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충한 영감탱이
어젯밤 내린 비에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뭇잎들이 한잎 두잎 떨어져 도로위에 차곡차곡 쌓이는데 차가운 바람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연신 가로수를 흔들어대며 벌거숭이로 만들고 있었다.
전남 보성 회천면 만수마을 가운데 집에 현금이 들어있는 등기를 배달하려고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햇볕 잘 드는 마당에서 쪽파를 다듬고 계시던 할머니께서“우리 집에 뭐시 왔어?”하며 반가운 웃음을 웃고 계신다.
“서울에서 돈이 왔네요.” “그랬어! 우리 며느리가 내 생얼이라고 보냈구만!” “언제가 생일인데요?” “낼이여! 그란디 올해는 애기들이 바뻐서 못 오것다고 돈 쪼깐 보내꺼인께 미역국 끼래서 동네 사람들하고 나눠 묵으라고 그라데!”
“그러면 이 돈으로 맛있는 음식 장만을 하셔야지요.” “아이고! 음석을 뭣할라고 장만해! 즈그들이 내루와서 상이나 채려주문 사람들도 부르고 그라제만 우추고 내가 장만해서 동네 사람들 부르껏이여!”
“그래도 일 년에 한번 찾아오는 생일인데 그냥 넘기려면 서운하잖아요.” “작년에도 사람들 오라 그래 갖고 대접했응께 올해는 그냥 지내고 내년에는 또 걸게 장만해서 사람들 불러야제! 그란디 아저씨! 우리 집이 까스가 떨어져 부렇단께!”
“그러면 가스 집에 연락해서 배달해 달라고 하셔야지요. 혹시 연락처를 모르세요?” “아니~이! 그것이 아니고 우리 집이 가스통이 두 개여! 그란디 통을 바꿀라고 우리 영감이 아무리해도 그것이 안 빠지네!”
“그것이 안 빠지다니요. 가스 연결 밸브를 말씀하시는 거예요?” “까스통에서 뭣을 빼 갖고 다른 통으로 콕 찌르드만 그란디 그것이 암만해도 안 빠져!” “가스 연결 밸브는 일반 나사못처럼 왼쪽으로 돌리면 풀어지고 오른쪽으로 돌리면 잠기는 게 아니고 반대로 돌려야만 풀어지고 잠기기 때문에 그것을 모르면 연결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아침밥도 못해 묵고 화가 나서 영감한테 ‘그것도 못하냐?’고 했드만 동네 사람한테 물어보로 간다고 나가드니 안직도 안 들어오고 있네! 아이고! 멍충한 영감탱이가 뭣을 알아야 말이제! 암껏도 모른갑서!”하고 투덜대신다.
“할머니 그것은 어르신 잘못이 아니라니까요! 가스통을 생산하는 회사에서 혹시라도 어린애들이 만져 사고가 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렇게 생산하기 때문인데 어르신 탓 만하면 되겠어요?”
“그라문 아제가 가스통을 잔 바까주꺼여?” “예! 그렇게 할게요.”하고 할머니의 안내를 받아 가스통이 있는 곳으로 갔는데 연결 밸브는 이미 가스가 들어있는 통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어르신이 이미 바꿔놓으셨는데요!” “그랬어? 영감한테 그것도 못하냐고 나무랬드니 누구한테 물어보고 나도 몰르게 바까 놨구만!”하시더니 흐뭇한 웃음을 웃으셨다.
전남 보성 회천면 율포리에서 바라 본 해질녘입니다.
'따스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넘어진 오토바이 (0) | 2011.12.11 |
---|---|
"자석이 젤이여!" (0) | 2011.12.03 |
할머니의 팁 (0) | 2011.11.19 |
"아이고! 못가!" (0) | 2011.11.05 |
손자의 옷 (0) | 2011.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