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이야기

"착불도 된가?"

큰가방 2012. 7. 28. 20:41

 

“착불도 된가?”

 

대서(大暑)가 지나자마다 하늘의 태양은 매일처럼 수은주를 끌어올리며 33도가 넘는 강렬한 폭염(暴炎)을 쏟아 붓고 있는데 시골마을 입구에 서있는 커다란 고목나무 꼭대기에서는

무더위에 지쳐버린 매미 두 마리가 ‘여름은 물러가라!’는 듯 ‘매~엠~맴’거리며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전남 보성 회천 회동마을 길갓집 마당으로 들어서자 영감님께서 담장 밖에 서있는 복숭아나무에서 빨갛게 잘 익은 복숭아를 따고 계시다 나를 보고

“아이고~오! 날도 징허게도 더운디 고상해쌓네! 오늘은 뭣을 갖고 왔어?”하고 물으셨다.

“전화요금이 나왔네요!” “전화세가 나왔다고? 그라문 을마나 나왔어?”

 

“만 9천 2백 원인데요.” “그래~에! 그란디 엊그저께 갖다 준 전기세 안 있어? 그것 잔 봐주고 가소!”하며 고지서를 가지고 나오신다.

“전기요금은 2만 3천 3백 원이 나왔네요.” “그라제! 그란디 옆집 누구한테 봐주라고 그랑께 3만 9천원이 나왔다고 그라드란 말이시 암만 생각해 봐도 내가 전기를 그라고 쓴 일이 읍는디 이상하게 만타~아! 그랬단께.”

 

“그것은 지난달 전기요금을 잘못 보셔서 그런 것 같아요.” “이~잉! 대차 자네 말이 맞구만 지난달에는 내가 뭣을 잔 하니라고 전기를 마니 썻어! 그란디 그 사람은 자꼬 엉뚱한 소리를 해 싼께 믿을 수가 있어야제!”

“그분께서 어르신 골탕 먹이려고 그러지는 않았을 거예요! 전기나 전화요금 고지서는 저도 이따금 잘못 볼 때가 있거든요.”

 

“그란디 자네는 식구들이 몇이나 된가?” “저의 집 사람과 저 둘뿐이에요.” “그래~에! 그라문 애기들은 몇이나 되고?” “아들 둘이 있는데 지금 광주에서 직장생활하고 있어요.” “자네 집이도 두 식구뿐이문 조용하것네 잉!”

“그러니까요! 그래도 애들 어릴 때는 사람 사는 것처럼 좋았는데 요즘은 너무 조용하데요. 그럼 저 그만 가 볼게요. 안녕히 계세요.”하고

 

밖으로 나와 마을 우편물을 모두 배달하고 두곡마을 쪽으로 달려가는데 “어야! 이리 잔 와 보소!”하며 영감님께서 길가로 나와 나를 기다리고 계셨던 듯 부르신다.

“무슨 일인데요?” “아니! 다른 것이 아니고 내가 택배를 한 개 보낼라고 그란디 자네가 잔 갖다 보내줄 수 있것는가?”

 

“택배가 큰 것인가요?” “아니! 째깐 한 것이여! 그랑께 성가셔도 자네가 잔 보내주소! 그란디 착불도 된가?” “예! 물론 착불도 되지요.”하고 영감님 댁 마당으로 들어서자 “그란디 여그서 쬐그만 지달리소! 잉! 내가 요것 마져 따갖고 보내야 쓴께!”하며 아직 나무에 몇 개 남아있는 복숭아를 따고 계신다.

“어르신 택배 보내실 것이 복숭아인가요?”

 

“그것은 으째 물어본가? 복송은 택배로 안 된단가?”하더니 지금까지 따온 복숭아를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 “이것은 자네 집으로 내가 택배로 보내껏이여! 그란께 자네가 주소 써 갖고 보내소 잉! 그라고 택배비는 그냥 착불로 해! 알았제?”

“어르시~인! 힘들어 따신 복숭아를 모두 저를 주시면 어떻게 해요?”

 

“진작부터 내가 자네한테 뭣을 잔 줄라고 했는디 촌구석에서 으디 마땅하니 줄 것이 있는가? 그랑께 이것이라도 줄라고 그라네! 그라고 식구들이 만하문 작어서 안되제만 적은께 그냥 갖고 가소!

그란디 올 해 복송이 으째 작년 맹키로 안 달드란께! 그래도 깡거서 묵으문 괜찬하껏이여! 그랑께 맛이 읍다고 욕은 하지 말어! 알았제!”하시며 무언가 시원한 일을 했다는 듯 빙긋이 웃고 계셨다.

 

"복송이 안 달아도 욕은 하지 말어! 잉!"

영감님께서 비닐 봉지에 담아주신 복숭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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