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며느리의 이름

큰가방 2005. 5. 14. 22:16
 

며느리의 이름


5월의 중순에 접어들면서 날씨는 초여름으로 향해 달려가는 듯 따뜻함 보다는 약간은 무더운 날씨로 변해 있습니다. 오늘도 행복이 가득 담긴 우편물을 배달하려고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우편물을 가득 싣고 시골마을을 향하여 달리는 저의 마음은 상쾌하기만 합니다. 거리의 가로수들은 온통 녹색 옷으로 치장을 하고 오가는 길손을 반겨주는데 문득 바라본 도로 위에 하얀 아카시아 꽃들이 소담스럽게 피어있습니다. 아카시아 꽃! 제가 어린시절인 1960년대 먹을거리가 귀했던


그 시절 하얀 아카시아 꽃이 피면 꽃을 한 움큼 따서 입안 넣고 씹으면 달착지근하면서도 향긋한 아카시아의 향기가 입안 가득 퍼져 나오곤 하였는데 “지금의 아카시아 꽃 맛은 어떨까?”하고 잠시 빨간 오토바이를 도로 한쪽에 세우고 아카시아 꽃을 따려고 하였으나 제 키가 닫지 않는 너무 높은 곳에 꽃이 피어있는 바람에 그냥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한때는 시골마을에 아카시아 나무가 많았었으나 아무 필요가 없는 나무라며 모두 베어버리는 바람에 이제는 귀한 나무가 되어버린 아카시아 그러나 저의 어린시절


그 시절이 생각하면 아카시아 나무는 결코 필요가 없는 나무는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서 달려온 곳은 전남 보성 회천 군농리 농소마을입니다. 농소마을 입구에 접어들면서 우체국을 출발할 때 수취인의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은 소포의 주인을 물어보려고 마을의 주민을 찾았으나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농사철이 시작되니 사람 만나기가 영 쉽지 않구나!”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바라본 마을 회관 앞에 할머니 한분께서 어디론가 급히 걸어가시는 것을 보고 할머니를 불러 세웠습니다.


“할머니! 말씀 좀 여쭈어볼게요! 혹시 이 마을에 이철민 씨라고 들어보셨어요?” “이철민? 철민이가 아부지 이름이여? 아들 이름이여?” “글쎄요? 아마 어른 이름은 아닌 것 같은데 잘 생각이 나지 않네요!” “어른 이름은 모르것고 아들 이름은 이철민이가 있는디 저 건너 쪼깐한 리아까 세워 놓은 대문 집 그 집 아들 같은디! 그 집 가서 물어봐!” 하시더니 제가 미쳐 “할머니!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도 드리기 전 할머니께서는 가던 발걸음을 재촉하며 어디론가 급히 걸어가십니다.


저는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조그만 손수레가 세워져 있는 집의 대문을 열고 소포를 들고 마당에 들어서자 마루에 할머니께서 누워계시더니 저를 보시고 벌떡 일어나십니다. “할머니! 어디 편찮으세요?” “아니! 들에 좀 나갔다 왔드니 이라고 몸이 피곤하고 아프고 그라네! 그란디 우리 집이 뭣이 왔어?” “할머니! 혹시 이철민 씨라고 아시겠어요?” “이철민이 우리 셋째 아들이 이철민인디 으째그라요?” “예~에! 경기도 광주에서 소포가 하나 왔네요! 경기도 광주 한선주 씨라고 아시겠어요?”


“한선주? 잘 모르것는디! 한선주가 누구까? 광주에 우리 딸들이 살기는 산디 한선주는 잘 모르것는디!” “할머니! 이철민 씨가 할머니 셋째 아드님이라면서요?” “우리 셋째 아들은 맞은디 지금 서울서 무슨 큰 건물 짓는디 감독한다고 그라데!” “그래요! 그러면 아드님이 어디서 살고 계시는데요?” “금메 서울서 산단께! 직장도 거가 있고 그란디 으째 철민이 앞으로 소포가 오까? 이상하네!” “할머니! 혹시 사위되시는 분 이름이 한선주 씨 아닌가요?” “아니여! 우리 딸들이 광주서 둘이 살고 있는디 사위가 한씨는 아니여!”


“그래요! 그럼 이 마을에 혹시 다른 사람 이철민 씨라고 있어요?” “아니! 이철민 이는 우리 집에만 있는디!” “할머니! 그럼 소포는 할머니 댁에 온 것이 맞아요! 그러니까 소포는 놓아두고 갈 테니까 이따 아드님께 전화 한번 해보시겠어요?” “아이고! 안되야 그러다 나중에 우리 소포 아니라고 다시 내 놓으라고 하문 어쩔 것이여?” ‘참!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소포를 놓아두고 가야하나? 그냥 가지고 가야하나?’하고 잠시 망설이고 있는데 갑자기 할머니께서 대문 쪽을 바라보시더니


“어이! 질부(姪婦)! 이리 좀 와 봐~아!”하고 누군가를 크게 부르십니다. 그러자 젊은 아주머니 한분께서 “작은어머니! 왜 그러세요?”하며 대문을 열고 들어오십니다. “질부! 우리 집에 소포가 한개 왔는디 이것이 우리 것인가 아닌가 좀 봐줘!” 하시자 젊은 아주머니께서 소포를 유심히 보시더니 “아이고! 작은어머니도 참! 아! 며느리 이름도 몰라요? 이 소포는 작은 동서가 어른 이름을 쓰기가 그러니까 작은 서방님 이름을 써서 보낸 소포잖아요! 작은어머니 잡수라고 과자를 또 사서 보냈나 봐요!” 합니다.


“할머니! 거 봐요! 제가 이 소포 할머니 소포라고 했잖아요! 이제 소포 받으셔도 되겠지요?” “아저씨! 원래 노인들이 다 그러시잖아요! 서울 근처에 살면 모두 서울서 산다고! 저의 작은어머니께서도 아마 그렇게 생각하셨을 거에요! 아저씨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아저씨 미안해서 으짜까? 무단이 바쁜 양반 잡어 놓고 미안해 죽것네!” 하시며 빙긋이 웃고 계시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저는 다시 다음 마을을 향하여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열심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 사진은 보성 일림산 철쭉 사진입니다.

 

여러분께 죄송한 말씀드립니다.

제가 중국으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그 바람에 여독(旅毒)이 풀리지 않아서 며칠 동안 고생을 해야만 했습니다.

주인도 없는 빈방을 찾아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중국 여행기는 사진이 정리되는 대로 여러분들께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