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급한 일?
아주 급한 일?
10월의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청명한 하늘의 하얀 구름은 귀여운 토끼. 예쁜 고양이. 커다란 범선으로 변하여 어디론가 멀리 여행이라도 떠나는지 하염없이 흘러만 가는데 아직도 시골 들녘에는 많은 농부들이 누렇게 익은 벼를 콤바인을 이용하여 수확하기도하고 콩이며 팥이며 수수를 걷어 마을 앞 공터에 말리기도 하는 등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하릴없는 하얀 개 한 마리가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다 지나가는 나를 보고‘으르렁’하더니‘빵! 빵!’하는 소리에 놀라 얼른 울타리 사이로 숨어버렸다.
내가 전남 보성 회천면 객산 마을에서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을 때 휴대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즐거운 오후 되십시오. 류상진입니다.” “거시기 우리 동네 담당 집배원이신가?”하는 영감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동네라면 어느 마을을 말씀하십니까?” “아! 여그 화당이여 화당!” “그러면 어르신 성함은요?” “내 이름말이여? 나여! 나!” “어르신 지금 여기가 콤바인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 전화상 목소리로는 누구신지 잘 모르겠거든요! 그러니까 성함을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요?”
“이 사람이 내 목소리도 잊어 부렇는갑네! 나랑께! 나라고!” “아~아! 김장식 어르신이세요? 그런데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내가 급한 일이 있어 자네를 잔 만나야 쓰것는디 지금 우리 동네로 올수 읍것는가?” “그건 좀 곤란하겠는데요! 지금 시간이 오후 3시니까 어르신 마을까지 다녀오려면 아무래도 왕복 1시간 이상 시간이 걸리는데 우편물 배달은 언제 하겠습니까?” “그래~에! 그라문 은제 우리 동네 올 수 있것는가?” “아마 오후 5시쯤은 될 것 같아요?”
“그 안에 올 수는 업것는가?”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저를 만나려고 하세요?” “아니~이! 자네하고 뭣을 잔 타협을 해 봐야 쓰것서서 그라네!” “지금 전화상으로 말씀하시면 안 될까요?” “전화로는 말을 못하것고 그냥 자네를 꼭 만나야 쓰것단마시! 그랑께 얼렁 잔 왔다 가소!” “제가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가도록 해 볼게요. 그러니 볼일이 있으시면 보고 계세요. 마을 가까운 곳에 가면 전화 드릴게요.” “그라문 그라고 할란가? 알았네!”하고 전화는 끊겼다.
“그런데 영감님께서 무슨 일로 나와 타협할 일이 있다고 하셨을까? 재산세 같은 공과금은 이미 납부기한이 끝났고 혹시 읍내에 나가면 필요한 물건을 구입해 달라고 부탁하려고 그러시는 것일까? 그것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택배를 보내려고 그러실까? 그런데 택배라면 우체국에 말씀하셔도 얼마든지 보낼 수 있는데 왜 급한 일이라고 하셨을까? 그것도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나를 만나 혹시 우편물 배달을 잘못했다고 꾸중하려고 그러실까? 그런데 최근 들어
그 영감님 댁에 우편물을 배달한 적이 없는데 그러면 무엇 때문에 급한 일이 있다고 하신 것일까?”별의별 생각을 다 해보며 화당마을 영감님 마당으로 들어서면서 “어르신! 무슨 급한 일이 있어 저를 부르셨어요?” 하였더니“자네 일도 바쁘 것인디 무담시 오라 가라해서 미안허시 다른 것이 아니고 이것 잔 우체국에 갖고 가서 부쳐주소!”하며 신문지로 둘둘 말아놓은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조그만 물건 하나 내 놓으면서 “이것을 택배로 보내야 쓰것는디 포장을 우추고 해야 쓸란고 암만 생각해도 모르것드란 말이시.”
“내용물이 무엇인데요?” “보청기가 들었는디 수리 잔해서 보내주라고 해야 쓰것단마시 그란디 잘못해서 가다가 깨져불문 안되것기래 자네를 부른 것이여!” “그러면 이것 때문에 급한 일이 있다고 저를 부르셨어요?” “그라문 이것이 급한 일이 아니고 뭣인가?” “어르시~인! 이런 일은 전화상으로도‘내가 무슨 물건을 어디에 두었으니 자네가 포장을 잘 해 갖고 알아서 보내주소!’하시면 되잖아요!” “그란가? 나는 전화로 말하문 그런 것이 안 될지 알았제~에!”
"인자 가을도 거자 끝났어!"
"할머니 빗자루는 만들어 파실거예요?" "아이고! 이것을 우따가 팔어 그냥 집이서 써야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