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이야기

우편수취함 유감

큰가방 2004. 7. 14. 13:58

우편수취함 유감
2000/03/22

 

봄날입니다.
양지쪽에 돋아나는 이름 모를 파란 싹을 보면서 하얗게 피어있는 매화꽃을 보면서 어느새
향기로운 봄의 냄새가 나는 듯 합니다. 지나간 겨울의 옷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봄을 맞이하
는 봄나들이 라도 갈까 합니다.

 

"오랜만입니다! 잘 계셨습니까?" 시골마을의 어른들은 언제 만나도 정말 반갑습니다.
"응 정말 오랜만일세 으째 그 동안 잘 있었는가? 가족도 다 무고하시고?"
"예! 이제는 바쁘시겠네요?"
"응! 농사철이니 당연히 바빠지겟제! 그런디 어야! 저 통(우편수취함)좀 뜯어 가불소!"
"아니 왜요?"
“내가 저놈의 통 땀새 실수를 여러번 했단마시!"
"아니! 무슨 실수를 하셨어요?"

"아니 편지를 넣어도 잘 뵈이도 않고 그렁께 내가 잘 안 들어다보문 이따금 실수를 한단 마
시 내가 돈주란 소리는 알할랑께 그냥 저 통 좀 뜯어가 불소"

"아니 통 속이 잘 안보이고 그러시면 통속에 돌이나 스티로폴을 넣어두시면 잘 보일텐데요!
그걸 뜯어 가면 안되지요 돌(石) 어디 넓적한 것 없나요?" 
"돌은 뭣하게 잉? 돌은 저기 많이 안 있는가?“
"이렇게 넓적한 돌을 넣어두면 잘 보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날마다 수취함을 들여다보는 습
관을 들이시면 실수하실 일도 없지 안습니까?"

 

"어야 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자네들 얼굴을 못 보것어서 그런단 마시 이라고 통을 붙여놓
은 뒤로는 통 우체부들 얼굴을 못 보것단 마시 옛날에는 그래도 우체부들 하고 같이 안거서
막걸리도 한 사발씩 했었는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 뒤로는 술도 같이 못 마시제 그 놈의
통 있응께 자네들 얼굴도 통 못 보제 그래서 내가 이 통을 뜯어내문 으짤랑가 생각중이시!"

"예 잘 알았습니다. 앞으로는 어르신에게 자주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왕에 돈을
들여서 달아 놓으신 우편수취함을 뜯어내면 되겠습니까 그냥 그대로 두십시오 그리고 앞으
로는 정말 어르신께 자주 들리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사람은 사람 없이는 살수가 없다고 합니다.

우편 수취함이 보급된 뒤부터는 이따금 위와 같은 유사한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아무리 세상이 맑아지고 각박해지는 사회라고 하지만 그러나 아직도 시골마을에는 오가는
정이 있고 그래도 사람 살맛 나는 사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집배원 얼굴을 못 보기 때문에 우편 수취함을 뜯어내려는 어르신의 뜻 잘 알았습니다! 앞
으로 자주 들러서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누면서 안부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어르신 언제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