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우체통

"이런 일은 첨이여!"

큰가방 2013. 5. 4. 20:12

 

“이런 일은 첨이여!”

 

전남 보성읍 두방마을 가운데 집에 택배 하나를 배달하려고 빨간 오토바이는 잠시 대문 앞에 세워놓고 마당으로 들어서며 “할머니! 어디계세요? 저 왔어요!”하자 방문이 열리면서 마루로 나오신 할머니

 

“우메! 우리 아제가 하다 안 보여서 인자 그만 둔지 알았는디 참말로 오랜만에도 왔네!”하며 활짝 웃는 얼굴로 반기신다.

“그동안 잘 계셨어요?” “잘 있었는지 못 있었는지는 몰라도 그냥 그라고 살고 있어! 그란디 오늘은 먼일이여? 생전 편지가 오문 배깥에 통에다 넣고 가드만!”

 

“혹시 이 책 주문하신 일 있으세요?”하며 택배를 보여드리자 갑자기 창백한 얼굴로 변하더니 “우메! 그것이 참말로 와부렇는 갑네! 이일을 우추고 해야 쓰까?”하며 안절부절 이시다.

“할머니 왜 그러세요? 혹시 무슨 일이 있었나요?”하고 묻자 책을 가르치며 “그것 안 있어? 그것을 다시 보내 불문 어차까? 나 그것 한나도 소용읍는디 으찬다고 늘근이한테 그런 것을 보내싼가 몰르것네!”

 

“이 책은 필요 없으시면 다시 반송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무슨 일이 있었는가 말씀해 보시겠어요? 혹시 안 좋은 일이 있었나요?”하고 물었더니 잠시 숨을 고르신 할머니께서 천천히 설명을 시작하신다.

 

“그란께 엊그저께 저녁때나 되었는가 으쨌는가 우리 집으로 전화가 왔어!” “무어라고 왔는데요?” “목소리는 절문 남자 같은디 ‘여보씨요! 거그 박점례 집이요?

우리는 박 씨들 족보를 맨든 사람들인디 할머니가 필요할 것 같은께 한 개를 보내껏잉께 그리 아씨요!’그라드랑께!”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그란디 그때는 마당에 동네사람들도 와서 머시라고 해 싼께 먼 소리가 먼 소린지 잘 몰르것서서 ‘알았소!’그라고 끈었는디 난중에 생각해 본께 안 되것드랑께!

내가 성이 박가(朴家) 제만 임씨들한테 시집을 와서 수십 년을 살았는디 박씨 족보가 무슨 필요가 있것서!” “그래서 어떻게 하셨는데요?”

 

“쩌그 장흥 장평에 우리 친정 조카가 살고 있어! 그래서 그리 전화를 해 갖고 ‘아야! 나 고모다 그란디 나한테 박 씨들 족보를 보낼란다고 전화가 왔드란 마다 그란디 혹시 거그서 나한테 보내라고 그랬냐?’하고 물어봤단께!”

 

“그러면 조카 분께서는 뭐라고 하시던가요?” ‘내가 뭣 할라고 고모한테 박 씨들 족보를 보내라고 한다요. 그라고 고모님은 족보가 필요하문 임씨들 껏이 필요하제 박 씨들 껏은 아무 필요가 읍는디 그리 보내라고 하껏이요! 그랑께 꺽정도 말고 혹시 그런 것이 오고 그라문 도로 보내부씨요!’ 글드랑께!”

 

“그러면 책값은 얼마를 달라고 하던가요?” “몰라! 그란디 누구한테 들은께 2십 만원이나 주라고 그란다고 그라네! 근디 이것 도로 그짝으로 보낼라문 돈을 을마나 줘야 되까?”

“할머니께서 필요 없으시면 다시 반송하신다고 해도 돈은 들지 않아요.”

 

“그래~에! 그라문 고맙제~에! 나는 이라고 시운지는 몰르고 그 책을 도로 안 보내 주다고 받으라고 하문 우추고 하까? 꺽정을 수도 읍이 마니도 했네! 아이고! 고맙소 잉!”

 

"내가 팔십을 넘게 살었제만 이런 일은 첨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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