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이야기

맨발의 할머니

큰가방 2003. 5. 18. 16:53
5월의 하순이 다가오면서 날씨는 초여름 날씨로 변해있습니다.
오늘도 시골의 논에는 모를 심는 작업으로 분주합니다.
비록 사람의 힘이 아닌 기계가 모를 심는다고는 해도 그러나 사람의 힘이 전혀 필요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마을의 공터나 또는 마당에 가지런히 모판을 놓아두고 볍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농민들이
모습이 정겨워 보입니다.
문득 논에 모판을 만들어 볍씨를 뿌리고 모를 길러낸 후 다시 모를 쪄내어 모를 옮겨 심던
옛날과 지금의 모내기 작업을 비교하면 그때는 어찌 그리 힘들게만 살았는지 아마도 그때는
농사를 짓는 방법이 지금처럼 발달을 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농촌의 일손도 그렇게 부족
하지만은 않았으리라 생각을 해봅니다.
시골마을 입구에 있는 구멍가게에서 영감님 한 분이 저를 부르십니다.
"어이 이리 와서 술 한잔 만하고 가~아!" 하시면서 저에게 술을 권하십니다.
'오늘 무슨 좋은 일이 있으세요?' 하는 저의 물음에 영감님께서는
"오늘 모를 다 심었어! 그랑께 기분이 좋아서 이라고 술 한잔 하고있네!" 하시는 겁니다.
'아니 언제 모를 다 심으셨어요? 어르신 논에 사람도 보이지 않던데요!' 하는 저의 말에
"이 사람아! 꼭 논에 사람이 있어야 심는당가? 사람 없어도 그냥 모를 심어 요새는!"
하시는 겁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은 논에 줄을 치고 볍씨를 뿌리는 직파 재배법이 있어서 농민들의 수고를
많이 덜어주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이 마을 저 마을을 지나서 저는 어느덧 전남 보성군 노동면
옥마리 마산 마을 입구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시커먼 먹구름이 일기 시작하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아니? 이것은 또 뭔 일이여? 갑자기 무슨 소나기여? 소나기가!' 하면서 얼른 오토바이
적재함을 덮개로 덮고서는 마산 마을 장진평 할머니 댁의 대문간으로 들어갑니다.
'오늘 이 집 할머니에게 등기 우편물이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자 오토바이 적재함에서
등기우편물을 꺼내들고는 할머니 댁의 대문을 열려고 하자 대문이 잠겨있는 겁니다.
'어? 이상하다! 왜 대문이 잠겨있지? 언제나 대문이 열려있는데 오늘은 어디 마실 을
가셨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혹시 할머니께서 집에 계실지 몰라 할머니를 불러봅니다.
'할머니! 할머니!' 집에 아무도 안 계세요? 할머니~이!'
하고 부르는데 집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은데 대문이 열리는 기미는 보이지
않는 겁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우편 수취함에 우편물을 넣어두고 가도 되지만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
바람에 우편물이 젖을 염려가 있어 수취함에 넣어두기도 곤란하고 그런데 할머니는 어디를
가신 거여?'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때서야 집안에서
"누구여? 누구 왔어?"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예! 할머니 우체부가 왔어요! 등기 편지가 왔으니까요 얼른 문 좀 열어보세요!'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응 쪼금 지달려 봐 잉! 지금 나갈랑께!" 하셨는데 대문을 열 기미가 없고 소나기는 좀처럼
멈추지 않고 더욱 쏟아집니다.
'아니 할머니께서 지금 뭐하시는 거여 얼른 좀 나오시지 않고! 비는 이렇게 내리는데'
하면서 투덜투덜하고 있는데 그때서야 할머니께서 대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십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얼마나 급하셨는지 우산도 쓰지 않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신 채
신발도 신지 못하고 맨발로 대문까지 나오신 겁니다.
'아니 할머니 왜 신발도 신지 않고 나오셨어요? 우산도 좀 쓰고 나오시지!' 하는 저의 말에
"아제가 내 약을 안주고 도로 갖고 가불문 큰일난께 그라제!" 하시며 빙긋이 웃으십니다.
'아니 할머니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그렇다고 신발도 안 신고 이렇게 비를 맞고 나오시면
어떻게 해요? 얼른 집으로 들어가세요! 약은 제가 가지고 갈게요!' 하고서는 얼른 할머니의
약을 가지고 현관으로 뛰어들어갑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신 채 느린 걸음걸이로 내리는 소나기를 다 맞고
다시 현관으로 돌아오십니다.
"아제 미안해 잉 늙은이가 걸어댕기들 잘못한께 어쩌것이여? 우메 비를 다 맞었는디 으짜까
미안해서! 잉" 하시며 저에게 미안해하시는 할머니에게 오히려 제가 죄스러운 마음입니다.
'할머니 저기 통(우편 수취함)에 넣으려다가 할머니 약이 비에 젖을까봐 할머니를 불렀어요
그런데 왜 대문을 잠그셨어요?' 하고 묻자
"금메 내가 대문을 절대 안 잠근디 이상하게 오늘은 대문이 잠가져 갖고 이라고 늙은이
고생을 시키네 날이 궂은께 대문도 지랄을 한갑서!" 하십니다.
'할머니! 할머니가 집에 안 계실 때 면 항상 우편 수취함에 그냥 할머니 약을 넣어두고
다녔는데 오늘따라 할머니 고생을 시키려고 소나기가 내린 모양이네요!' 하는 저의 말에
"그랑께 딴때는 그라도 않드만은 오늘은 이상하게 대문까지 잠가져 갖고는 늙은이를 고생을
시켜쌓그만!" 하십니다.
'할머니! 할머니 약 비에 젖을까봐 할머니를 불렀으니까요 저 미워하지 마세요!' 하는 저의
말에 할머니께서는
"으메 그른 소리 말어 안 그래도 미안해 죽것는디 무단이 나땀새 아제만 비를 다 맞고 미안
해서 으짜까?" 하시며 오히려 저에게 미안해하십니다.
'할머니 저 가볼게요!' 하며 할머니 댁의 대문을 나서는 순간 언제 소나기가 내렸냐는 듯
하늘은 금방 맑게 개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