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져버린 단감
쏟아져버린 단감
지난주 일요일 그동안 오랜 가을 가뭄 때문에 속을 태우고 있던 농민들의 마음을 알고 있었는지 메말랐던 대지위에 촉촉이 단비가 내리고 나더니 하늘은 청명하고 맑은 가을 날씨로 변하였습니다. 언제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은 손에 닿으면 금방이라도 시퍼렇게 물 들것 같은 파아란 가을하늘에는 커다란 돌기둥을 연상시키는 뭉게구름 하나가 두둥실 바람에 실려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는데 그 뒤를 따라 하얀 토끼 한 마리가 열심히 노를 저어 따라가고 있습니다. 시골마을로 우편물을 배달하러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달려가는 길.
농가에서 재배하는 녹차 밭에서는 마치 동백꽃처럼 생긴 하얀 녹차 꽃이 여기저기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다른 녹차 밭에서는 차나무 열매를 수확하는 농부들의 일손은 쉴 틈이 없습니다. 녹차 나무 열매는 가을 이맘때 꽃을 피웠다가 내년 이맘때 열매를 맺기 때문에 꽃이 핀지 일년 만에 열매를 수확하기 때문입니다. “가을에 꽃을 피웠다 다음해 가을에 열매를 맺는 녹차 나무! 이 세상에 차나무 말고도 그런 나무가 또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부지런히 우편물을 배달하다 보니 저는 어느새
전남 보성 회천면 봉강리 신근마을 골목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신근마을 골목길에서 영감님께서 운전하는 경운기를 만나 길을 비키느라 오토바이를 잠시 한쪽에 세우고 경운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는데“퉁! 퉁! 퉁! 퉁!”큰소리만 지르는 경운기는 제 앞을 빨리 지나가지 못하고 천천히 제 옆을 스치듯이 지나가는데 경운기 뒤에는 기다란 꼬리가 따라가고 있습니다. “할머니~이! 경운기 꼬리가 너무 길어요~오!”하며 경운기 적재함을 꼭 붙잡고 계시는 할머니께 큰소리로 고함을 지르자 할머니께서 뒤를 돌아보시더니
“알았어!”하시며 영감님께 경운기를 세우게 하고는 길게 늘어뜨린 퉁퉁한 고무줄 바를 다시 정리하여 경운기 적재함에 싣고 골목길을 빠져나갑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어야~아! 금방 뭐시라고 했는가? 경운기 꼬랑지가 따라간다고?” 어디선가 저에게 묻는 소리가 들려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상하다! 내가 잘못 들었나?”하고 다시 한번 주위를 두리번거리자“허! 허! 헛!” 웃는 소리와 함께 “이 사람아! 여그여! 여그! 우게를 봐! 우게(위)”하는 소리에 위쪽을 쳐다보았더니
마을 영감님께서 감나무 위에 걸터앉아 구멍이 뚫려있는 시장바구니를 가지에 걸어놓고 감을 따고 계시는 중이었습니다. “어르신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니 경운기에 무슨 꼬랑지가 따라간다고 그래싸~아?” “예~에! 경운기 고무줄 바를 묶지 않고 길게 끌고 가니까 위험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알려드렸어요!” “허! 허! 헛! 그랬는가? 나는 무슨 경운기에 꼬랑지가 있는지 알았네! 그나저나 편지 배달하니라고 시장하시제? 여기 단감 하나 묵어보소!” “금년에는 감나무에 병이 들어 모두 쏟아지는
바람에 귀하다고 하는데 감이 남아있었나 봐요?” “금메! 올해는 이상하게 감이 모두 쏟아져부러서 몇 개 안 남었구만!” “그럼 감은 따서 할머니와 잡수실 거예요?” “아니여! 감은 잘 뒀다가 우리 손지들 오문 줘야제!”하고 잠시 영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아니! 당신은 바쁜 양반 세워놓고 뭔 소리를 그라고 하고 있소?”하고 할머니께서 대문을 열고 나오시며 영감님을 나무라십니다. “할머니! 왜? 어르신을 나무라세요? 혹시 어젯밤에 싸우셨어요?”하였더니
“아이고! 인자는 싸우고 싶어도 싸울 건덕지도 없어서 못 싸워!”하시는데 “어이! 이것 좀 받어! 인자 감이 없는 갑네!”하시며 영감님께서 감이 담겨있는 시장바구니를 할머니께 내려주려고 막 가지에서 빼내는 순간 갑자기 “어? 어? 어?” 하시더니 시장바구니 구멍이 감나무의 조그만 가지에 걸리면서 거꾸로 뒤집혀지더니 바구니 안에 담겨있던 감 열 댓 개가 땅바닥으로 ‘와르르’쏟아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땅바닥에 부딪친 감들은 모두 깨지고 부서지고 한개도 성한 감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아이고! 우리 영감탱이 하는 것 좀 봐! 꼭 세살 묵은 애기만도 못하당께!”하시는 할머니의 말씀에 “어르신 제가 괜히 어르신께 말을 걸어서 이렇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하였더니 “아이고 무슨 말씀인가? 내가 잘못했제! 그나저나 자네 단감 맛이라도 봐야 쓰꺼인디 으짜까? 감이 전부 다 깨져부러서!”하며 여전히 감나무에 걸터앉아 빙그레 웃는 영감님께 “인자 우리 손지들 단감 묵기는 다 틀렸네! 다 틀렸어!”하시는 할머니의 푸념이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녹차 나무의 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