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값으로 따질수 없는 것

큰가방 2004. 8. 28. 19:25
 

처서가 지나면서 날씨는 점차 가을의 날씨로 변해 갑니다. 시골마을로 향하는 도로 가의 논에는 엊그제 만해도 하늘을 바라보며 꼿꼿하게 서있던 하얀 벼 이삭들이 점점 누런빛을 띠기 시작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숙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벼이삭 사이로 살랑 살랑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합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고추잠자리 몇 마리가 벼 이삭 위를 천천히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오늘도 시골마을의 공터에는 빨갛게 잘 익은 고추들이 널려 있습니다.


지난  여름 무더위 속에서도 고추들은 무럭무럭 자라나 붉고 예쁜 색을 뽐내며 수확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을의 한쪽에는 이제 갓 베어낸 참깨 대들을 엊 비슷하게 세워서 말리는 작업이 한창입니다. 금년 여름에는 맑은 날이 많아서 참깨가 풍작이라고 합니다. 언제나 수확은 우리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것 같아서 가을이 다가오면 저도 모르게 행복해지는 것은 땀 흘려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마음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다 똑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도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 괜스레 설레는 마음을 안고 달려온 곳은 전남 보성읍 용문리 성두 마을입니다. 성두마을의 박영수 씨 댁 우편물을 배달하려고 막 오토바이의 커브를 돌리는 순간 그렇지 않아도 비좁은 길에 겨우 한사람 정도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을 남겨놓고는 온통 붉은 고추들이 길을 차지하고 태양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요즘 들어 맑은 날씨가 계속되다 보니 마을의 공터 또는 도로가의 빈터 심지어 햇볕이 잘 들어오는 조그만 골목길까지도 온통 고추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라


박영수 씨 댁까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갈수 없어서 저는 오토바이를 잠시 길 옆에 세워두고 우편물을 적재함에서 꺼내 들었는데 건너편 박영수 씨 댁 앞의 평상에서 마을의 할머니 네 분과 할아버지 두 분께서 무언가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재미있게 웃는 웃음소리가 저의 귀를 즐겁게 합니다. “아니! 어르신들이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걸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저는 천천히 박영수 씨의 평상 쪽으로 발걸음 옮깁니다. 그리고 평상 옆으로 가까이 다가서자 박영수 씨께서


“어이! 얼렁 이리오소! 꼬치 좀 널어놓고 심심해서 전을 좀 지져서 묵고 있는디 참! 맛있단 마시! 이리와서 좀 안거 잉!”하시며 저를 반기십니다. “예~에! 그러셨어요!”하며 제가 평상 옆으로 다가서자 할머니 한 분께서 “대차 그라씨요! 아저씨! 이리 쬐간 안져서 이것 좀 자셔봐 잉! 참말로 맛있당께!”하시며 저에게 자리를 권하십니다. “아니 제가 부침개 좋아하는 줄은 어떻게 아시고 부침개를 하고 계세요?” 하며 제가 평상 한쪽 귀퉁이로 앉자마자 지금까지 부침개를 부치고 계시던 할머니께서


“거시기 아저씨! 아저씨가 편지를 갖고 오길래 받으로 나가까! 으차까! 하다가 또 편지를 받으로 나가불문 아저씨가 그냥 가불랑가 몰르것어서 이리 와서 이것 좀 자시고 가라고 편지를 받으로 안나간 것잉께 그라고 알고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어 잉! 그라고 이것 좀 자셔봐! 오랜만에 묵어본께 그랑가 어짠가 참! 맛있당께!” 하시며 금방 부치신 뜨근 뜨근한 부침개 한 장을 저에게 건네십니다. “예! 고맙습니다!”하며 제가 부침개가 담긴 접시를 받아들자“거시기 칼로 썰어 줘야 되껏인디 전은 칼로 썰어 불문 맛이 읍서


그랑께 그냥 젖구락으로 짝짝 찢어서 묵어야 더 맛있응께 그라고 알고 자세 잉!”하시며 젓가락을 주시더니 “여그 또 많이 있응께! 어서 자시고 더 많이 자세 잉!” 하십니다. “어디 할머니 솜씨가 어떤지 맛을 좀 볼까?” 하며 저는 부침개 한 장을 젓가락으로 찢어서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그런데 부침개를 한 입 베어 문 순간 부침개는 저의 입속에서 여러 가지 맛과 향이 골고루 퍼지기 시작합니다. 아마 부침개에는 풋 호박과 깻잎 그리고 쪽파 같은 것을 썰어서 넣은 것 같은데 여러 가지 야채가 골고루 섞인 탓인지


여러 가지 향과 맛이 골고루 어우러진 정말 맛있는 부침개였습니다. 그래서 부침개를 맛있게 먹고 있는데 제가 부침개 먹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시던 영감님께서 “왔다! 참말로 맛있게 자신께 좋네~에! 사람은 그래야 쓴것이여! 암디서도 뭣을 권하고 그라문 암말안고 그냥 자시고 그래야 된것이여! 은제 한번 우리집이서 우체부가 왔길래 커피를 한잔 타준께는 그것을 마시고 영 고맙다고 그래쌓데 그것 커피 한잔해봐야 돈 몇 백원도 안하꺼인디 그라고 고마운가 몰르것데!” 하십니다.


“어르신! 그게요! 비록 커피 한잔이 돈으로 따지면 몇 백 원짜리일지는 모르지만 집배원들이 돈을 가지고 다녀도 시골마을에서는 음료수 한개도 사 먹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첫 번째 가게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가게가 있다고 해도 가게에 사람이 없으면 또 빵이라든가 음료수 같은 것을 사먹을 수가 없거든요! 그러니 이렇게 부침개라도 먹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얼마나 배가 고프겠어요? 그런데 날씨도 춥고 그런 때 커피 한잔을 주시면 얼마나 고맙겠어요?”하였더니


“참말로 자네 말을 들어본께 그라것네! 대차 그것이 무슨 갑사치가 있것는가? 그른 것이 다 정이제! 정!”하십니다. 제가 시골마을로 우편물 배달을 하면서 느낀 점은 아직도 시골의 할아버지나 할머니께서는 집배원들이 마치 한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비록 맛이 있건 없건 비싼 음식이든 싼 음식이든 함께 나누고 싶어 하신다는 점입니다. 저는 오늘 야채 부침개 한 장과 할아버지 할머니의 진정한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한 정을 대접받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