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뭇가사리의 추억
우뭇가사리의 추억
“오늘도 무더운 날씨는 계속되겠으며 특히 중부지방은 폭염경보가 남부지방은 주의보가 내려졌으니 야외 활동을 많이 하시는 분들은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일기예보를 들으며 “그래도 남부지방은 폭염주의보가 내려서 정말 다행이다. 그나저나 요즘처럼 무더운 날씨에는 시골마을 우편물 배달하기도 힘 드는데 자동차에서 품어져 나오는 배기가스와 햇볕에 뜨겁게 달구어진 도로에서 올라오는 후끈후끈한 지열 때문에 숨 막히는 도시지역에 근무하는 집배원들은 얼마나 고생이 많을까?”생각해 보며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우편물을 배달하러 시골길을 달려 전남 보성 회천면 봉강리 봉서동마을 가운데 있는 정자(亭子)를 천천히 지나가고 있는데 할머니들께서 급하게 “아저씨! 우체국 아저씨! 얼렁 잔 이리 와봐!”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데요?”하며 정자 가까이 다가서자 “날씨도 징하게 더운디 고상해 쌓네! 얼렁 이리 와서 미숫가리 한 그럭 자시고 가!” “시원한 미숫가루가 있다고요? 그럼 한 그릇 주시겠어요?”하며 잠시 빨간 오토바이를 그늘에 세워놓고 정자에 걸터앉았더니
할머니께서 커다란 대접에 미숫가루와 우무(寒天)를 잘게 채 썰어 얼음을 동동 띄워 한 그릇을 담아주시며 “달게 자실라문 여그 그럭에 사탕가리 있응께 더 타서 자셔! 잉!”하신다. “그렇지 않아도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던 참이었는데 고맙습니다.” “원래 여름은 더와야 되는 것이제만 올해는 별라도 더 더운 것 같어! 그란디 뙤약볕에 편지배달하고 댕길라문 을마나 심이 마니 들것어! 이라고 더울 때는 편지를 으따 쟁여 놨다 나중에 한뻔에 배달하문 안 되까?”
“좋은 생각이기는 한데요. 그러다 모임 안내 같은 급한 우편물은 연락이 안 되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어요. 그런데 여기 들어있는 우무는 집에서 고우셨나요?” “아이고! 날씨가 이라고 징하게 더운디 누가 우뭇가사리 갖다 집에서 고울 사람이나 있것어? 오늘이 쩌그 회령 장날 아니여? 그래서 내가 아까 사 갖고 왔어!” “회령 5일장이 4일 9일이니까 정말 오늘 4일장이네요! 그런데 제가 아까 시장을 둘러보아도 우뭇가사리 파는 곳은 안 보이던데 어떻게 사가지고 오셨어요?”
“이라고 더운 날 누가 그런 것을 햇볕에 내 놓고 팔것어? 우리는 알고 있응께 그냥 한 모 사갖고 왔제!”하는데 마을의 영감님 한분께서 천천히 정자 앞으로 다가오더니 미숫가루가 담긴 큰 그릇을 가르치며 “나도 그것 한 그럭 줘봐! 누가 귀한 것을 사 갖고 왔네!” “우리가 이것 묵고 있는 지는 우추고 알았소? 영감이 발 복도 만당께!”하며 이내 큰 대접 한가득 떠 주신다. “지금은 안 그란디 옛날에는 우뭇가사리가 사람들 참 많이 묵여 살렸네!”하시더니
“내가 젊었을 때 보성에 있는 5일 장(市場)을 갈라문 차비도 아까운께 새벽에 일찍 밥 묵고 보성까지 걸어서 갔어!” “그럼 여기서 약 왕복 40km를 걸어 다니셨단 말씀이세요?” “그때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 다 그랬어! 그란디 보성까지 걸어가고 나문 배가 고푼께 뭣을 묵어야 쓰껏 아닌가?”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그란디 밥은 비싼께 못 사 묵고 장터에 이것(우무) 파는 데서 그때 돈 5원을 주문 큰 그럭 가득 담어 줬거든. 그때는 냉장고도 읍든 시절잉께 얼음도 귀한 때였는디
여름에 이것 한 그럭 시원하게 묵고 나문 아무리 걸어 댕겨도 배가 안 꺼져 그라고 그때 봄이면 보릿고개가 있었는디 쩌그 바다에서 우뭇가사리를 뜯어다 푹 고와 이것을 맹글어 갖고 얼음이 업응께 그냥 샘물질러다 사까리 쳐서 한 그럭씩 묵으문 사탕가리를 안 쳐도 으째 그라고 맛있었든가 몰르것어!” “그시절만 하더라도 모든 것이 귀했기 때문에 더 맛이 있었겠지요.” “그라고 이것이 여름에도 잘 안 상한께 참 많이도 해 묵었네!” 하시는 영감님의 어깨에는 지나간 옛 시절의 추억의 그림자가 앉아있었다.
여름의 절정인 요즘 전남 보성 회천면 율포해수욕장에는 많은 피서객들이 찾아와 해수욕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날도 징하게 더운께 이루와서 미숫가리 한 그럭 자셔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