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흘리는 음료수
어제는 강한 바람과 함께 많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오늘 새벽에는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는 날씨였는데 오전 9시가 지나면서 짙은 먹구름이 서서히 물러가고 붉은 해가 머리를 내밀더니 한낮이 되면서 7월 중순의 날씨가 무색할 정도의 뜨거운 날씨로 변해있으나 시골의 들녘에는 어제 내린 비로 논마다 물이 가득 고여 마지막 모심는 작업이 한창이고 이미 수확을 끝낸 감자 밭에는 어느새 고추가 심어져 갓난아기의 손가락만 한 조그만 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행복을 배달하기 위하여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기쁜 소식과 행복한 소식이 가득 담긴 우편물을 싣고 하얀 구름과 밀려오는 검푸른 파도와 멀리 고흥군이 보이는 해안도로를 따라 시골마을을 향하여 천천히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전남 보성 회천면 군농리 금광마을입니다. 금광마을의 두 번째 집 앞에서 잠시 빨간 오토바이를 세우고 멀리 강원도에서 보내온 현금이 들어있는 등기우편물을 한통 꺼내어 마당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마루 앞에서“할머니! 어디계세요? 저 왔어요!”
하였더니 마당 옆 텃밭에서 허리를 굽히고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얼굴에 흘러내린 땀방울을 소매 끝으로 닦으시며 얼른 마당으로 나오시더니 “아제! 뭣이 왔으까? 뭔 반가운 것이 왔으까?”하며 저를 반기십니다. “할머니! 강원도 홍천에서 돈이 왔네요! 김영길 씨가 누구되세요?” “김영길 이? 우리 작은집 조카여! 근디 영길이가 뭣을 보냈어?” “돈을 십 만원 보내셨는데요!”하였더니 깜짝 놀라는 얼굴로 “아이고~오! 뭐하러 보냈으까? 보내지 마라고 했는디!”하며 안타까운 얼굴입니다.
“할머니! 조카께서 돈을 보내 기분이 나쁘세요?” “아니! 기분 나쁜 것이 아니고 즈그들 살기도 힘든디 뭐 하러 큰 어메 생각한다고 이라고 돈을 보냈는가 몰것어? 엊그저께 전화가 왔드랑께 내 통장번호 좀 가르쳐주라고 그래서 나는 괜찮한께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디 기어이 돈을 보냈구만!” “그러셨어요? 그런데 이미 돈은 왔는데 어떻게 하지요? 할머니! 이따 조카에게 전화하셔서 보내준 돈 잘 받았다! 고맙다! 하세요! 또 저 윗집 할머니처럼 뭐하러 돈 보냈냐? 안 보내줘도 괜찬한디 인자는 그런 것 보내지 마라! 알았냐?
하시지 마세요! 그러면 조카가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거든요! 아시겠어요?” “와따~아! 내가 뭣하러 그런 말을 하간디 그런 말은 하문 안되제~에!” “할머니! 저 그만 가볼게요! 안녕히 계세요!”하고 막 할머니 댁 대문 앞을 나왔는데 할머니께서 “아제! 아제~에! 이리 좀 와봐!”하십니다. “왜? 할머니께서 부르시지 뭐가 잘못되었나?”하는 마음으로 “할머니! 왜? 그러세요?” “와따~아! 날씨도 무지하게 덥구만 내가 음료수 한잔 주께 자시고 가! 어서! 이리 들어와!” “할머니! 괜찮아요!”
“내가 노인이라 그래?” “할머니도 참! 음료수를 주신다는 데 노인이면 어떻고 젊은이면 어때요? 금방 음료수 한잔 마셨거든요!” “그래도 어서 이리 들어와 내가 맛난 것 주께!” ‘아니 맛난 것이라니 무슨 맛난 것을 주려고 저러시나?’하고 다시 할머니 댁 마당으로 들어갔더니 캔에 담긴 배 즙 주스인데 냉동실에 넣어두었는지 꽁꽁 얼린 채 서리가 하얗게 피어있습니다. “할머니! 왜? 캔을 냉동실에 넣어두셨어요? 그러다 캔이 터지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그래야 밭에 나갈 때 갖고 가서 그늘에 놔두면 녹아! 그럼 그때 마시면 시원하니 좋제~에!” “아! 그렇군요! 할머니! 고맙습니다. 음료수 잘 마실게요!”하고 할머니 댁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주신 꽁꽁 얼려있는 캔은 오토바이 적재함에 넣어둔 채 오토바이 적재함에 캔이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음마을로 또 다음마을로 열심히 달려가다 천포리 말이 목이 마른다는 갈마(渴馬)마을에 거의 도착하였을 무렵 초등학교 2학년 쯤 보이는 남자 어린이와 유치원 생 쯤 되는 남자 어린이가 무더운 날씨인데도
손을 잡고 마을을 향하여 열심히 걸어가다 저를 보더니 “아저씨! 안녕하세요~오?”하고 인사합니다. “응! 그래! 학교에 갖다 오냐?”하며 두 어린이의 얼굴을 보니 얼굴은 뻘겋게 달아오른 채 온통 땀범벅입니다. “날씨가 덥지?”하고 물었더니 두 어린이는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바로 그때 할머니께서 주셨던 꽁꽁 얼려있던 캔이 생각나 오토바이 적재함에서 캔을 꺼내 흔들어보니 아직 얼음이 약간 덜 녹았는지 속에서 달그락 소리가 들리는데 캔의 표면은 아직도 차갑게 느껴지면서 이슬이 맺혀있습니다.
그래서 캔을 어린이 손에 쥐어주며“자! 이거 마시고 집에 가라!”하였더니 어린이들의 눈빛이 갑자기 반짝 빛나는 것 같더니 “아저씨! 고맙습니다!”하는 겁니다. 그런데 유치원생 어린이가 캔의 표면을 만져보더니 “형아! 왜? 음료수가 땀을 흘려? 음료수도 날이 더우면 땀을 흘리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