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묵고 가야제!"
“밥은 묵고 가야제!”
오늘도 우편물을 배달하러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로 달려가는 길. 지난번 쏟아 부은 많은 눈은 아직도 녹지 않고 시골길에서 바라보이는 넓은 들녘에 하얗게 쌓여있어 쓸쓸함만 가득한데 길 아래쪽 밭에서 갑자기‘후두득!’하는 소리와 함께 꿩 한 마리가 하늘 높이 솟아올라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고 있었다. “내가 처음 집배원으로 근무하던 이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겨울철 논과 밭이 그야말로 온통 빨갛게 보일정도로 꿩들이 지천으로 많았었는데 그 많은 꿩들은 지금 모두 어디로 갔을까?”생각해 보며
전남 보성 회천면 군농리 화당마을 골목길에 접어들었는데 할머니 한분이 골목길을 천천히 내려오고 계신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회관에 놀러 가시나요?”하고 물었는데 대답은 않고 “오늘 우리 집 편지는 읍제? 그란디 점심은 자셨으까?” 하고 물으신다. “지금 시간이 오후 2시가 넘었는데 아직까지 점심을 안 먹으면 되겠어요? 그런데 할머니는 점심 식사하셨어요?” “아니 아직 안 묵었어!” “아니 왜요? 무슨 바쁜 일이라도 있으세요?” “아니 바쁜 일도 읍고! 그란디 으째 요새는 입맛도 읍고 그라네!”
“그런다고 식사를 거르시면 되겠어요? 아무리 혼자계시더라도 끼니는 거르지 말아야 하는데 그러면 아침 식사는 하셨어요?” “아침밥도 안직 안 묵었어!” “아침식사도 안하시고 어떻게 하려고 그러세요?” “재작년에 우리 하나부지(할아버지)가 가분 뒤로(돌아가신 뒤로) 이상하게 사람도 싫고 밥도 잘 안 묵고 싶고 그라네!” “그러면 집에 혼자 계시려면 심심하실 텐데 무엇하고 계세요?” “그냥 혼자 태레비 쬐깐 보다가 바느질 잔 하다가 잠 오문 자고 그라제~에!”
“그러면 너무 적적하실 텐데 회관으로 놀러 다니시지 그러세요?” “금메 회관도 옛날에는 날마다 댕겼는디 으째 요새는 댕기기가 싫드란께!” “그러면 어떻게 하시게요?” “으짜기는 으짜껏이여 그냥 집이서 혼자 있어야제!” “그러면 지금은 어디 가는 길이세요?” “여그 아랫집에 뭣을 잔 물어볼라고 가는 길인디 사람이나 있을란가 몰르것네!” “요즘 마을 어른들께서 회관에 계시지 집에 계시겠어요?” “그라문 편지 온 것은 회관으로 갖다 줘불제 뭣할라고 집집마다 돌아댕겨?”
“그래도 우편물은 집으로 배달해 드려야지 회관으로 배달했다가 어르신들이 정신이 없어 잊어버리면 어떻게 하겠어요? 나중에 공과금 납부하실 때 그것 찾느라 야단이실 텐데요” “그래~잉! 그란디 아저씨 뭣을 잔 물어봐도 되까?” “무엇을 물어보시게요?” “옛날에는 내가 사람도 좋아하고 놀기도 좋아하고 그랬는디 요새는 이상하게 사람들이 그라고 싫드란께 그래서 지난번에 우리 아들하고 병원에 갔는디 의사 선생님이 ‘할머니는 심한 정도는 아닌데 우울증이 조금 있는 것 같아요!’
그라드랑께 그란디 우울증이 뭣이여?” “할머니께서 우울증이 있다고요? 그것은 좋지 않은 일인데 어떻게 하지요? 저도 우울증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데 옛날에 저의 선배 한분이 갑자기 변사체(變死體)로 발견되었어요. 그래서 경찰관들이 수사를 하고 선배 부인이 혹시 독살(毒殺)한 것은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유서가 발견되고 병원 기록을 살펴보니 아주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결국‘병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하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우울증이 아주 무서운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우메! 그래~에! 그란디 인자 우추고 해야되야?” “글쎄요? 제가 의사(醫師)선생님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하시라고 말씀드리기는 곤란하지만 우선 마음을 편하게 가지시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즐겁게 생활하시면 우울증도 좋아질 것 같은데 마을 사람들과 아울릴 수 있겠어요?” “동네 사람들이사 다 아는 사람들인디 으째 못 어울리것어? 금방 어울리제!” “그러면 지금 회관에 놀러가시려고요?” “회관에 가드라도 밥은 묵고 가야제! 안 그래?”
눈이 내리는 차가운 날씨 속에서 멀리 보이는 비닐이 둘러 씌워진 밭에서는 쪽파 수확이 한창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