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황소 괴물 소동

큰가방 2004. 9. 11. 17:58
 

9월로 접어들면서 뜨겁기만 하던 태양 볕이 누그러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합니다. 시골 마을로 향하는 농로 길옆에 하늘 높이 서 있는 올 밤나무에서는 어느새 어른의 엄지손가락만한 반들반들한 밤알이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오늘도 시골마을의 공터에는 토란 대의 껍질을 벗겨 말리기도 하고 붉고 예쁜 고추를 말리기도 하며 이제 천천히 가을걷이에 나설 채비를 하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가을의 풍요로움이 저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도 언제나 저와 함께하는 빨간 오토바이와 도착한 곳은 보성읍 용문리 주음마을입니다. 주음마을의 마지막 집의 우편물을 배달하고 나오면서 바라본 주음 방죽에는 오늘도 많은 연잎들이 바람에 한들거리며 저를 반겨줍니다. 저는 바람에 한들거리는 연잎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20여전 주음방죽에서 일어난 황소괴물 소동이 생각나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지어봅니다. 원래 주음방죽은 저와 같은 4~50대의 사람들에게는 연(蓮)방죽으로 더 잘 알려진 방죽인데 주음방죽을 가면 언제나 물위에 두둥실 떠있는


연잎과 또 여름에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피어있는 연꽃을 만날 수 있어서 연 방죽으로 불렸던 것인데 그 방죽에서 웃지 못 할 소동이 벌어진 것 입니다. 그러니까 20여 년 전의 일입니다. 어느 날부터 “주음방죽에서 밤이면 황소귀신이 나타나 황소 울음소리를 내며 울고 있다더라!”하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주음방죽에는 황소괴물이 살고 있다더라!” 하는 소문으로 바뀌더니 “주음방죽에는 황소괴물이 살고 있어 밤이면 황소 울음소리를 내고 있다더라!”


하는 소문으로 점점 퍼져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말이 사실인지 진위여부를 알아보기 위하여 밤이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이 사실이나 되는 것처럼 소문이 돌더니 이번에는 “모 문중에서 주음방죽 옆으로 선조의 묘소를 이장을 한 뒤로부터 괴물이 나타났다고 하더라!” 하더니 “주음방죽 옆에 고목나무가 있는데 고목나무 옆면이 밤에 보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 고목나무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


하는 날이 가면 갈수록 이상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지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저도 어느 날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을 하기 위하여 밤에 저의 친구들과 함께 주음방죽을 가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에도 주음방죽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기위하여 대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음메~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그런데 제가 듣기에는 황소의 울음소리는 아닌 것 같은데 딱히 무어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이상한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술에 취한 용감한(?) 젊은이 두 사람이 “황소괴물을 잡아내고 말겠다!”며 주음방죽 안으로 뛰어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쪽으로 헤엄을 쳐가면 저쪽에서 “음메~에!” 저쪽으로 헤엄을 쳐가면 이쪽에서 “음메~에!” 마치 사람을 놀리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음메~에!”하는 소리가 들리니 처음에 기세 좋게 “황소괴물을 잡아내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두 청년은 결국은 제풀에 지쳐서 물 밖으로 나오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로도 계속해서 황소괴물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해서 퍼지다가 어느 날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오면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오면서 이상한 울음소리의 전문가인 학자가 함께 동행을 한 것 입니다. 그리고 밤이면 들리는 이상한 소리의 주인공은 황소개구리의 울음소리로 밝혀진 것 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그때는 각 가정에 흑백 TV도 제대로 보급이 되지 않았던 시절이라서 사람들은 볼거리가 귀했던 시절이고 그러다 보니 자연 이상한 소문을 믿은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 시절에는 황소개구리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어디서 어떤 경로로 황소개구리가 주음방죽으로 찾아왔는지는 몰라도


어느 날 갑자기 방죽에서 “음메~에! 하는 황소울음소리 비슷한 소리가 들리니 자연 주음 방죽 근처에 살던 사람들은 기겁을 하였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또 공교롭게도 주음방죽 근처에 모 문중에서 선조의 묘를 이장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방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니 사람들은 ‘모 문중에서 묘를 잘 못써서 그런다!’ 는 소리도 했을 법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제는 주음방죽 옆에 서있던 ‘옆으로 보면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하고 있다!’는


고목나무는 이미 죽어서 사라지고 방죽의 물도 가을이 다가오면서 많이 빠져서 오늘도 연 잎들만 옛날의 황소괴물 소동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바람에 한들거리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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