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없는 소포
필요 없는 소포(?)
지난 봄 일찍부터 길가에 길게 늘어서서 하얗고 화사한 예쁜 꽃을 피워놓고 지나가는 길손에게 봄이 왔음을 알려주던 왕 벚꽃나무가 어느새 입고 있던 녹색 옷을 모두 벗어버리고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무척 추웠는지 오늘따라 오들오들 떨고 있습니다. 은백색 예쁜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넘기고 지나가는 바람이 시키는 대로 이리저리 손을 흔들어 대던 길가의 억새꽃들은 어젯밤 바람과 심하게 다투었는지 오늘따라 머리를 모두 풀어헤치고 하늘을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가을이 깊어 감을 원망하고 있는 듯 보이고 있는데
들판을 가로질러 멀리 보이는 산에는 이제 조금씩 가을이 깊어 감을 알리려는 듯 노란색 빨강색 단풍이 하나둘 눈에 띠기 시작합니다. 저는 오늘도 행복을 배달하기 위하여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우편물을 가득 싣고 우체국을 출발하여 천천히 달려온 곳은 전남 보성 회천면 서당리 연동마을입니다. 연동마을에서 우편물 배달이 거의 끝나갈 무렵 영감님 한분께서 “어이! 이리 좀 와보소 내가 자네한테 부탁할 것이 하나있네!”하시며 저를 부르십니다. “예! 어르신 무엇을 부탁하시려고요?”
“다른 것이 아니고 우리 딸이 뭣을 보내주라고 그래서 자네한테 심부름을 좀 시키려고 하는데 주소를 자네가 써주면 안되겠는가?”하셔서 “그런 심부름은 얼마든지 해드려야지요!”하고 빨간 오토바이를 잠시 세워놓고 영감님 댁으로 들어갔는데 “우리 딸이 지난번에 내 핸드폰을 다른 것으로 바꿔준다고 보내라고 했는디 내가 깜박 잊어 부렇단 말이시 그러니까 자네가 우리 딸집 주소를 좀 써서 보내주면 어떻겠는가?” 하셔서 “어르신 따님의 주소는 어디 있어요?”하였더니 조그만 메모지 한 장을 내주시면서
“이것이 우리 딸 주소여! 그란디 내가 우리 딸이 불러준 대로 적었는디 잘 적었는가 모르것네!”하십니다. 그런데 영감님께서 저에게 건네주신 주소를 보니 무언가 주소가 잘못 적어진 느낌입니다. “어르신! 이런 주소는 없는데 혹시 어르신께서 잘못 적으신 것 아닐까요?” “글쎄! 내가 우리 딸이 불러 준대로 적었는디!” “제가 알기로는 경기도 아냥시 받달동이라는 곳은 없거든요! 그리고 번지도 분명하지 않는 것 같은데 혹시 따님 전화번호 알고 계세요? 제가 따님께 전화를 한번 해 볼게요!”
하였더니 학생들이 사용하는 공책에 커다란 글씨로 적어진 전화번호를 내놓으십니다. 그래서 저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신호가 가고 상대편에서 “여보세요!”하는 소리가 들려 “여보세요!”하고 제가 막 말을 하는 순간 전화가 갑자기 끊어지고 맙니다. “어! 이상하다? 왜 전화가 끊어지지?”하고 다시 전화를 걸었는데 상대편에서 전화를 받자마자 다시 끊어버립니다. “아니! 왜? 전화를 받자마자 끊어버리지? 전화번호를 잘못 누른 것도 아닌데 이상하다?”하고서
“어르신 이상하게 따님께서 전화를 받자마자 끓어버리네요! 어르신 전화기로 다시 따님께 전화를 해보시겠어요?”하였더니 “그래~에? 이상하네! 그럴 리가 없는디!”하시며 영감님의 전화로 번호를 누르십니다. 그리고 잠시 후 “아가! 나다! 아니 그란디 왜? 우체부 양반이 전화를 하문 받지도 않고 끊어 버리냐? 응? 뭐라고 모른 사람이어서 그랬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누구냐고 한번 물어나 보고 전화를 끊던지 말든지 하지 그래서 쓰것냐? 그나저나 니 주소가 잘못된 것 같다고 우체부 양반이 그랑께 전화를 바꿔 줄 것 잉께
주소를 다시 불러줘 봐라 알았지?”하시며 전화를 저에게 바꿔주십니다. “여보세요! 저 우체국 집배원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어르신께서 주소를 잘못알고 계신 것 같아 확인을 해보려고 전화를 하였는데 전화를 끊어버리시는 바람에 확인을 하지 못했네요!” 하였더니 “아저씨! 죄송합니다. 저의 전화에 생전 모르는 사람 전화번호가 뜨는데다 전화를 받자마자 ‘여보세요!’하고 컬컬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와서 저도 모르게 그만 전화를 끊어버렸어요! 정말 미안합니다!”하는 겁니다.
“예~에! 그러셨어요? 그런데 지금 어르신께서 저에게 주신 따님의 주소가 잘못된 것 같거든요! 다시 주소를 불러주시겠습니까?” 하였더니 “경기도 안양시 박달동”하며 천천히 주소를 불러주는 것입니다. “어르신! 따님의 주소가 경기도 안양시 박달동이라고 하네요!” “그래~에? 그럼 내가 주소를 잘못 받아 적은 모양이구만!”하십니다. 그래서 조그만 박스에 휴대전화기를 넣고 주소를 쓰고 있는데 밖에서 “여그 우체부 양반 안 계셔?”하며 누군가 저를 찾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예! 저 여기 있는데 왜? 그러세요?”하고
얼른 밖으로 나갔더니 영감님 댁의 건너편 집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께서 “혹시 우리 딸한테서 소포 안 왔으까?”하고 물으십니다. “할머니 댁에 소포 두개가 왔어요! 제가 금방 가져다 드릴께 할머니 댁 대문이나 열어놓으세요! 아시겠지요?”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매우 흐뭇하다는 얼굴로 “그래~에? 그라문 얼렁 문 열어 놔야제!”하시며 얼른 할머니 댁으로 달려가십니다. 저는 영감님께서 저에게 따님에게 보내달라고 맡기신 휴대전화기가 들어있는 소포를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넣어두고 할머니 댁으로 달려갔더니 할머니께서는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저를 기다리고 계시는 중입니다. “할머니! 소포가 두개나 온 것을 보니 따님이 아주 좋은 선물을 보내셨나 봐요?”하며 적재함에서 A4 용지 박스 크기의 소포 두개를 꺼내 할머니께 건네 드렸더니 할머니께서는 언제 준비하셨는지 조그만 과도로 소포박스에 붙어있는 테이프를 잘라내고 그 속에 들어있는 옷을 꺼내 입어보시더니 “아니 이것이 옷을 잔 넉넉한 것을 사 보내라고 했드만 왜? 이라고 작은 것을 사 보냈으까?” “할머니! 새 옷을 입으니까 아주 예쁜데 옷이 마음에 들지 않으세요?”하고 물었더니
“아니! 내가 품이(가슴) 남보다 커서 옷을 넉넉한 것으로 사서 보내라고 했는디 이번에도 옷을 이라고 작은 것을 보냈네!”하시며 매우 실망한 표정이십니다. “할머니! 따님에게 전화하셔서 옷이 작으니까 큰 걸로 바꿔 보내달라고 하시면 되지요”하였더니 “대차 그라문 쓰것네 잉!”하시더니 이번에는 다른 소포를 열어보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아이고! 미친 것! 뭣 할라고 이런 것을 사서 보냈으까? 아니 이런 것은 여기도 많은데 뭐하러 이런 것을 사 보냈어?”하십니다. “할머니! 왜? 소포를 받아놓고 화를 내고 그러세요?
뭐가 잘못되었어요?”하였더니 “아제! 이리와 이것 좀 보씨요!” 하셔서 소포에 담겨있는 내용물을 보았는데 소포 속에는 할머니께서 심심할 때마다 잡수실 수 있는 사탕이며 젤리 그리고 과자 껌도 들어있고 소시지와 다른 비닐봉지에는 멸치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자꾸 “아니 이 미친 것이 뭐 하러 이런 것을 보내 금메~에!”하시며 야단이십니다. “할머니! 속으로는 좋으면서도 그러시는 거지요?”하였더니 “아니여! 이런 것은 안 보내줘도 된디 뭣 하러 이런 것을 보내!”하시기에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포 한 개를 들어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다시 실었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께서 “아니 아제! 왜 소포를 다시 오토바이에 실어?”하고 물으십니다. “할머니께서 자꾸 소포가 필요 없다고 하시니까 다시 따님에게 보내버리려고요!”하였더니 갑자기 할머니의 안색이 바뀌어 지면서 “아니여! 그것이 아니여!”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 연말연시 기간이라 너무 바쁘답니다. 그래서 이번 주에는 글을 쓰지 못하고 지난 11월에 써 놓은 글을 대신 올려놓았습니다. 여러분들의 많은 이해가 있으시면 고맙겠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
*지난 12월 17일 촬영한 보성 대한다업의 녹차밭 설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