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자전거

집배원 아저씨께

큰가방 2007. 12. 16. 18:11
 

집배원 아저씨께


어젯밤 아무도 모르게 찾아온 추위는 자신이 다녀갔음을 알리고 싶었는지 세수 대야에 담겨있는 물을 살짝 얼리더니 우리 집 조그만 텃밭에 하얀 서리를 가득 뿌려놓고 아침 해가 떠오르며 반짝거리는 모습을 보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아침부터 불어오기 시작한 강하고도 차가운 바람은 어느새 겨울의 가장자리에 서 있음을 알리려는 듯 시골마을 도로 옆에 서있는 앙상한 가로수 가지사이를 헤집고 지나가며


‘위~윙!’하는 칼바람 소리가 나게 하더니 이미 마를 대로 말라비틀어진 채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서너 장 남아있는 나뭇잎을 빼앗아 빙글빙글 돌리며 하늘 높이 치솟게 하더니 어디론가 멀리 데려가고 있었다. 나는 오늘도 빨간 오토바이와 함께 시골마을에 우편물을 배달하러 가는 길, 오늘은 대통령 선거 투표안내문을 배달하는 날이어서 정신없이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우편물을 배달하다


전남 보성 회천면 객산리 청포마을에 도착하여 시계를 보았더니 시간은 어느덧 오후 3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요즘처럼 배달할 우편물이 많을 때는 낮의 길이가 한 시간만 더 길었으면 좋을까? 오후 5시가 넘으면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하니 서두르지 않으면 컴컴해지기 전에는 우편물 배달이 끝나지 않겠는걸!’하는 생각을 하며 부지런히 이 집 저 집 우편 수취함에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는데 마을 가운데쯤에서 갑자기“아저씨~이!”하며


여자어린이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며“예쁜 아가씨가 왜? 나를 부르셨어요? 혹시 부탁할 것이라도 있어요?”하였더니 아가씨라는 말에 부끄러웠던지 순간 얼굴이 조금 빨개지더니 수줍은 목소리로 “이거 받으세요!”하며 나에게 편지봉투를 한 장을 내밀었다. “이것은 무슨 편지인가요?” “그것은 위문편지에요! 집배원 아저씨 드리려고 제가 썼어요!” “그랬어! 그럼 혹시 엄마나 아빠, 학교 선생님이 쓰라고 시킨 것은 아니고?”


“아니에요! 그냥 아저씨들 힘내시라고 제가 썼어요!” “그랬어! 예쁜 아가씨가 이렇게 위문편지를 써주니 집배원 아저씨들이 편지를 읽고 나면 힘을 날 것 같은데 고마워서 어떻게 하지?”하며 편지 내용이 무척 궁금하였으나 그 자리에서 읽어보면 여자어린이가 부끄러워 할 것 같아 우편물가방 속에 소중히 넣었더니 “괜찮아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하며 ‘통! 통! 통!’집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너무 예쁘게 보였다.


*집배원 아저씨께*


안녕하세요? 저는 수정이에요. 날씨가 많이 추워 졌죠. 날씨가 많이 추운데 신문지나, 잡지, 편지를 갔다 주셔서 고맙습니다. 몸 건강하세요. 그리고 감기 조심하세요. 언제나 우리가 모르고 알고 싶은걸 전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을 다 마치고 집에 오면 따뜻한 걸 드시고 따뜻하게 보일러 키세요. 그리고 쉬세요. 제가 선물 못 드리지만 이편지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할게요. 눈이 좀 있으면 올 것 같아요. 그러니까 운전 조심하세요. 그리고 언제나 힘을 내세요. 화이팅! 화이팅!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하세요. 그리고 슬펐을 때나 우울할 때 이 편지를 보세요. 그러면 기분이 나아질 거예요. 힘내세요. 힘!


2007년 12월 14일 회천 초등학교 1학년 2반 17번 조수정 올림!’


비록 연필로 비틀비틀 쓴 편지일지라도 또박 또박 정성을 다해 쓴 회천초등학교 1학년 조수정 어린이의 집배원을 위한 위문편지 한통이 유난히도 길고 힘들었던 오늘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가시게 하였다.


*조수정 어린이가 저에게 건네 준 위문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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