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음주 운전
어젯밤 늦게부터 불어오기 시작한 찬바람은 그동안 우리 곁에 머물러있던 가을을 쫓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길가에 길게 늘어서있는 가로수의 푸른 옷을 노란 빨간 옷으로 바꾸어 입히더니 그것도 모자라 한잎 두잎 나뭇잎을 빼앗아 어디론가 멀리 날려 보내고 있으며 도로 옆 언덕위에 하얀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 넘기고 오가는 길손에게 한없이 손을 흔들어주던 억새는 어젯밤 찬바람과 심하게 다투었는지 곱디고운 자태는 간곳이 없고 어느새 머리를 모두 풀어헤친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어 떠나가는 가을을 애타고 부르고 있었다.
“가을은 어디에서 시작되어 어디서 끝나는 것일까? 찬바람이 불어오면 가을은 정녕 우리 곁을 멀리 떠나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해 보면서 나는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우편물을 가득 싣고 전남 보성 회천면 전일리 군학마을로 달려와 수취인이 어디 사는지 모르는 등기우편물 주인을 찾으려고 마을 아주머니 한분을 만나 “혹시 이 마을에 이성일 씨가 어디 사는 분인지 아시겠어요?”하고 물었더니 “이성일? 가만있자!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이름인데 누구까? 으째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지?”하는데
그 순간 시골집 담 너머에서 “여보게! 이리와! 우리 집으로 오란 말이시! 이성일이는 우리 막둥이 아들이여!”하며 힘없는 목소리로 영감님께서 부르셨다. “아! 맞다! 우리 조카이름이 이성일 이었는데 내가 그만 깜박 잊고 있었네! 요 아랫집 이경호 씨 막내아들이니까 그 집으로 가 보세요!” “예! 고맙습니다.”하고 이경호 씨 마당으로 들어갔는데 영감님께서“으디서 온 편지여? 혹시 경찰서에서 보낸 편지 아니여?”하고 묻는다. “전남경찰청 면허계에서 보내 온 등기편지인데 혹시 편지 올 줄 알고 계셨어요?”하였더니
영감님께서 갑자기“휴~우!”하며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꺼져 들어가는 목소리로“내용이 뭣인지 좀 봐줘!”하셨다. “이성일 씨 운전면허를 취소한다는 내용이네요! 그러니까 앞으로 한 달 동안만 운전하고 그 후에는 운전면허가 취소되니 운전하지 말라는 통지서가 왔어요!” “아이고! 이제 큰일 났네! 내가 그렇게 술 마시고 운전하지 마라고 했는디 기어이 일을 저지르고 말았어! 이일을 어찌해야 좋을꼬?” “혹시 아드님께서 음주(飮酒) 운전하셨나요?”
“지난번 아들이 다니던 회사에서 회식이 있었던 모양이여! 거기서 술을 한잔마시고 집까지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다고 그라데! 그래서 설마하고 운전을 하고 갔는데 하필 집 앞에서 음주 운전 단속을 했던 모양이여! 그래서 걸렸어! 그란디 음주 운전은 많이 하나 적게 하나 걸리문 똑 같이 처벌을 받는 모양이데. 그래서 면허 취소가 될 것 같다고 전화가 왔어!” “원래 음주 운전이란 술 마시고 차 운전석에 앉아 시동만 걸어도 음주 운전에 해당된다고 하거든요.”
“그래도 지금은 막둥이 차가 있어 우리 내외간 병원에도 데리고 다니고 토요일이면 내려와 일도 도와주고 했는디 인자 운전을 못하게 생겼으니 이일을 으째야 쓰것인가? 또 회사는 어떻게 왔다 갔다 할 것인가?” “아드님 회사가 어디 있는데요?” “아들집은 광주인데 회사는 송정리에 있다고 그러데!” “광주에서 송정리면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닌데 버스로 통근하면 안 될까요?” “그런데 버스정류장하고 회사하고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다고 그러드만 그래서 버스에서 내리면 또 한참을 걸어가야 된다고
그런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날마다 그 일을 어떻게 해야 쓰것는가?” “정말 힘드시겠네요! 그러면 아드님 아이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나요?” “아직은 어리니까 안다니고 있제~에!” “그러면 일년 동안이라도 회사 근처에 방을 얻어 생활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오~오! 그렇게 하면 되기는 되겠네! 그란디 어제는 전화가 왔어! 당분간 차(車) 운전을 할 수 없으니 차를 팔면 어떻겠냐고 그래서 ‘필요 없으면 팔아라!’고 했드니 차 파는데 가서 알아보았더니
차가 아주 좋은데도 4백 만 원 정도 밖에 안 보더라고! 이래서 손해! 저래서 손해! 정말 손해가 이만 저만이 아니여!”하며 다시 한번 땅이 꺼질듯이“휴~우!”하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식당하고 집하고 거리가 가까웠으면 그냥 걸어가거나 대리운전을 시켰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정말 안타깝네요. 그러나 이제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까.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하세요. 그리고 일년 후에 다시 운전면허증을 따면 되지 않겠어요?
*아직도 단감나무에 달려있는 단감은 언제 따려고 남겨두었을까요?
*노란 수세미 꽃인데 언제 쯤 수세미가 열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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