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지락 거리기

적도에서 남극으로 이사 온 사람

큰가방 2018. 9. 15. 14:54

적도에서 남극으로 이사 온 사람

 

장마가 끝나자마자 찾아온 강력한 무더위는 가만히 앉아있어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뜨거운데다, 매일매일 최고기록을 갈아치우는

수은주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무덥다고 알려진 대구(大邱)와 경산(慶山)지방이 사람의 체온보다 높은 섭씨 40도가 넘는 무더위로 기록되면서,

 

대구가 아프리카처럼 무덥다는 뜻으로 대프리카라는 새로운 신조어(新造語)가 생겨났다는 뉴스가 매일 계속되고 있었다.

 

바지 길이를 줄이려고 친구가 운영하는 세탁소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가게 안은 에어컨을 틀었는지 시원한 느낌이었다.

그동안 잘 계셨는가? 요즘 무더워서 어떻게 사는가?”하며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굉장히 피곤한 기색이었다.

 

자네 이렇게 뜨거운 날 어디서 일하고 왔는가?” “어제 아침에 조금 시원한 것 같아 논에 좀 가 봤거든,

그랬는데 벼 줄기에 무언가 희끗희끗한 게 보이더라고 그래서 자세히 살펴봤더니 문고병(紋枯病)이 막 시작되었는데 그냥 놔두면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할 수 없이 농약(農藥)을 하고 왔더니 이렇게 피곤하네!” “이렇게 살인적으로 무더운 날도 아니고 뜨거운 날 논에 가서

농약을 치고 왔다고?” “그럼 어떻게 하겠는가? 오늘 안하고 미루다 병()이 논 전체로 퍼져버리면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게 되는 데

 

미리 예방을 해야 되지 않겠는가?” “자네 말이 맞긴 맞는데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렇게 섭씨 40도가 넘어간다는데 더군다나

이른 새벽도 아니고 대낮에 농약을 했다는 자네의 용기가 대단해서 하는 말일세!” “오늘 같은 날 하면 물론 힘이 많이 들지 왜 안 들겠는가?

 

그러나 기왕에 해야 할 일이니 아무리 무덥더라도 해 치우고 말아야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오셨는가?”

바지를 하나 새로 구입했는데 길이가 너무 길어 수선해 달라고 왔네!” “그랬어? 그럼 이리 줘보게!”하여 건네주고

 

의자에 앉아 길 건너편을 바라보니 한 낮의 뜨거운 태양 볕이 사정없이 가게 안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여기는 다행히 햇볕을 받지 않아 괜찮은데

건너편 가게에는 완전히 한증막이겠는데 금년처럼 뜨거울 때는 정말 어려움이 많겠는데!” “내가 몇 년 전 저쪽 가게에서 장사를 했지 않은가?

 

그런데 처음 이사를 갔을 때는 겨울이었기 때문에 햇볕이 들어오니까 따뜻하니 정말 좋더라고! 그런데 여름이 되면서 상황이 확 바뀐 거야!”

어떻게 바뀌었는데?”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뜨거운 햇볕이 가게 안으로 바로 쏟아져 들어오니까 에어컨을 계속 켜놓고 살아야 되거든,

 

그런데 전기요금이 좀 비싼가?” “그러면 엄청 나왔겠는데!” “그런데 전기세도 문제지만 해가 지고 밤이 되어도 가게 안이

낮에 뜨겁게 달궈진 열기 때문에 밤이면 무더워서 잠을 잘 수 없는 거야!” “그랬으면 정말 고생이 많았겠는데.”

 

그래서 남이 보기 좋든 싫든 차일을 만들어 낮게 쳤더니 조금 낫더라고!” “그럼 이쪽으로 와서는 어떻든 가? 여기는 반대편이라

햇볕은 전혀 안 들어오겠는데!” “그래도 아침이면 조금 들어오는데 잠깐 들어왔다 바로 돌아가 버리니까 괜찮아!”

 

그럼 전기요금은 얼마나 절약되던가?” “많이 절약되지 저쪽에서 몇 년 살다 이쪽으로 이사를 봄에 왔거든 그런데 어쩌다보니

에어컨 설치를 못 한 거야!” “그럼 여름에 어떻게 살았던가?” “그런데 여름을 지내는데 저쪽에서 워낙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지

 

별로 무더운 줄 모르고 살았네.” “정말 그랬어?” “가끔 손님들이아니 이렇게 무더운데 에어컨도 없이 살아요?’물으면

적도에서 살다가 남극으로 이사 와서 그래요.’대답하면 말없이 빙긋이 웃기만 하더라고.” 


가을입니다. (사진은 2014년 가을에 촬영하였습니다.)   





42746


 


'꼼지락 거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세~에 젊어~어 놀아!"  (0) 2018.10.06
짱뚱어의 추억  (0) 2018.09.22
억새 꽃  (0) 2018.09.08
공포의 대상포진  (0) 2018.09.01
이 근방 어딘가에  (0) 2018.08.25