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와 탕수육
손자와 탕수육
“중형 태풍 나크리의 영향으로 남부지방은 월요일까지 많은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되오니 피해입지 않도록 주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기상청의 일기예보가 정확했는지 금요일 오후 퇴근 무렵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토요일 일요일을 지나 월요일 출근시간이 되었으나
여전히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내리더니 우편물을 정리하여 우체국 문을 나설 무렵이 되자 잠시 주춤하는 것처럼 빗줄기가 가늘어지더니
시골마을에 우편물 배달을 시작할 때는 더욱 거세게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무슨 비가 이렇게 한없이 내리는 것일까? 이제 그만 그칠 때도 되었는데.” 하며
시계를 보았더니 시간은 벌써 오후 1시가 넘어서고 있어.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나? 그러면 비가 오는 동안 점심을 먹어야겠다.”하고
중화요리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이고! 비도 비도 징하게도 와싼디 고생해쌓네! 얼렁 이루오소!”하며
회천면 금광마을 아저씨 두 분과 아주머니 세분 그리고 이제 초등학교 3학년으로 보이는 남자 어린이가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여기서 식사를 하세요? 이렇게 비까지 오는데요.” “비가 오고 그라문 우리는 쉬는 날이여! 자네도 생각해 보소!
비오고 그라문 먼일을 하꺼인가? 그랑께 오늘 같은 날이나 한 번씩 식당에 와 갖고 외식을 해야제 비 온 날 아니문 은제 하꺼인가?” “
그런데 비가 3백mm가 넘게 왔다는데 농작물 피해는 없나요?” “으째 피해가 읍쓰꺼시여! 당연이 있제! 그라제만 으짜꺼시여!
하늘에서 하는 일인디 우리는 그저 때 되문 모 심고, 감자 심고, 깨 심고, 옥조시 심고, 그래갖고 가꾸다가 하늘에서‘느그들 올해는 째까만 묵어라!’
그라문 째깐 묵고 ‘느그들 올해는 고상했응께 만이 묵어라!’그라문 만이 묵고 그저 주문 준대로 묵어야제 억지로 세상은 못사는 것이여!”
“하긴 그 말씀이 맞네요. 그래도 비가 너무 많이 쏟아지니 정말 걱정이네요.” “그란디 제주도는 1,000mm도 넘게 왔다고 야단 아니든가?
거그에 비하문 우리는 암껏도 아닌께 인자 그 말은 그만하소!” “알았습니다. 괜히 식사하시는데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하는
순간 주문한 음식이 나와 식사를 하고 있는데 건너편 식탁에서는 이제 식사가 끝났는지 아저씨 한분께서“여그 을마여?” “4만 8천원인데요.”
“그래!”하고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더니 초등학생을 보고 빙긋이 웃으며“인자본께 아까 니가 탕수육 갑은 낸다고 했제?”하고 묻자
할아버지 얼굴을 한번 슬쩍 훑어 본 손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이 없다. “아까 니가‘짜장멘 갑은 할아부지가 주문 탕수육 갑은 내가 주께요.’
해노코 왜 말이 읍냐? 니 조마니에 돈 마니 있드만 얼렁 주라! 음식 묵었응께 인자 돈을 줘부러야제!”하였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으째 돈 내기가 실으냐? 그라문 말을 해야제 암말도 앙코있으문 쓰간디 얼렁 말을 해봐! 돈을 내껏인지 안 내껏인지.”하였으나
손자는 여전히 할아버지 눈치만 살피고 있을 뿐 말이 없었다. “창석아! 할아부지가 돈이 아까와 탕수육 갑을 안 낼라고 그란 것이 아니고
남자는 한 번 약속을 했으문 신의가 있어야 쓰는 것이여! 다시 말하문 한 번 약속을 했으문 끝까지 지켜야 한다. 그 말이여!
할아부지 말이 먼말인지 알았냐?”하며 가만히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자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던 손자 “하라부지! 지금은 저한태 돈이 읍응께 집이 가서 드리께요.”
요즘 전남 보성 회천면에서는 붉은 고추 수확이 한창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