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사랑
어제 밤 많은 비가 내리더니 아침에는 밝은 햇살이 비추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날씨는 차가
운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서 다시 겨울로 돌아간 듯한 느낌입니다. 저는 오늘도 우편물을 배
달하러 산밑으로 이어진 조그만 도로를 이용하여 시골마을을 향하여 오토바이를 달려가고
있는데 어른의 한 아름 쯤 되는 커다란 상수리나무 밑에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고 쌓여있는
낙엽 위에 진한 황색바탕에 알록달록한 것이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입니다, 그래
서 "저게 무엇일까?" 하고서 오토바이를 잠시 세우자
조그만 다람쥐 한 마리가 먹이를 찾고 있다 저를 보더니 쏜살같이 숲 속으로 달아납니다.
"다람쥐 야! 도망가지 않아도 내가 너를 잡지 않을텐데 나를 보고 그렇게 쏜살같이 도망을
가니?" 하면서 다람쥐가 도망간 쪽을 바라보는데 무엇인가 숲 사이에 빨갛고 고운 빛깔이
눈에 뜨입니다. 그래서 자세히 바라보았더니 어느새 여러 그루의 진달래꽃이 수줍은 듯 붉
은색의 예쁜 꽃을 피우고는 저를 바라보고 미소를 짓는 듯 보입니다. 평소에는 길옆을 그저
진달래가 있는지 없는지 무심히 지나쳤는데 오늘은 다람쥐의 안내로 진달래꽃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아름답게 피어있는 진달래꽃을 보면서 문득 소월 김정식 님의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으로 시작되는 진달래꽃이라는 시가 생각이 나서 잠시 시를 읊어보다가 진달래꽃을
뒤로하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열심히 우편물을 배달하기도 하고 시골 노인의 안부를 묻
기도하면서 다니다 보니 어느덧 보성읍 우산리 택촌 마을을 지나서 주촌 마을로 향하고 있
습니다. 그런데 택촌 마을에서 주촌 마을로 이어지는 도로의 중간만큼의 오른쪽에 외현 마
을에 사시는 할머니 한 분이 길가에 마치 엎드린 듯이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계십니다.
그래서 "할머니가 어디 편찮으신 것일까?" 하고서는 오토바이를 잠시 세워놓고 할머니 곁으
로 다가가서 "할머니! 어디가 편찮으세요?" 하고 물었더니 할머니께서는 검은 비닐봉지 두
개를 손가락으로 가르치시며 "아이고 저것을 들고 왔드만 허리가 뿌러져 불라고 아프네!"
하십니다. "할머니! 저게 무엇인데요?" 하는 저의 물음에 할머니께서는 "우리 집 영감이 밭
에 일한다고 그래서 새껏(간식)을 잔 사갖고 간디 첨에는 한나도 안무겁드만 와따 여그까지
올랑께 송신 나게도 무겁네!" 하십니다.
그래서 비닐봉지를 속을 들여다보니 비닐봉지 하나에는 1.8ℓ페트병에 담긴 음료수 2병과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빵 몇 개 그리고 다른 비닐봉지에는 간장과 식용유 조미료가 들어있는
겁니다. "할머니 그럼 이것을 들고 오시지 마시고 마트에서 그냥 배달해 달라고 하시지 그
랬어요?" 하는 저의 물음에 할머니께서는 "와따 그 째깐한 것을 배달해주라고 그라문 쓰간
디! 그 사람들도 바쁘껏인디 이라고 째깐한 것을 배달해주라고 그라문 욕을 을마나 하껏이
여 그래서 그냥 내가 들고 왔어!" 하십니다.
"할머니 그럼 제가 이것 할머니 집까지 배달해 드릴게요! 그 대신 배달료는 많이 주셔야 되
요!"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와따 그래 내가 배달료 많이 주께 그란디 을마를 줘야된고?"
하십니다. "많이 주시지 말고 한 이 만원 만 주세요!"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눈을 동그랗
게 뜨시고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으~응 이 만원이나 주라고 아이고! 냅둬 그냥 내가 갖고
갈랑께! 이것 다 폴아도 이 만원도 안 되꺼인디" 하십니다. "할머니 그럼 오늘은 그냥 배달
해 드릴 테니까 다음에는 배달료 많이 주셔야 되요!" 하였더니
그때서야 할머니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워따 그래! 안 그래도 이삔 사람이 으째이라고 이
삔 짓거리만 한가 몰것네~에" 하십니다. 저는 할머니의 비닐봉지 두 개를 오토바이의 적재
함에 싣고 할머니 댁으로 향하면서 잠시 생각을 해 봅니다. 밭에서 일을 하시는 할아버지를
드리기 위하여 왕복 3km 나 되는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허리가 부러질 것 같은 아픔을 참아
가며 걸어서 할아버지께서 드실 간식거리를 사오시는 할머니의 사랑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
름다운 사랑일 것이라는 생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