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이야기

부족한 설명

큰가방 2003. 10. 5. 06:29
오늘도 시골마을을 향하여 시골의 좁은 도로를 천천히 달려갑니다.
들판 여기저기에는 아직까지 채 여물지 않은 많은 벼들이 가을의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점차 고개를 숙이기 시작합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코스모스 꽃 잎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더니 바로 옆
에 바람에 한들거리며 서있는 억새의 하얀 수염을 향하여 날아갑니다.

그리고 제가 도착한 곳은 전남 보성읍 쾌상리 평촌마을입니다.
평촌마을의 제일 높은 집 선소천 씨 댁으로 가고 있는데 그 집 바로 밑에 살고 계시는 이제
는 고인(故人)이 되신 선방호 씨 댁의 할머니께서 마루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하고 계시다
저를 바라보십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무엇하고 계세요?" 하는 저의 물음에 할머니께서는 저를 물끄러미 바
라보시다 갑자기 "우메 이쁜 양반이 오랜만에 보이네! 이루와서 쪼간 쉬었다가 가~아!" 하
시며 저를 부르십니다.

"할머니 이 윗집에 다녀올게요!" 하고서는 선소천 씨 댁의 우편물을 배달을 하고 내려오면
서 "할머니 맛있는 것 있어요?" 하고 묻자 할머니께서는 "노인이 맛이 있으문 을마나 맛있
는 것이 있것서! 이루와서 그냥 단감이나 한 쪼각 자시고 가~아!" 하십니다.
"할머니 단감이 벌써 맛이 들었을까요? 저 그냥 갈게요! 단감은 다음에 주세요!"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아저씨 거가 있어봐!" 하시더니 얼른 신발을 신고서는 저에게 달려오십니다.

그리고는 금방 깍은 단감 반쪽을 저의 손에 쥐어주시며 "우리 감은 올 감잉께 참말로 맛있
어 안 바쁘문 차분하니 앉아서 쪼금 깡꺼자시라고 하문 쓰것그만 항상 바쁘다고 그랑께 그
냥 보내기는 서운하고 그래서 이것만 갖고 왔응께 그 놈이라도 자셔봐 잉! 하십니다.
"요즘 과일들은 맛이 별로 없다는데 얼마나 맛이 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할머니께
서 저에게 주신 단감 반쪽을 한 입 베어 물어봅니다.

그런데 단감의 맛이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단감의 향긋한 향과 함께 무척 사근사근한 맛이
저의 생각보다는 훨씬 맛이 좋다는 느낌입니다.
"가을이라는 계절을 속일 수는 없구나! 요즘 과일은 일조량이 부족하여 예년보다는 별로 맛
이 없다고 들었는데 할머니 댁의 단감나무는 예외인가? 그러면 몇 개 얻어올걸 그랬나?" 하
는 생각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웃어봅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이 마을 저 마을로 이동을 하면서 "다른 집의 단감도 맛이 있으려
나?" 하는 생각을 하고서는 주인이 안 계시는 집의 단감나무에서 단감 한 개를 슬쩍하여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아이고! 이것은 또 무슨 맛이냐?" 하면서 그만 단감을 삼키지도 못하
고 뱉어내고 말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감은 단감이 아니고 떫은감이었기 때문입니다.

"참! 나도 이제는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가 보다! 단감나무인지 떫은 감나무인지 분간을 못
하다니!" 하는 생각을 하니 괜스레 웃음이 나옵니다.
그리고 천천히 다음 그리고 또 다음 마을로 향하다보니 보성읍 옥암리 해경마을에 도착하였
습니다.
옥암리 해경마을은 예전에는 20여 호(戶) 가까운 사람들이 살고 계셨으나 이제는 7호 밖에
살지 않은 조그만 마을입니다.

그 마을 이해덕 할머니 댁의 마당으로 들어가자 이해덕 할머니께서 감나무 그늘 아래서 앉
아 계시다 저를 보시더니 빙긋이 웃으시면서 "아저씨 머시 와쓰까?" 하시며 저에게 묻습니
다.
"할머니 한국전력에서 무슨 안내장이 왔는 모양이네요!" 하면서 할머니에게 우편물을 건네
드리자 할머니께서는 "아저씨 머신가 쪼끔 봐주고가~아!" 하시며 우편물을 저에게 다시 건
네십니다. 그래서 우편물을 개봉하여 보았더니 '전기요금 이중 납부에 따른 환급 안내서'
라는 환급 통지서입니다.

그래서 할머니께 설명을 드립니다.
"할머니 한전에서요! 전기요금을 두 번 내셨다고 돈을 찾아가시라는데요!" 하고 설명을 드
리자 할머니께서는 갑자기 화가 몹시 내시면서 말씀을 하십니다.
"뭔 전기세를 두 번이나 내라고 그래~에 먼자 참에 내가 가서 다 바치고 왔는디 전기세를
또 내라고 잉?" 하시며 화를 내십니다.

"어??? 내가 설명을 드린 내용은 이게 아닌데 왜 할머니께서 갑자기 화를 내시지? 할머니께
서 잘못 알아들으셨나?" 하면서 다시 한번 천천히 설명을 드립니다.
"할머니 그게 아니고요 할머니께서 전기요금을 두 번이나 내셨다니 까요! 그래서요 한전에
서요!" 하는 순간 다시 할머니께서는 역정을 내십니다.
"그랑께 으째서 나보고 전기세를 두 번이나 내라고 그래싸 잉 다른 사람들은 한번 만 내문
안내드만 안 그래도 나 혼자 살기도 성가신디~이" 하십니다.

"어! 이상하다! 내가 설명한 내용은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과 함께 "아차!" 하는 마음이
스치듯이 지나갑니다. 저의 생각에는 할머니께서 귀가 조금 어두우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큰소리로 이야기합니다.

"할머니~이! 그게 아니고요~오 전기요금을 두 번이나 내셨다니 까요~오! 그래서요~오 전기
요금을 한전에서 다시 할머니께 환급해드린다고 통지서가 왔어요~오! 아시겠어요~오!"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그때서야 저의 말뜻을 알아들으셨는지 "오~오! 그랑께 전기세를 두
번 바쳤응게 찾아가라고 잉?" 하시는 겁니다. "예! 이제 알아들으셨어요?" 하는 저의 말에
할머니께서는 "그라문 을마를 찾어가라고?" 하십니다.

"29,320원인데요! 할머니 왜 전기요금을 두 번이나 내셨어요?"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거
시기 내가 두 번을 낼라고 그란 것이 아니고 먼자 은제 부산서 사는 딸한테서 전화가 왔데
그란디 딸이 통장으로 우추고 하문 그냥 거그서도 우리집 전기세를 낼수 있응게 나보고는
전기세를 내지 마라고 그란디 내가 깜박 잊어부렇어 그래 갖고 나도 그냥 전기세를 내부렇
제 그랬는디 인자 찾아가라고 그란갑구만" 하시는 겁니다.

"할머니 이제는 저에게 화내지 마세요! 와! 우리 할머니 화를 내시니까 무지하게 무섭네!"
하는 저의 말에 할머니께서는 빙긋이 웃으시며 "아따 내가 아저씨한테 화낸 것 아닝게 써운
하게 생각하지 말어 잉! 그나저나 아저씨 한테 뭐 줄것이 읍어서 으짜까 입맛 다실것이 암
껏도 없는디 서운해서 으짜까 잉!" 하시며 무척 아쉬운 표정이십니다.
"할머니 괜찮아요! 안녕히 계세요!" 하면서 할머니 댁을 나와 재궁 마을로 향하여 저는 천천히 달려갑니다.

시골에 홀로 살고 계시는 나이가 많으신 노인들께서는 간혹 귀가 어두우신 분들이 계십니
다. 그런데 그런 사정을 미리 알고있으면 제가 큰소리로 말을 하는데 그랬다면 오늘 같은
소동은 없었겠지요. 그런데 시골에 계시는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사정을 제가 정확히 알 수
가 없으니 오늘 같은 소동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이해덕 할머니의 건강을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