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전화
이상한 전화
태풍 매기가 지나간 들판은 고요하고 평화롭기만 합니다. 엊그제 태풍 매기가 지나갈 때만해도 마치 양동이로 물을 퍼붓는 듯이 쏟아지는 빗줄기 때문에 걱정을 하였으나 다행스럽게 보성 지방은 큰 피해를 주지 않고 태풍매기가 지나간 것입니다. 한가롭게 떠있는 하얀 구름 사이로 넓게 퍼지는 밝은 햇살은 언제 많은 비가 내렸느냐는 듯이 환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합니다. 매일 매일 우리를 괴롭히던 폭염도 이제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고 들판을 가로질러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어느덧 가을이 우리 곁에 다가왔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달려온 곳은 전남 보성읍 용문리 주음 마을입니다. 주음 마을의 첫 번째 집 우편 수취함에 우편물을 막 투함하려는 순간 할머니 한분이 저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아저씨! 우리 집 전화요금 나왔어? 잉?”하고 물으십니다. “할머니! 전화요금은 아직 안나왔어요!” 하였더니 “그라문 지금 그 집이 편지통에 넣고 있는 것은 뭣이여?”하고 물으십니다. “할머니! 이건 유선방송 시청료가 나왔어요!” 하였더니 “오~오! 그래~에! 그라문 우리 껏도 왔것네!”하시기에
“예! 할머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하고서는 할머니의 유선방송 사용료 고지서를 찾아드리면서 “어? 할머니 유선방송 시청료가 이번 달에는 많이 나왔네요?” 하였더니 “지난달에 아저씨가 갖다 준 것을 내가 으따가 놔 둿는디 으따가 둔지를 몰라갖고 잊어 부렇당께! 그래서 지난달에는 이것을 못 바쳤어! 그랑께 두달치가 나왔는 갑구만!” 하십니다. “할머니! 그러면 유선방송사에 전화를 하시지 그랬어요? 그러면 다시 보내 드릴 텐데!”하였더니
“아따! 늙은이가 그른 것을 우추고 알것어? 그랑께 그냥 놔 둬 부렇제!”하시더니 “근디 으째 이달에는 전화요금이 늦게 나오네?”하십니다. “할머니 이번 달 전화요금은 아마 다음주 초쯤에나 나올거에요!”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갑자기 정색을 하시며 “아저씨! 그란디 요새 우리 집이 이상한 전화가 와 싼당께!” 하십니다. “아니? 할머니! 무슨 이상한 전화가 와요? 혹시 할머니에게 데이트하자고 어떤 영감님이 전화를 하시던가요?” 하였더니 할머니께서는 눈을 곱게 홀기시더니
“쪼그랑 할망구한테 누가 데이트를 하자고 그래!”하시더니“그란 것이 아니고 으서 전화가 와 갖고는 뭣이 당선되야쓴께 이름하고 주민등록번호를 갈쳐 주문 뭔 물건을 보내준다고 그라든디 그것이 참 말이까?”하십니다. “할머니! 앞으로는 그런 전화가 오면 절대로 주민등록번호는 가르쳐 주지 마세요! 그러다가 잘못하면 큰일 나요! 아시겠지요?” 하였더니 “아니! 그라문 그것이 뭔 전화간디 그래?”하시기에 “할머니! 이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어요? 괜히 할머니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알아가지고 나쁜데 쓸려고 하는 짓이지요!”
하고 설명을 하였더니 “아저씨 그란디 어지께는 뭔 약을 공짜로 보내준다고 전화가 여섯 번인가 일곱 번인가 와싼당께! 그란디 카만이 들어 본께 약은 좋은 약 같드만 그래서 우리 아들하고 타협을 해봐갖고 받든지 그럴랑께 낼 전화하씨요! 그랬는디 그른 약을 받어도 괜찬하까?”하십니다. “할머니 그 사람들도 밥 먹고 살아야지요! 그런데 왜 잘 알지도 못하는 할머니에게 공짜로 약을 보내주겠어요? 다음에 또 그런 전화가 오면 나는 약이 필요 없는 사람이요! 하세요! 아시겠지요?”하였더니
“우메! 대차그라네 잉! 나는 공짜로 준다고 그래서 받으까 으차까 그랬는디 아저씨한테 물어보기를 잘했네~에 잉!”하십니다. 사실 저도 가끔씩 전화상으로 건강보조식품 회사에서 제세공과금만 부담하면 무료로 약을 보내주겠노라는 제의를 받고는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거절을 하였는데 할머니께서는 아마 잦은 전화에 귀가 솔깃하셨나 봅니다. 앞으로는 연세가 많으신 시골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전화를 하여 물건을 팔거나 주민등록번호를 알아내려는 파렴치한 사람들이 없어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