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무서운 할머니

큰가방 2006. 3. 5. 09:50
무서운 할머니


“어이! 어지께(어제) 미안하시 내가 술이 취해서 무단히 자네한테 시비를 걸었는디 자네가 이해하소! 나도 늙어 논께 술을 쪼그만 마셔도 금방 취하고 헛소리를 하게 되더란 마시 그랑께 자네가 이해허소 잉!”하고 오늘도 우편물을 배달하기 위하여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우체국 문을 나서려는 순간 저에게 다가와 사과를 하시는 분은 어제 제가 우편물을 배달하면서 만났던 전남 보성 회천면 율포리 장목마을에서 살고 계시는 영감님입니다. 요즘 계속해서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다 어제는 갑자기 날씨가 차가워지는 바람에


두툼한 외투를 다시 꺼내 입고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부지런히 우편물을 배달하다 장목 마을 가게 옆 벽에 붙어 언제나 저를 기다리고 있는 빨간 우체통에 “누군가 혹시 편지를 넣지는 않았을까?”하는 기대감으로 우체통 문을 열었으나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아 “오늘도 우편물은 들어있지 않구나!”하고 우체통 문을 닫는 순간 “어이! 나 좀 보고가!”하고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 돌아보았더니 영감님 한분께서 대낮인데도 약주를 한잔하셨는지 조금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술 냄새를 풍기면서 제 옆으로 오시더니


“자네 으째(왜) 일을 그 모양으로 하는가?” “아니 무슨 일인데요?” “내가 오늘 보험을 낼라고 농협을 갔는디 농협에서 안 받아줘! 그러면서 450원을 더 내라고 그래! 자네들이 배달을 늦게 해줘서 내가 450원 손해 봤어! 그런데 이것이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어르신 무슨 말씀이세요? 건강보험료 납기일은 매월 10일이고 오늘이 3일인데 왜? 450원을 더 내셨다는 말씀이세요?” “아! 내가 자네들 때문에 450원 손해를 봤다문 본지 알제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어르신 건강보험료가 아닌 다른 보험료를 내신 것 아닙니까?”


하는 순간 우연히 지나가던 영감님 한분께서 “자네들 뭣 때문에 싸우고 야단인가?” “내가 금방 조합에서 보험을 낼라고 그랬는디 450원을 더 주라고 안 받아줘  그란디 그래사 쓰것는가?” “어르신! 무슨 공과금을 농협에 납부하셨는지 알아야 저도 대답을 해 드릴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다짜고짜 언성만 높이시면 무슨 말인지 제가 알아들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농협에 450원 더 내고 납부하셨던 공과금 영수증 지금 가지고 계세요?” “없어! 화가 나서 오다가 찢어버렸어!”하시자 옆에 계신 영감님께서


“이 사람아! 술을 한잔 자셨으면 집에 들어가 잠이나 자게! 하필 자네보다 한참 나이도 어린 바쁜 집배원을 붙들고 시비를 걸면 되겠는가? 그리고 의료보험은 자동납부를 해 놓으면 될게 아닌가? 그러면 농협에 갈 필요도 없고 신경 쓸 필요도 없이 않은가?”하시자마자 “이런 #$% 사람이 있는가? 내가 돈이 없는디 어떻게 자동납부를 해 엉? 나는 자동납부 할지 몰라서 안하는 줄 알아?”하시며 갑자기 심한 욕설과 함께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 시작하십니다. “어르시~인! 점잖은 분이 왜? 욕을 하고 그러세요?


좋은 말로 하시면 서로가 좋지 않습니까?”하는 저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없이 산다고 느그들이 나를 쉽게 보고 말을 함부로 하지야? 내가 손해를 봤다문 본지 알제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많기는!”하고 소리를 지르시자“이 사람아! 왜? 소리는 지르고 야단이여? 조용조용 말로하제!” “내가 지금 조용조용 말로하게 됐어? 엉? 내가 지금 조용하게 말을 하게 됐냐고 내가 450원 손해를 봤다문 본지 알제 나보고만 나쁘다고 그라문 되것어? 엉?” “자네에게 나쁘다고 한 사람이 어디 있는가?


괜히 자네 혼자 화를 내고 야단이었지! 안 그런가?”하시며 지금까지 제 옆에서 편(?)을 들어주던 영감님께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시더니 얼른 집으로 가 버리십니다. “어? 영감님께서 꽁무니를 빼면 안 되는데! 조금 곁에 계시지 않고! 그럼 이때 나는 어떻게 하지? 나도 슬그머니 도망을 가?”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자네는 어떻게 생각한가? 어떻게 생각해? 엉!”하시며 이번에는 화살을 저에게 돌리십니다. “어르신! 건강보험료 납기일은 매월10일이거든요.


그러니까 건강보험료는 아닌 것 같고 그럼 혹시 전기요금이던가요?” “아니여! 전기요금은 아니여!” “그럼 무엇을 납부하셨어요? 혹시 전화요금이던가요?” “전화요금도 아니고 보험이랑께 보험!” “어르시~인! 시골에서 매월 납부하는 것은 전기, 전화, 건강보험, 그리고 국민연금 밖에 더 있습니까? 그런데 어르신은 이제 국민연금은 더 이상 납부하지 않을 것 같고 그러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무엇을 내셨다는 말씀이세요?” “아! 글쎄 보험이란께 보험 그란디 450원을 더 내라고 안 받아줘!”


“어르신! 그러면 제가 450원 변상해 드릴게요! 그러면 되겠어요?” “뭣이라고 450원 변상해 준다고 그랑께 자네들이 잘못을 하기는 했구만?” “예!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저희들이 잘못해서 어르신이 450원 손해를 보셨다면 저희들이 변상해 드려야지요! 그러면 되겠어요?” “되기는 무엇이 되야? 내 지금 우체국에 쫓아가서 자네 모가지를 자르라고 할 판이여! 알았어?” “제 목을 잘라요? 어떻게 자르실 건데요?” “우체국장에게 쫓아가서 모가지를 자르라고 하면 되제 어째!”


“그런데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목을 자르겠어요?” “아니 어쩌고 어째? 지금 나하고 장난을 하냐? 엉?” “어르신! 지금 약주가 많이 취하셨으니까 우선 집에 가셔서 주무시고 내일 우체국에 오셔요! 제 목을 자르더라도 지금은 어떻게 우체국에 가시기나 하겠어요?” “걱정도 말어! 나는 한번 한다면 하는 사람이여! 알았어?” “아이고! 나는 큰일 났다! 드디어 내 목이 잘리게 생겼구나!”하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뒤에서“에! 말이요! 지금 여그서(여기서) 뭣하고 있소? 잉? 아이고!


술이 취했으문 얼른 집에 가서 잠이나 자라고 그라고 말을 해도 소용이 없구만! 오늘은 또 하필 바쁜 우체부 아제한테 시비를 걸고 야단이요? 잉? 나이를 묵었으문 나이 값을 해야제~에! 나이는 어디로 묵었는가 몰것어! 아! 얼른 집에 가란 말이요~오! 안 갈 것이요?”하는 할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지자마자 지금까지 서슬이 시퍼렇던 영감님 목소리가 갑자기 아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하더니 “알았어! 알아! 지금 집에 가문 될 것 아니여!”하시며 할머니의 눈치를 한번 슬쩍 살피더니 슬금슬금 집으로 향하십니다.


“아제! 미안하요! 잉! 우리 영감은 술만 마시문 으째 누구하고 시비를 걸어 싼가 몰르것어! 인자 나이도 많은께 나이 값을 해야 쓰껏인디 걱정이란 말이요!”하시는 할머니께 “괜찮아요! 할머니! 사람이 술에 취하면 저럴 수도 있지요!”하고 다음 마을로 향하면서  “아이고!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그런데 남자는 나이를 먹으면 정말 공처가가 되는 것일까? 영감님께서 지금까지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시다 왜? 할머니 말 한마디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집으로 쫓겨 가는 것일까?”


*전남 보성 회천면 율포리 해변 둑에서 우연히 만난 새입니다. 그런데 새의 이름을 알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