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이야기

어버이날에 생긴 일

큰가방 2002. 5. 17. 17:52
아침 일찍 영감님 한 분께서 우편실을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어지께 누가 우리 집을 왔었어? 뭣이 왔간디 표딱지(우편물 도착통지서)를 놔두고 갔어?"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담당 집배원에게 물었더니
"어르신 다른 게 아니고요 어른신 자제 분께서 아마 어버이날이라고 어르신 용돈을 보내주신
모양이네요! 혹시 도장 가지고 오셨어요? 하면서 등기 우편물을 보여 드리자 영감님께서
하시는 말씀 "날마다 어버이의 날이면 좋겠네! 이렇게 자식들이 돈을 보내주고 한께 말이여!"
하시는 겁니다.
해마다 어버이의 날이면 객지에 있는 자녀들이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께 선물이나 용돈을
보내드리는데 금년에는 경기가 많이 좋아졌는지는 몰라도 유난히 많은 선물과 용돈이 오고
있습니다.
"할머니 도장 한번 찍어 주십시요!"
"어째서 도장을 찍어주라고 그래?"
"예! 서울에서 돈이 왔는데요!"
"응 우리 막내딸이 돈을 보낸다드만 인자사 왔는 갑구만 응! 우메 내야 딸이 참말로
효녀여! 효녀! 조그만 기달려 잉 내 금방 도장 갖고나오께!"
하시며 안방으로 들어가신 할머니는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시지 않는 겁니다.
"할머니 아직도 도장을 못 찾으셨어요?" 하며 할머니를 부르자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쪼그만 더 기달려 내가 지금 커피 한잔 타고 있응께!" 하시는 겁니다.
또 다른 할머니께서는 "우메 이러다가 우리 집 부자되것네! 어저께는 우리 큰아들이 어버이
날이라고 십 만원을 주고 가드만 오늘은 우리 딸한테서 돈이 오고 참말로 부자되것서!"
하시는 겁니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그렇게 즐겁지 만은 않은 것도 같습니다.
"즈그들 살기도 힘이 들텐데! 이라고 돈을 보냈으까?"
하시며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계시는 할머니도 계시고 어떤 할머니께서는
"자식들 갈치고 살라문 힘이 드껏인디 이라고 돈을 보내준께 미안해서 죽것어!"
하시는 할머니도 계십니다.
"저 어르신 도장이 좀 있어야 되겠는데요!" 하는 저의 말에
"응 우리 딸한테서 돈이 왔는 갑구만! 그라제? 돈이 얼마나 왔어?" 하시며 묻습니다.
"예! 십만 원이 왔는데요!" 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그 영감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에이 돈을 보낼라 문 한 백만 원이나 보내든지 하제 십만 원이 뭐여 십만 원이!"
하시자 옆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한마디하십니다.
"영감탱이가 욕심도 많아 욕심도 엊그저께도 애기들이 와서 돈을 을마나 주고 가드만
그새 또 백 만원이나 보내주라고 그래? 사람이 아무리 자식들이라고 하제만 양심이
있어야제 양심이 안 그라요 우체부 아저씨!" 하시자 영감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 그래도 기왕에 보낼라 문 많이 좀 보내야제 내가 쓰든지 말든지 하제 돈 십만원
보내놓고 내가 돈 보냈네 하문 되것어? 엉 안 그란 가?" 하시는 겁니다.
"어르신 십만 원이 적으세요?" 하는 저의 물음에 영감님께서 하시는 말씀
"아니여 내가 무단이 한번 해 본 소리여 그저 이라고라도 보내준게 고맙제!" 하십니다.
해마다 어버이의 날은 반복이 되고 있습니다. 언제나 어버이의 날같이 부모님을 생각하는
자녀들이 많았으면 하는 게 저의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