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보내온 소포
아내가 보내온 소포
어젯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가을비는 아침이 되어서도 그칠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추적추적 내리고 있습니다. 제가 우체국에 출근하려고 대문 밖 골목길을 나오니 골목길에는 밤새 나무 가지에서 떨어진 낙엽들이 수북이 쌓여있습니다. 밤새 내린 비로 나뭇잎들이 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내린 것입니다.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천천히 우체국으로 향하면서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가을도 가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어디론가 멀리 우리 곁을 떠나버릴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를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오전 9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오늘 배달하여야 할 우편물이 도착하자마자 보성우체국 우편실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습니다. 일반우편물을 구분하는 직원 등기우편물과 택배를 정리하는 직원들이 정신없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자기 팀과 자신이 오늘 배달하여야 할 우편물을 구분하고 정리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배달하여야 할 소포 한 개가 ‘전남 보성군 회천면 율포리 374번지 박경일’이라는 아직까지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수취인 이름으로 도착되어 있습니다. “박경일? 박경일 씨가 누구일까?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한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혹시 박경일 씨를 아는 사람 있어요?”하고 동료들에게 물어보았으나 “글쎄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요.”하고 대답할 뿐 박경일 씨 댁을 아는 직원은 없습니다. 그래서 소포의 수취인 주소 옆에 적어진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걸어봅니다. 그런데 아무리 신호가 가도 전화를 받을 기미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발송인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그러나 발송인 역시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하지?”하는 생각을 하다
아무리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소포라고 해도 그냥 반송시킬 수는 없는 일이어서 율포리에서 박경일 씨 댁을 문의하여 배달하기로 하고 우편물을 정리하여 우체국 문을 나서는데 여전히 가을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내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천천히 이집 저집을 방문하며 우편물을 배달하면서 박경일 씨를 문의하기 시작합니다. “박경일? 첨 들어본 이름인디! 번지가 몇 번지여?” “율포리 374번지거든요!” “그래~에! 그런디 나는 첨 들어본 이름이여! 이 동네 새로 이사 온 사람인가?
사람들이 객지서 이사를 오문 이사 왔다고 인사를 해야 쓴디 요새는 누가 그런 사람이 없응께 사람이 들어 온지 나간 지를 잘 몰라!” “그래요! 혹시 어르신 옆방에 누가 새로 이사 오지 않았나요? 번지는 어르신 댁 번지와 같거든요!” “저쪽 건축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젊은 사람 혼자 저녁이면 늦게 와서 잠만 자고 아침이면 일찍 나가니까 그 사람 이름이 누군지는 몰라!” “그래요! 혹시 성씨(姓氏)가 박 씨라고 안하던가요?” “글쎄~에! 그 사람 온지가 한 며칠 되기는 했는디 아직 얼굴도 잘 몰라!”
“정말 그러시겠네요!”하며 이집 저집을 수소문하였지만 박경일 씨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소포의 표면에 적어진 수취인의 휴대전화 번호에 전화를 걸어봅니다. 그러나 아무리 신호가 가도 여전히 전화 받을 기미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다시 발송인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역시 발송인도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왜? 양쪽 다 전화를 받지 않지?”하는 생각을 하는데 저의 휴대전화 벨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옳지 드디어 박경일 씨에게 전화가 오는 모양이구나!”하고
얼른 전화를 받아 아주 상냥한 목소리로“네~에! 류상진입니다.”하였더니 젊은 아가씨의 목소리가 “여보세요! 거기 이영일 씨 전화 아닌가요?” “네! 아닙니다. 저는 류상진입니다!”하였더니 “아유~우! 짜증나”하는 겁니다. “여보세요! 아니 무슨 말씀이세요?” “전화 잘못 걸었다구요! 아이! 재수 없어!” “아니? 여보세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재수가 없다니요? 무엇이 재수가 없다는 말씀이세요?” “글쎄! 전화를 잘못 걸었다니까요!”하더니 전화를‘탁!’끊어버리는 겁니다.
“참! 바쁜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놓고 신경질을 내다니!”하는 생각을 하니 어안이 벙벙해 질뿐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다시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다소 짜증난 목소리로“예! 류상진입니다!”하였더니 “여보세요! 저에게 전화하셨어요?”하는 젊은 여자목소리가 들립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저는 서울에서 사는 이경원인데요!” “아~예! 저는 전남 보성우체국 집배원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전남 회천 율포리 박경일 씨에게 소포 보내셨지요? 그런데 제가 박경일 씨 댁을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못 찾고 있거든요!
그리고 박경일 씨에게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고 해서 혹시 박경일 씨가 살고 계시는 곳을 알고 계신가 싶어 전화 드렸습니다.” “예~에! 그러세요. 그런데 어쩌지요? 사실은 저도 잘 몰라요! 박경일 씨가 저의 남편인데 그쪽으로 발령받아 간지 며칠 밖에 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쪽에 훼미리 마트라는 곳이 있나요?” “훼미리 마트요? 예! 있습니다. 만!” “아저씨! 그러시면 훼미리 마트에 맡겨주세요! 우리 그이에게 들으니 숙소가 훼미리 마트 뒤쪽에 있다고 하던데! 일단 그쪽에 맡겨주시면
*전남 보성 회천면 동율리 우암 마을 앞 선착장입니다. 바다 건너 보이는 곳이 고흥군이랍니다.
우리 그이에게 전화해서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그럼 훼미리 마트로 배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드디어 찾았다! 전화만 잘되면 이렇게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을!”하는 생각을 하고 훼미리 마트로 향합니다. 그런데 훼미리 마트의 직원에게 “이 소포를 여기다 맡겨 놓으라고 하네요! 잠시 받아 놓으셨다가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하였더니 “박경일 씨?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인데 누굴까? 아저씨! 죄송한데요. 이것은 받아놓기가 곤란하네요!
제가 아는 사람 같으면 받아 놓겠는데 이 분은 제가 모르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소포를 받아놓았다가 만약에 찾아가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정말 그렇겠네요! 그럼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제가 소포를 보낸 분에게 전화를 해 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하고 다시 소포 발송인에게 전화를 걸어봅니다. 그랬는데 아무리 신호가 가도 전화를 받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하지?”하다 “박경일 씨 댁이 훼미리 마트 뒤쪽이라고 했으니 그쪽에서 다시 한번 찾아보자!”하고 훼미리 마트 뒤쪽으로 향하는 순간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합니다. “옳지! 박경일 씨 가족에게 걸려온 전화인가 보구나!” 하고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예~에 류상진입니다!” 하였더니 갑자기 “빵~빠~라~빵 축하합니다. 고객님께서는 000에 당첨되셨습니다. 당첨되신 것을 축하드리며 상품을 수령하실 주소를 말씀하여 주시면 상품은 댁으로 우송하여 드리겠습니다. 단 상품 수령 시 제세공과금 2만 8천원은 고객님께서 납부하셔야 합니다.”라는 전화였습니다. “왜? 이렇게 좋은 목적에 사용하라는 전화에 자꾸 짜증나는 전화가 걸려오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며
훼미리 마트 뒤쪽을 돌아가면서 영감님 한분을 만났습니다. “어르신 혹시 박경일 씨라고 들어보셨어요? 이쪽으로 이사 온지 며칠 밖에 안 되었다던데요!” “박경일? 박경일이라! 저쪽 뒤에 박영감 있제? 그 집 가서 물어봐! 박경일이가 그 집 조카라든가 누구라든가 하여튼 요새 누가 그 집에 와서 있다고 그러드만!” “예~에! 그랬어요? 고맙습니다!”하고는 얼른 박영감 님 댁으로 향합니다. 그리고는 박영감 님께 “어르신 혹시 박경일 씨라고 아시겠어요?”하였더니 “박경일? 알고 있제! 그런데 왜? 그러는가?”
“다름이 아니고 소포가 와서요.” “소포? 경일이는 저쪽 아파트서 살고 있는디!” “어르신! 그럼 아파트 몇 호에 살고 있는지 아세요?” “이 사람아! 자네 직원 아들이 박경일이여! 아직도 모르고 있었는가?” “아이고! 어르신 그 박경일이 말고 제가 찾는 사람은 다른 박경일 씨라니까요!” “그래~에? 그라문 나도 잘 몰라!”하시는 바람에 그만 실소를 하고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저의 휴대전화 벨이 울립니다. “옳지! 드디어 박경일 씨에게 전화가 오는 모양이구나!”하고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예~에! 류상진입니다!”하였더니 “여보세요! 혹시 이경수 사장님 전화 아닙니까?” “예~에! 아닙니다. 저는 류상진입니다!” “지금 전화 받는 곳이 어딥니까?” “전남 보성인데요!” “그래요? 반갑습니다! 저의 고향도 보성 득량입니다. 옛날에 제가 득량 초등학교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그만 두고 서울로 올라와서 땅 사업을 하면서 돈을 조금 벌었습니다!” “여보세요! 죄송합니다. 만 제가 무척 바쁜데다 지금 밖에서 비를 맞으며 전화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끊으려고 합니다. 미안합니다!”
“그래요? 지금 그쪽에는 비가 오나요?” “예!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다음주 월요일 날 전화를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월요일에도 전화하지 마십시오! 지금 사장님께서 옛날 득량 초등학교에서 교편 잡고 있다 그만 두고 서울에서 땅 장사해서 돈을 벌었는데 경기도 화성에 좋은 장소가 있으니 그쪽에 2억만 투자하면 2~3년 후에 10배 이상 차익이 있으니까 그쪽에 돈을 투자하라고 하시려는 것 아닙니까? 다른 사람도 많은데 그래도 고향 사람들 생각하고 싶다고! 아닌가요?” “아니? 어떻게 그걸 아십니까?”
“사장님께서 저에게 벌써 다섯 번째 전화하시는 겁니다. 그렇게 좋은 땅이 있으면 사장님께서 직접 투자하셔서 돈을 버실 일이지 얼굴도 모르는 저에게 왜? 인심을 쓰려고 하십니까? 저는 그럴 만 한 돈도 없고 또 땅 투기해서 돈 벌고 싶은 생각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제가 제일 미워하는 사람이 바로 땅 투기하고 남의 땅이나 뺏으려고 하는 사람들을 제일 미워합니다. 지난번에 저에게 전화하셨을 때도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왜? 또 전화하셨습니까? 앞으로는 절대 전화하지 마세요! 아시겠어요?” “...”‘탁!’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는 끊겼습니다.
“오늘은 왜? 기다리는 전화는 오지 않고 이상한 전화만 자꾸 걸려오지?”하는 순간 다시 전화벨이 울립니다. 그래서 약간 짜증난 목소리로 “예! 류상진입니다!”하였더니 경상도 말씨의 남자가 “여보세요! 집배원 아저씨 되십니까? 저 박경일이라는 사람입니다. 저의 집사람이 저에게 소포를 하나 보냈다던데 저를 찾지 못해 수고를 많이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지리를 잘 모릅니다. 죄송합니다. 만 저의 소포를 훼미리 마트 앞으로 가져다주실 수 없겠습니꺼?”
“아~예! 그러십니까? 그러면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지금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하고는 박경일 씨 소포를 빨간 오토바이에 싣고 얼른 훼미리 마트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랬더니 30대 후반의 젊은 남자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저씨! 죄송합니더! 제가 저쪽 콘도 건설현장에 발령 받아 온지 며칠 밖에 되지 않아서 에! 그라고 오늘 일이 또 이상하게 되려고 그랬는지 아침에 핸드폰 가지고 나간 다 것을 깜박 잊었지 뭡니꺼! 정말 수고가 많으셨습니더!” “지금 살고 계시는 집 주인의 이름은 모르십니까?”
“헛! 헛! 헛! 죄송합니더!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좀 알아놓는 긴데!”하고 제가 건네주는 소포를 받아 마트 앞 탁자 위에 놓더니 풀어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무~얼! 이런 것을 다 보냈을까?”하기에“아니? 소포에 무엇이 들었기에 저러는 것일까?” 하고 가만히 소포 상자 안을 들여다보았더니 소포 속에는 조그만 빼빼로 한 상자와 남자들의 속옷 그리고 편지 한통이 들어있는데 박경일 씨는 소포 안에 들어있는 편지를 읽으며 제가 알 수 없는 행복한 미소와 함께 눈가에 가늘게 눈물이 맺히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늘따라 바다는 푸르고 잔잔하기만 하였습니다. 바다 건너 보이는 곳이 전남 고흥군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