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맛있는 사탕
최고 맛있는 사탕
11월의 중순으로 접어들면서 온화한 기온(氣溫)으로 늘 우리 곁에 머물며 잔잔한 미소를 짓고 있던 가을을 밀어내고 어느 사이 겨울이 찾아왔는지 찬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쌀쌀한 날씨로 변해있습니다. 시골마을로 향하는 도로의 모퉁이에서 지난 가을 하얗고 곱게 손질한 머리를 불어오는 바람에 맡긴 채 오가는 길손에게 이리저리 하얀 손을 흔들어주던 억새는 어젯밤 지나가는 겨울바람에게 머리를 모두 쥐어뜯겼는지 곱고 예쁜 머리는 남아있지 않고 머리를 풀어헤친 미친 여자처럼 산발(散髮)을 하기도 하고
*전남 보성군 회천면에 있는 쪽파 밭이랍니다.
앙상한 뼈대만 남아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는데 날씨가 쌀쌀해지자마자 겨울 김장철이 다가와서인지 시골들판 여기저기에서는 오늘도 사람들이 모여 쪽파 수확이 한창이며 수확한 쪽파는 경운기에 실려 가기도 하고 트럭에 실려 도시의 공판장을 향하여 달려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멀리 보이는 산에는 아직도 울긋불긋한 단풍은 찾아볼 수 없고 이제 조금씩 노란색과 붉은색으로 변해갈 뿐입니다. “바다를 둘러싼 서남해안의 따뜻한 기후 때문에 나무들이 계절을 잊어버린 것일까?”하는 생각을 하며
저는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우편물을 가득 싣고 행복을 배달하려고 달려온 곳은 전남 보성 회천면 벽교리 명교마을입니다. 명교 아랫마을에서 ‘명교리 화순 댁 귀하’라는 편지의 주인을 찾으려고 사람을 만나려고 하였으나 마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상하다! 왜? 사람들이 아무도 보이지 않지?”하는 생각을 하며 이리저리 “혹시 마을사람이 있나?” 하다 결국은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윗마을로 향하는데 윗마을로 향하는 길가의 배추 밭에서 일을 하고 계시던 할머니 한분께서
*가까운 곳의 산에는 이제 가을 옷을 갈아 입고 있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아니? 아저씨! 편지 배달은 안하고 어째 동네를 뺑뺑(빙빙) 돌아다녀?”하십니다. “할머니! 혹시 화순 댁이라고 아시겠어요? 마을에서 화순 댁을 찾으려는데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네요!” “화순 떡(댁)? 화순 떡은 회관 뒤에서 혼자 살고 있는 노인 안 있어? 그 노인이 화순 떡이여!” “그럼 김영선 할머니 말씀인가요? 오늘 소포도 왔던데!” “맞어! 그 노인이 김영선이라고 그라드만!” “그런데 할머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어디를 가셨을까요? 마을에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네요!”
“아따~아! 날이 이라고 추운디 누가 돌아 다니것어? 회관으로 가봐!”하십니다. “회관에 사람들이 모여 있을까요?” “금메! 노인들이 갈 데는 거기 밖에 더 있것어? 그랑께 그리 가봐!”하십니다. “예! 할머니 고맙습니다.”하고 저는 마을의 회관으로 향하였는데 회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고 회관 바로 뒤 양지쪽에 할머니 서너 분이 의자에 앉아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다 저를 보시더니 “아저씨! 이리 잔 와봐!”하십니다. “할머니! 화순 댁이 누구세요?” “나여! 내가 화순 떡인디 뭔 반가운 것이 왔어?”
*쪽파 수확이 한창이네요.
“엊그제 저쪽 아랫집에서 결혼식 있었지요? 그 댁에서 감사장을 보냈네요! 그런데 할머니 성함이 김영선 씨 맞지요?” “잉! 내가 김영선인디 왜? 그래?” “서울서 소포가 왔네요.” “우메! 그랬어? 우리 며느리가 어저께 날씨가 추운께 나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고 옷 사서 보낸다드만 그새 와 부렇는 갑네!” “그랬나 봐요!”그러자 옆에 앉아 계신 할머니께서 “아니? 아제 어째 누구는 선물주고 나는 안주고 그래?”하십니다. “할머니는 다음에 드릴게요. 오늘 선물이 너무 많아 오토바이에 다 못 실었어요!”
“그랬어? 그라문 다음에 나도 선물 갖다 줘야 되야 잉! 알았제?” “예! 알았어요!”하는데 방금 저를 부르셨던 할머니께서 “근디 아저씨! 이것이 뭣이여? 이것이 우리 집 토방에 떨어져 있든디 이것이 뭣인가 몰르것네!”하며 내 놓으신 것은 전기요금 고지서입니다. “이것은 이번 달 전기요금 고지서인데요. 이번 달 전기요금 내셨어요?” “몰라! 낸 것도 같고 안 낸 것도 같고!” “고지서가 그대로 붙어있는 것으로 봐서 아직 전기요금을 내지 않으셨나 봐요!” “오~오! 그래~에! 그라문 전기세가 을마나 나왔어?”
*가을의 옷을 완전히 갈아입은 산은 어떤 모습일까요?
“8천 2백 원이 나왔네요!” “그라문 내가 지금 돈이 없는디 어짜까? 얼렁 우리 집이 가서 전기세 갖고 올랑께 아저씨가 수고스럽지만 우체국에 갖고 가서 좀 바쳐줘 잉! 알았제! 그라문 여가 쪼금 기달리고 있어! 잉!”하시며 할머니께서 바로 앞에 있는 집으로 향하시자 다른 할머니께서 “아저씨! 오토바이는 거기 세워 놓고 이리와 좀 앉아 봐! 내가 재미있는 이야기 해주께!”하시며 저에게 의자에 앉을 것을 권하십니다. “할머니!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요?”하였더니 “그라지 말고 이리 와서 잔 앉아보랑께!
왜? 내가 늙은이라고 옆에 앉기가 싫어?” “아니요! 할머니는 지금도 읍내에 나가시면 예쁜 아가씨라고 하겠는데요!” “아이고! 이쁜 아가씨들이 다 늙어 죽었는 갑다! 쭈굴 쭈굴한 늙은이 보고 이쁜 아가씨라고 그러게!”하시며 빙긋이 웃으십니다. “그런데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시려고요?”하며 할머니께서 권하는 의자에 앉았는데 “내가 육형제 중 제일 맏며느리여! 그란디 옛날 우리 셋째 시아제(시동생)에게 우체부를 해보라고 그래서 저쪽 회령에 있는 동네로 편지 배달을 시켰는 갑드만 그란디 한 며칠 해보고는
*마을에 있는 쪽파 밭인데 밭 가운데 물을 뿌려주는 스프링 쿨러가 장치되어 있었습니다.
‘비 오문 비 맞고 눈 오문 눈 맞고 날씨가 춥고 그랑께 도저히 못하것소!’그라고는 그만 둬 부렇어! 그래서 그 뒤로 우체부 아저씨들을 보문 그냥 안보이고 참말로 장하게 보이드랑께! 그란디 그 뒤로 우리 영감이 동생들 취직을 시킬라고 애를 써도 자기들이 안한다고 그랑께 취직을 못 시키고 말었어!”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집배원하시다 그만 두신 분은 지금 뭐하시는데요?” “할 것이 뭣이 있것어? 그냥 촌에서 농사나 짓고 있제! 그란디 아저씨는 비 오고 눈이나 와 쌓고 바람불고 춥고 그래도 괜찮해?”
“할머니! 비 오는 날보다는 비 오지 않는 날이 훨씬 많고 눈 오는 날보다는 눈 오지 않는 날이 훨씬 많거든요! 그리고 바람 부는 날 보다는 바람불지 않는 날이 훨씬 많지 않아요! 그런데 그것이 힘이 든다고 하면 누가 집배원 하겠어요? 농사짓는 분들은 가만히 앉아있으면 농사가 지어지나요? 힘들게 논이나 밭에 나가 일을 해야만 가을이면 추수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봄에 논에 모만 심어놓으면 농사가 지어진답니까? 때 맞춰 농약 해야지 거름 줘야지 물꼬 보러 다녀야지 그런 일에 비하면 집배원은 아주 편한 직업이에요!”
*오가는 길손에게 하얀 손을 흔들어 주던 억새는 어느덧 호호백발 할머니로 변해버렸습니다.
“금메! 그라고 생각을 해야 쓴것인디 으째 우리 시아제(시동생)는 그런 생각을 못하는지 모르겠어!”하시며 조그만 지갑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시더니 저를 보고 “아~아! 하고 입 벌려!”하시는 겁니다. “아니? 무엇을 하려고 입을 벌리라고 하세요?” “금메 입 벌려 봐~아! 내가 맛있는 것 주껏잉께!” “할머니! 무엇을 주려고 그러시는 거예요?” “왜? 늙은이가 주는 것이라 더러운 것 줄까봐 그래?” “아니요!”하고 “아~아!”하였더니 할머니께서 저의 입속에 넣어주신 것은 조그만 알사탕 한 알이었습니다.
“할머니 귀한 알사탕을 저를 주시면 어떻게 해요? 그냥 두었다 할머니 잡수시지!” “아따~아! 걱정도 말어! 우리 집에 가면 나 묵을 사탕은 또 있어! 아저씨가 이뻐서 내가 한개 준 것이여 그란디 사탕은 맛있어?” “예! 제가 지금까지 먹어본 사탕 중 최고 맛있는 사탕이네요!” “그라문 한개 더 주까?” “아니요! 제가 할머니에게 사탕을 사드려야지 할머니 사탕을 뺏어먹으면 되겠어요?” “별 소리를 다하네! 늙은이는 젊은 사람들한테 사탕 주문 안되간디!”하시며 할머니께서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계셨습니다.
*여기서도 쪽파 수확이 한창이네요! 저 쪽파들은 어느 도시로 팔려 나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