사를 안 지어?” “땅이 없는데 어떻게 농사를 짓는답니까?” “그래! 그라문 집이 으딘디?” “저는 보성읍에 살아요!” “그래~에! 나는 우리 동네로 편지 배달하고 댕긴께 여그 회천 으디서 살고 있는지 알았네!”하는 동안 소나기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어디선가 ‘우~루~루 쿵! 쾅!’천둥 번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데
김영윤 씨 부인께서 내리는 비에 옷이 흠뻑 젖은 채 손에 정전가위를 들고 헐레벌떡 회관으로 뛰어 들어오신다. “아이고! 뭔 비가 이라고 시도 때도 업시 와 싼가 몰르것네!” “어디 다녀오시는 길인데요?” “쩌그 석류나무 과수원에서 가지잔 짜르고 있는디 갑자기 비가 와부네! 그란디 비 맞은 것은 시원한께 좋은디 천둥 번개 소리에 무수와서 안되것어!”하더니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우메! 내가 지금 이라고 있으문 안 되야!” “비가 이렇게 내리는데 어디 가시려고요?”
“우리 집 빨래 널어놓고 왔는디 인자 비 다 맞어 부렇것네!” “그것은 걱정 마세요. 방금 댁에 갔더니 어르신과 며느리가 빨래 줄에서 빨래를 쥐어뜯고 있데요!” “으짠다고 쥐어뜯고 있어?” “생각해 보세요! 비가 와서 마음은 급한데 빨래는 얼른 안 걷어지면 쥐어뜯는 수밖에 더 있겠어요?”하였더니 “헛! 헛! 허! 호! 호! 홋!”잠시 회관은 웃음꽃이 피었는데 그 순간 필리핀 며느리가 한손에 우산을 들고 과수원을 향하여 쏜살같이 달려가자 “우리 며느리가 비 온다고 나 데리러 나온갑구만!”하더니“아가! 나 여깃다!”
뜨거운 열기를 내뿜던 여름날의 태양이 어느덧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