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도 웰빙 바람(?)
태풍 민들레가 북상하기 때문에 그 영향력으로 많은 비가 내릴 것이 예상된다는 일기예보
때문인지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제가 빨간 오토바이에 우편물을 싣고 우체국 문
을 나설 무렵에는 빗줄기가 점차 가늘어지기 시작하면서 비가 그치더니 구름 사이로 희미한
햇살이 비추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이내 삶는 듯한 한 무더위를 느끼게 시작합니다. 오늘
도 천천히 오토바이를 타고서 보성읍 동윤동에서 용문리 쪽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는데 어디
선가 검정 색 옷을 입은 물잠자리 한 마리가 저의 곁으로 날아오더니
다시 도랑물이 흐르는 개울가 쪽으로 날아갑니다. 그래서 문득 바라본 개울가는 오늘도 잡
초만 무성히 우거져 있고 여전히 더러운 하천 물 만 흐르고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를 다
니던 시절! 그 시절만 해도 과외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여름방학 만 했다하면 친구들 몇
명과 읍내에서 약 1.5km 쯤 떨어진 이곳까지 걸어와서는 멱도 감고 물장구도 치고 또 심심
하면 고기를 잡는다며 대 바구니를 물가 한쪽에 대고서는 여기저기 발로 통통거리다 대 바
구니를 찢어먹는 바람에 저의 어머니에게 혼이 나기도 하였는데
이제는 어린 시절 함께 놀았던 친구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만나기도 힘이 들고 그때는 어
린이 가슴 정도 깊이의 물이 굉장히 맑으면서 항상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이제는 피
라미 한 마리도 살 수 없는 더러운 하천 물 만 흐르는 것을 보니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저
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저는 아스라이 멀어져 버린 옛일을 생각하면서 도착한 곳은 보성
읍 용문리 성두 마을입니다. 성두 마을의 첫 번째 조그만 농로 길을 따라 막 커브를 돌아섰
는데 할머니 한 분께서 잎이 길다란 풀처럼 생긴 것을 뽑아서 정부미 포대에 싸서 들고 오
십니다.
그래서 “아니! 할머니께서 이렇게 날씨가 더운데 풀을 뭐 하러 뽑아오셨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저 무심히 “할머니! 안녕하세요?” 하고서는 골목길로 들어섭니다. 그리고 잠시 후
골목에서 우편물을 배달하고 나오는데 할머니께서는 방금 전에 뽑아온 풀처럼 생긴 것을 도
로 아래쪽에 있는 길다란 밭에 심고 계십니다. 그래서 할머니께 “할머니! 날씨도 더운데 밭
에 뭐 하러 풀을 그렇게 심고 계세요?” 하고 물었더니 할머니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더니
“이~잉! 요거엇! 요것은 풀이 아니고 지장(기장)이여!” 하십니다.
“할머니! 그런데 그게 정말 기장이 맞아요?” 하고 물었더니 할머니께서는 “아니! 기장도 모
르는 사람이 있는가?” 하는 얼굴로 “이~잉! 이것이 참말로 지장이여! 그란디 으째서 그래?”
하십니다. “할머니 그런데 왜? 기장을 옮겨 심으세요? 날씨도 이렇게 더운데!” 하고 물었더
니 “으~응! 우리 애기들이 지장이 몸에 좋다고 올해는 지장을 좀 심어보라고 그라데 그란디
우리 집이는 지장 종자가 읍어서 누구한테 한 주먹이나 얻어다가 쩌그다가 심었는디 금메
무지하게 배게 나부렇당께
그란디 너머나 배게 나부러서 안되것기레 이리 쪼금 앵겨서 심어 볼라고 그란디 날씨가 무
쟈게도 덥네~에!“ 하시며 연신 이마에 땀을 뚝뚝 흘리십니다. ”할머니! 그럼 자녀분들이 기
장을 심으라고 하신거에요?“ 하였더니 ”금메! 애기들이 그라 드랑께 요새는 지장이 몸에 좋
다고 난리라 그라데 그래서 나도 쪼그만 심어 볼라고 그랬는디 그것도 영 성가시구만 그래
도 애기들이 필요하다고 그랑께 그나저나 심어는 봐야제!“ 하시며 연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가며 열심히 밭에 기장을 심고 계십니다.
요즘 갑자기 웰빙이라는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저는 웰빙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는 정
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할머니에게 기장이 필요하다고 하신 할머니의 자녀분들은 저의
생각에는 요즘 말하는 웰빙이라는 바람을 타고 옛부터 전해오는 우리의 오곡(五穀)중의 하
나인 기장이 필요해서 할머니께 부탁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자식을 위해서
라면 무더운 날씨에 흐르는 땀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기장을 옮겨 심고 계시는 할머니
의 건강을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