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 이야기
은수 이야기
이른 아침 어디선가 날아온 휘파람새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에 잠이 깨었습니다. 매년 이른 봄이면 저의 집 뒤쪽 대(竹) 숲으로 찾아와“주인님! 안녕히 주무셨어요? 이제부터 행복한 하루가 시작됩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하고 마치 휘파람을 불 듯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 부르며 아침잠을 깨워주던 휘파람새가 금년에도 어김없이 찾아온 것입니다. 오늘도 우편물을 배달하기위하여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우편물을 가득 싣고 시골마을로 힘차게 출발합니다.
시골마을로 향하는 도로의 양지바른 언덕에 이제야 노란 개나리와 빨간 진달래가 수줍은 듯 미소를 지으며 조금씩 꽃망울을 터뜨리며 저를 반겨주고 있습니다. 금년에는 예년과 달리 늦게까지 추위가 계속되는 바람에 아직까지 피우지 못한 봄꽃들이 밝고 따스한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자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며 봄꽃을 피워내기 위해 분주한 모습입니다. 전남 보성읍 봉산리 노산마을의 중간쯤에 위치한 선이선 할아버지 댁 오늘따라 대문이 활짝 열려있어 마당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들어가
“어르신! 안녕하세요? 저 왔어요!”하며 조그만 화장지 상자크기의 소포하나를 마루에 내려놓습니다. “아니! 이것이 뭣이여?” “예~에! 경기도 부천에서 소포가 왔는데요!” “부자가 으찬다고?” “어르신 그게 아니고요! 경기도 부천에서 소포가 왔다고요~오!” “다시 말해봐! 잘 안 들려!”하는 순간 할머니께서 얼른 주방에서 나오시더니 얼굴에 함박웃음을 지으시며“우리 딸이 보냈구만! 아저씨 딸 있어?” “딸이요? 할머니 무슨 딸이요?” “아니! 아저씨 딸 있냐고?” “저요? 저는 딸 없어요! 그런데 왜 물어보세요?”
“나는 딸이 있응께 이렇게 선물도 받고 그란디 아저씨는 딸이 없어서 어짜까? 인자 선물 받기는 틀렸네!” “그러면 며느리에게 선물해달라고 그러지요!” “아이고! 그래도 틀려! 이것이 우리 딸이 나 먹으라고 보약지어서 보낸 것이여! 그란께 아저씨도 지금이라도 딸 하나 낳아서 키워! 알았제?” “예! 알았어요! 할머니 안녕히 계세요!” 하고 다음 마을로 향하는 저의 마음은 갑자기 쓸쓸해져 오는 것 같습니다. “이제라도 딸을 하나 낳아서 키워봐? 그런데 딸을 낳으려다 다시 아들을 낳는다면? 흐이구!”
은수는 저의 셋째이자 막내처남의 올해 세 살 난 둘째 딸입니다. 지난번 음력설에 제가 저의 집사람과 처갓집을 갔더니 막내처남이 “큰 매형 부탁 하나하면 안될까요?” “무슨 부탁인데?” “우리 은수를 매형이 잠시 맡아주시면 안될까요? 저의 집사람도 직장을 다니는데 큰애는 어린이집에 맡겨 놓고 있는데 은수는 적당히 맡길 데가 그러네요!” “그럼 그래라! 그런데 큰누나에게 먼저 상의를 해야지!” “큰누나에게 말을 했더니 좋다고 그러네요!” “그럼 그렇게 하자!”해서 저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저도 그렇거니와 저의 집사람도 어린애들을 좋아하는 탓에 조카들이 저의 집에만 오면 돌아가지 않으려고 울고불고 떼를 쓰는 바람에 애를 먹고는 하였는데 조카를 맡아달라니 저에게는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는데 조카가 얼마나 저를 잘 따라줄지 또 엄마 생각이 난다고 매일 울기나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는데 저의 집에 온 첫날부터 잘 하지도 못하는 어눌한 발음으로 “오수(고숙) 오모(고모)!”를 외치며 조용하기만 하던 온 집안에 활기를 불어넣기 시작합니다.
아침에 제가 출근을 하려면 고개를 땅에 닿을 듯이 숙이며 “오수! 다녀세요~오!”하며 잘 다녀오라며 인사를 하고 퇴근을 하여 집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현관문을 열고나와 “오수! 다녀서요~오!”하고 저의 품에 안기면서 볼에 뽀뽀를 하고는 제가 사가지고 들어간 간식 봉지를 열어보다 봉지 안에 들어있는 아이스크림을 보더니 “우와~아! 아크린이다~아!”하며 만세를 부르기도 하면서 온갖 재롱을 다 피우는 조카를 보며 “정말 딸이 좋기는 좋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새벽에 제가 조금이라도 늦잠을 자는가 싶으면 저에게 달려와서 “빨리 일어나라!” 듯 “오수! 오수!” 하며 저를 흔들었다가 그래도 일어나지 않으면 귀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컴 앞에 앉아있으면 가만히 다가와 “오수! 오수!”하며 저의 손등을 어루만지다가 무릎 위로 기어오르기도 하고 TV에서 어린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춤이라도 추면 같이 뛰며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하는 노래를 “홍아지 홍아지 얼른 홍아지”하며 재롱을 피우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짓게 만들기도 합니다.
처음 저의 집에 왔을 때는 별로 말을 하지 못했는데 이제 조금씩 말을 배워가면서 제가 라면을 끓여 먹으려는데 자꾸 조카가 “아! 아!”하고 한 입 달라는 시늉을 하여 라면가닥을 조금 떼어 입에 넣어주었더니 입에 넣자마자 맵다는 시늉으로 혀를 길게 빼더니 “매어! 매어!” 하며 얼른 물을 마시기도 합니다. 이제 저의 조카도 얼마 있지 않으면 다시 저의 아빠 엄마 품으로 돌아 갈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집에 있는 동안이라도 부디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났으면 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