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이야기

"밥만 잘 묵으문 되!"

큰가방 2011. 8. 13. 17:51

 

“밥만 잘 묵으문 되!”

 

8월로 접어들면서 하늘의 붉은 태양은 살갗에 화상(火傷)을 입을 정도의 뜨거운 폭염을 사정없이 쏟아 붓고 있지만 푸름이 가득한 들녘을 한 바퀴 빙 돌아 천천히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지나가는 길손을 붙잡고 잠시 쉬어가라는 듯 길가의 가로수를 살며시 흔들어 잠을 깨우고 시골마을 입구 정자에는 무더위를 피해 나온 어르신들이 정다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는데 하릴없는 매미 몇 마리는 정자나무 꼭대기에 걸터앉아“누구 목소리가 더 큰가?”내기라도 하듯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오늘도 시골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러 가는 길. 내가 전남 보성 회천면 영천리 양동마을로 접어들어 첫 번째 집 마당으로 들어가자 할머니께서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긴 마늘을 손질하다 말고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신다. “아이고~오! 날씨도 징하게 더운디 우추고 돌아 댕겨? 이라고 덥고 그랄 때는 편지배달 한번 씩 빼 묵고 댕기문 안된가?” “저도 하루씩 빼 먹으면 정말 좋겠는데 할머니께서 기다리실까봐 할 수없이 왔어요.”하며 빙긋이 웃었더니 “그리문 우리 껏은 낼 갖고 오제 그랬어!”

 

“그래도 오늘 배달할 우편물은 오늘 끝을 내야지 내일로 미루면 되겠어요? 그리고 내일 또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우편물이 쏟아지면 정말 힘들거든요. 그런데 날씨가 이렇게 무더운데 왜 마늘은 까고 계세요?” “먼자 참에 장마졌을 때 마늘 껍닥이 전부다 물캐져 부러갖고 못쓰게 되야 부렇단께! 그래서 할 수없이 까서 김치라도 담을라고!” “그러면 이따 저녁 무렵 까셔도 되잖아요.” “아무리 날씨가 더와도 카만히 손 놓고 있을랑께 심심해서 못 쓰것드란께 그란디

 

아제! 날씨도 덥고 그랑께 입맛을 잔 다셔야 쓰꺼인디 뭣을 주까? 늙은이 혼자 살다본께 맛있는 것은 한나도 읍고 올해는 바뻐서 미숫가리도 못 맨들고 말어부렇네!” “그러면 냉장고에 시원한 냉수는 있지요?” “냉수는 우리 집이 만니있제~에! 가만있어봐 얼렁 한 그럭 갖고 오께!”하며 이내 시원한 냉수 한 그릇을 가져오시더니 “그란디 오늘은 우리 집이 뭣이 왔간디 이라고 날씨가 더운디 고생을 하고 댕겨?” “전기요금 고지서 빼면 요즘 나올게 무엇이 있겠어요?”하고 건네 드리자

 

“을마나 나왔는가 봐 줘!” “이달에는 2만 8천 4백 원이 나왔네요.” “이~잉! 그라고 나왔어? 와따 징하게도 만이 나왔네~에!” “요즘은 날씨가 무더우니까 선풍기를 많이 쓰시잖아요. 그리고 아무래도 냉장고도 더 세게 돌기 때문에 요금이 많이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라문 우리 아들 통장으로 빠져 나가제?” “예! 그렇게 되어있네요!”하며 막 돌아서는 순간 “그란디 아제 엊그제께 이것을 갖다놓고 갔드만 뭣인가 잔 봐줘!”하며 마루에 놓여있는 편지 한 장을 집어 건네주신다.

 

“이것은 병원에서 할머니 몸에 이상이 있나 없나 확인하게 건강검진 받으러 나오라는 안내장이네요!” “그라문 으디로 나오라고 그랬어?” “면 소재지 옆 우암마을 회관으로 오시라는데요!” “날이 이라고 징하게 더운디 으추고 거기까지 가~아? 나는 못가!” “그래도 건강검진은 2년에 한 번씩이니까 될 수 있는 대로 받으시는 것이 좋아요.” “그 사람들은 날이나 시원해지문 오라고 하제 해필 이라고 더운디 오라고 그래싸까? 그라고 늙은이 들은 밥만 잘 묵으문 되제 그런 것이 뭔 소용이 있으껏이여!”

 

“그러면 할머니께서는 아픈 곳은 없으신가요?” “으째 아픈데가 읍으껏이여! 당연이 있제~에! 그란디 나는 다름 사람하고 틀려서 다리 아프고 혈압 높고 그런 것이 아니고 내가 젊었을 때 큰 교통사고 당해서 그때 치료를 한다고 했는디 인자 나이를 묵어논께 다친 데가 다시 아프드란께! 그란디 이병은 못 고친다고 그라데! 그랑께 죽을 때까지 이라고 살아야제 으짜껏이여!”하시는 할머니의 눈에는 무언가 모를 슬픔이 담겨있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병원에는 뭐하러 가? 밥만 잘 묵으문 되제!"

태풍 무이파가 남긴 자국을 마을 사람들이 치우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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