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우체통

"좋게 되얏어?"

큰가방 2013. 5. 25. 16:51

 

"좋게 되얏어?"

 

5월의 중순에 접어들자마자 날씨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봄을 미처 느껴 볼 새도 없이 무더위를 느끼게 하는 초여름으로 변해 가고 있는데

시골 마을을 길게 연결해주는 농로 길 옆에 자리 잡고 있는 논에는 엊그제 내린 비로 물을 가득 담아 로터리를 친 다음 하루 빨리 모가 심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남 보성 노동면 마산 마을의 중간 만큼에 살고 계시는 할머니 댁 대문 앞에 빨간 오토바이를 잠시 세워두고 적재함에서

한약을 달여 포장하여 발송한 택배 박스하나를 꺼내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서 현관문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등 뒤에서

 

“거그는 멋하러 가~아! 그리가지 말고 이루와! 이리!” 하는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았더니 할머니께서 수돗가에 서서 나를 부르고 계신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그런데 오늘은 무엇을 그렇게 씻고 계세요?” “잉! 접시꽃 낭구 뿌랭인디 여자들한테 존 약이라고 그라데 그래서 시치고 있어!”

 

“접시꽃나무가 벌써 나왔어요?”

“와따~아! 접시꽃 낭구가 은제 나왓으꺼시여! 장년 가을에 봐 둔 것 인자 내가 쓸라고 캐 갖고 시치고 있구만!”하며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신다.

“그랬어요? 저는 금년에 새로 꽃 피운 것을 캐내신 줄 알았어요.”

 

“아이고! 그새 은제 접시꽃 낭구 꽃이 은제 피였으꺼시여? 그냥 순이 나왔응께 알제! 그란디 오늘은 우리 집이 머시 왔어?”

“할머니 한약이 왔나 봐요!” “그래 이~잉! 제주도에서 왔는 갑구만! 그라제? 엊저녁에 우리 아들이 멋을 보냈응께 잘 바드라고 전화 왔드만!”

 

“그러셨어요? 그러면 아드님이 할머니 보약을 보내셨을까요?” “아니~이! 내가 인자 나이가 만코 그랑께 여그 저그 사방데가 쫴깐씩 아퍼 싼께 거그 듣는 약하고 보약도 쬐깐 너 갖고 지었다고 며느리가 그라데!” “그러셨어요? 잘하셨네요. 그런데 할머니! 도장 한번 찍어주시겠어요?”하였더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신 할머니.

 

“도장? 우메! 내가 도장을 으따 둔지를 알아야 찾든지 말든지 하제! 으째사 쓰까?” “도장 찾기가 귀찮으시면 대신 손도장이라도 찍어주셔도 되요!”

“손도장을 찍으라고? 그라문 그냥 지장을 찍으라 그 말이제?” “도장이 없으니 어쩌겠어요? 지장이라도 찍어야지요.”

 

“거시기 나는 늘거 갖고 손구락도 안 이삐고 손톱도 많이 질었는디 지장을 박어도 될랑가 몰르것네?” “괜찮아요! 요즘 아가씨들은 일부러 손톱을 길게 하고 다니고 또 네일아트라고 해서 예쁜 그림도 그리는데 제가 할머니 손톱 길었다고 소문만 안내면 되잖아요.”하고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인주를 묻혔는데 “그란디 이것을 으따가 박으라고?” “택배 수령증을 꺼내고 있으니 잠시만 기다리세요!”

“아따 얼렁 내놔 봐! 박을 것은 얼렁 박어 부러야제!”하고 재촉이시다. “조그만 기다리시라니까요!” 하고 수령증을 꺼내 “여기에 찍으시면 되요!” “그랑께 여그다가 박으라고? 알았어!”하시더니

 

수령증에 손도장을 꾹 눌러 찍고 나서“으디 봐! 잘 박어졌는지!” “예! 잘 되었네요!” “참말로 좋게 되얐어?” “예! 참말로 좋게 되었다니까요!” “그랑께 종우도 안 배리고 깨깟하니 좋게 잘 되얐다 그 말이제 이~잉!”하더니 “지장 박기가 도장 박은 것 보다 더 재미가 있구만!”

 

*위의 글은 십여 년 전 제가 전남 보성 노동면 쪽으로 우편물 배달을 다니고 있을 때 써 놓았던 글인데 그냥 잊어버리고 있다 오늘 올리게 되었네요.

 

볍씨를 직파한 논이라는데 뭐가 보이나요?

올해도 감자 꽃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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