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할머니의약값

큰가방 2006. 12. 31. 17:14
 

할머니의 약값


동지(冬至)가 가까워지면서 낮의 길이는 아주 짧아졌으나 햇살 잔잔한 따스한 날씨가 여전히 계속되는 가운데 저는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우편물을 가득 싣고 시골마을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시골마을로 가는 길 옆 논에는 검정 옷을 입은 까치 몇 마리가 이 논에서 저 논으로 옮겨 다니며 먹이 찾기에 열중하고 있으며 그 옆 밭에서는 아낙네들이 모여 앉아 아직도 쪽파 수확이 한창인데 해마다 이맘때면 늘 그래왔던 것처럼 농촌마을 여기저기서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김장김치를 담그느라 바쁜 일손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가 전남 보성 회천면 동율리 상율마을에 도착하여 마을의 중간쯤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 댁에 우편물을 가지고 들어가 “할머니! 계세요? 저 왔어요!”하며 할머니를 불러보았는데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제 할머니께서 저에게 부탁하신 예금통장에서 인출한 돈과 통장 그리고 도장을 할머니께서 놓아두라고 부탁하신 장소에 놓아두고 막 돌아서서 빨간 오토바이에 올라타는 순간 집 옆 텃밭에서 헐레벌떡 뛰어오신 할머니께서 빙그레 웃으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래! 돈은 찾아갖고 왔어?”하고 물으십니다. “예! 금방 할머니가 돈을 놓아두라고 한 장소에 놓아두었거든요! 돈은 한번 세어보시고 통장 잔액도 확인해 보세요! 아시겠지요?” “아따~아! 오직 잘해갖고 왔으껏이여! 그나저나 아제한테 자꾸 심바람만 시켜서 미안해 죽것네!”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제가 할머니께 해 드릴 수 있는 게 심부름 밖에 더 있어요? 그런 생각은 하지 마시고 다음에 또 부탁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아시겠지요?”


“고맙소! 심바람을 잘해줘서 그라문 조심하씨요! 잉!”하시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저는 다음 마을을 향하여 천천히 달려갑니다. 그리고 어제 할머니께서 저에게 부탁하셨던 일을 생각해 봅니다. 어제 오후, 제가 할머니 댁에 우편물을 가지고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할머니께서 방문을‘덜컹’열고 나오시더니 “아제! 오셨어? 오늘은 쪼금 늦게 오셨네!”하셔서“예~에! 오늘은 배달할 우편물이 조금 많아 늦었어요, 할머니 안녕히 계세요!”하고 막 대문을 나오려는데 갑자기 할머니께서 주위의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살피더니 가만히 제 옆으로 다가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저의 귀에 대고 “아제! 내가 부탁할 것이 한나 있는디 으짜까?”하시기에 “무슨 부탁이 있는데요? 제가 하기 힘든 아주 어려운 부탁만 아니면 말씀하세요!” “다름이 아니고 농협에 가서 내 돈을 잔 찾아다 갖다 주문 좋것는디!” “그런 심부름이야 얼마든지 해 드릴 수 있지요! 그런데 갑자기 무슨 돈이 필요하세요?” “아니~이 우리 아들한테 돈을 찾아다 주라고 해도 잘 찾아다 준디 아들 모르게 돈이 필요해서 그래! 또 아들한테도 미안하기도 하고~오!”


“왜? 아드님 모르게 돈이 필요하세요? 혹시 나쁜데 돈을 쓰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요?” “와따~아! 내가 돈을 나쁜데다 쓰것어? 내가 자꾸 관절도 아프고 삭신도 쑤시고 그래서 병원에서 약을 지어다 묵고 있는디 언제 테레비를 본께 그 약을 묵으문 여기저기 내가 아픈 데는 다 낫는다고 선전을 해쌋데! 그래서 전화해서 약을 보내라고 했는디 그 약을 묵어 본께 몸이 쪼금 좋아진 것 같드만 그란디 우리 아들한테 말을 했드니 ‘무슨 약이 그런 약이 있다요? 그 사람들 전부 다 사기꾼들이요!


병원에 의사 선생님 말을 들어야제! 엄니는 자꾸 그런 사람들 말을 믿고 그라요!’그란디 그 약이 나쁜 약이까? 그래서 아직 약 값을 못 보내주고 있는디 자꾸 약값 보내라고 전화가 온단께 그랑께 아제가 심바람 좀 해줘 동네 사람 누구를 시키려고 해도 마땅하게 시킬 사람이 없네!” “그런 심부름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란디 내일 내가 꼭 집에 있어야 되까? 뭔 일이라도 생겨 내가 집에 없으문 으짜까?” “그러면 할머니와 저만 아는 장소에 돈을 숨겨놓으면 되지요!”


“진짜 그러것네~잉! 그라문 내가 내일 집에 없으면 여기다 넣어둬 알았제~잉!” 하시며 할머니께서 가르쳐 준 장소에 돈을 넣어두었는데 어느새 할머니께서 저를 발견하고 달려오신 것입니다. “할머니께서 주문하신 약이 무슨 약인지는 몰라도 그 약을 드시고 몸이 좋아졌다면 그 약은 분명히 좋은 약 일거에요!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늘 건강하세요! 아시겠지요?”하는 것이 저의 바램입니다.

 

*2006년의 해가 서서히 저물어 가고있습니다. (06,12월29일 전남 보성 회천면 율포리 앞 바다에서)

 

*너무나 아쉬운 2006년 한 해였습니다. (06,12월 29일 율포리 앞 바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